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있는 세탁기가 얼마 전부터 영 시원치 않더니 결국 멈췄습니다. 아무리 큰 이불 빨래도 거침없이 해내던 녀석이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서서히 힘을 잃어가더니 결국 동작을 멈췄습니다. 얼마간 빨래는 셀프세탁방을 통해 해결했는데 이것도 비용이 만만치 않아 결국 중고 세탁기를 전문으로 수리하시는 전문 수리기사님께 요청을 드렸습니다.
지난 주말. 현관 벨소리에 문을 여니 양손에 수리 도구든 기사님이 방문했습니다. 그의 양손에 들린 어마어마한 도구들을 보니 이분이라면 고칠 수 있겠다는 믿음이 생겼습니다.
한참동안 전문의가 환자를 살피듯 이리저리 보던 그는 잠시 뒤 저를 호출했습니다. 마치 병명을 기다리는 환자가 된 것처럼 가슴이 두근거렸습니다. 그의 입만 바라보고 있는데 그가 입을 열었습니다. “여기 나사 보이시죠? 이걸 열어야 문제의 원인을 알 수 있는데. 나사가 삭아서 도저히 열 수가 없습니다. 어떻게든 살려보려 했는데. 더 이상은 사용이 어려울 것 같네요.” 그의 말대로 살펴본 나사는 까맣게 삭아서 십자 홈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어머니에게 물려받아서 사용하던 것이니 어림잡아 20년은 족히 넘었을 것입니다. 그의 말을 듣는 순간 마음속에 잡고 있던 마지막 희망의 끈이 ‘툭’하고 끊어지는 기분이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새 세탁기를 구매했습니다.
설치 당일 기사님이 새 세탁기를 설치해주고 쓰던 세탁기를 수거해 갔습니다. 오랜 시간 동안 함께한 세탁기가 쓸 모를 다한 다른 가전기기들과 함께 트럭 뒤에 실어 보내는 것이 왜그리 미안하던지요.
8년 전 벚꽃이 비처럼 내리던 5월 12일. 그날은 아버지가 40년 가까이 근무 한 직장에서 명예퇴직을 하는 날이었습니다.
전 직원들이 회사 정문 양쪽으로 도열하고 그 사이를 천천히 걸어 나오면 그간의 모든 직장 생활이 마무리 됐습디다.
아버지는 그날 그 어느 때 보다 큰 미소로 박수와 응원을 받으며 정문을 걸어 나왔습니다.
그날 밤. 아버지는 가족 식사 자리에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참. 길었다. 그런데 돌이켜보니 찰나 같던 직장 생활이었어. 아까 그렇게 전 직원들의 박수 속에 정문을 걸어 나오는데 마음이 편치만은 않더구나. 앞으로 남은 인생에 대한 생각과 뭐랄까... 쓸 모를 다해서 버림을 받는 느낌이랄까. 내가 그곳에선 더 이상 쓸 모가 없다는 생각을 하니 서글픈 생각이 순간 머리를 스치더라. 반평생을 함께 한 곳인데 말이다. 너도 누군가에게 오래도록 쓸 모 있는 사람이 되길 바란다.” 아버지는 ‘오래도록’이라는 말에 힘을 주어 말씀하시곤 잔에 든 맥주를 들었습니다.
세탁기가 실려 가는 그 순간. 오래 전 아버지가 하셨던 그 말씀이 불현듯 떠올랐습니다.
쓸 모를 다 했다는 느낌은 어떤 것일까요. 누군가의 기억으로부터 사라져가는 기분은 무엇일까요. 아마 저도 누군가에의 기억 속에는 사라진 사람이 되었겠지요. 그들의 기억 속 저는 어떤 사람이었을까요? 기억하고 싶은 사람일까요. 아니면 지워버리고 싶은 사람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