목덜미를 파고드는 바람이 칼날 같은 날이다. 책 감리를 위해 파주를 다녀오는 길. 배가 출출해 편의점에 들렀다. 오랜만에 저녁 약속이 있어 속만 채우려 제일 만만한 컵라면을 골랐다. 물을 붓고 핸드폰에 시선을 두려는데 맞은편 남자의 다급한 목소리가 날아와 귀를 파고들었다.
“네! 열심히 할 수 있습니다!”
적막한 분위기에서 들려온 목소리는 어울리지 않았다. 고개를 들어 그를 찬찬히 살펴보니 신발 뒤축엔 이미 굳어버린 진흙이 빼곡히 박혀있었고, 그 언젠간 제법 폼이 났을 가죽점퍼는 굽은 그의 등에 달라붙어 거북이 등껍질처럼 곳곳이 헤져있었다. 점퍼 목덜미 위로 짙고 길게 패인 주름이 지나온 그의 세월을 말해주는 것 같았다. 그는 잠시 뒤 두 손 받쳐 들었던 휴대전화를 내려놓으며 짧은 말을 내뱉었다.
“네...그렇군요.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휴...”
그리곤 옆에 펼쳐두었던 구인 광고지 한 귀퉁이를 펜으로 슥슥 그었다. 그는 라면 한 젓갈을 입에 빨아 넣은 다음 또 다시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이윽고 전화를 받았는지 입속 라면을 황급히 삼켰다.
“네! 광고보고 전화 드렸습니다. 네. 현수막은 여러 번 해봐서 잘 달 수 있습니다. 네. 네. 인천입니다. 네.”
잘 달 수 있다는 말에 힘을 주어 이야기했다. 그리고 잠시 주저 하더니 답했다.
“네..예..예순 다섯입니다. 네... 잘... 알겠습니다...”
그는 전화를 내려놓고 또 다른 줄을 그었다. 그 뒤로 여러 번 거절의 답을 들은 그는 한참을 멍하니 앉아있었다. 그 옆에 나무젓가락을 꽂아 놓은 컵라면은 그 이후 더 이상 그의 관심을 받지 못했다. 한참을 멍하니 있던 그는 천천히 고개를 꺾고 흐느끼기 시작했다. 어깨가 꺽꺽 거리며 불규칙하게 들썩였다. 그날 나의 라면은 그와 명백히 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