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옆 건물에 주차장은 아니지만 차 한대 정도가 겨우 들어갈 수 있는 빈공간이 있습니다. 간혹 건물에 방문한 사람들이 이곳에 주차를 하곤 하는데 이곳은 주차장도 아닐뿐더러 한두 대 정도가 좁은 공간에 비집고 들어가면 도로가 좁아져 운전하면서 회전하는 것이 여간 힘든게 아닙니다. 게다가 흡연하는 사람들까지 불법 주차 한 자동차 사이사이에 끼어있어 자칫 잘못하면 인사 사고가 우려되는 곳입니다. 때문에 진입 시 항상 불편하게 운전을 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바로 앞에는 공영 주차장이 구비 되어있어 있습니다만 공영 주차장이라는 말이 무색할 만큼 이곳저곳에 얌체 주차를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오늘 아침. 회사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내리려는데 한 눈에 봐도 정성들여 세차를 한 검은 세단 승용차 한대가 건물 옆 좁은 공터에 주차 하는 것을 봤습니다. 얼마나 매끈하게 세차를 했는지 마치 자동차 전체가 검은 거울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그 차는 여러 번의 전진과 후진을 반복한 끝에 벽 끝에 아슬아슬하게 주차를 마무리 했습니다. 차에서 내리려다 어떤 사람이기에 저 고급 승용차를 저곳에 주차할까 궁금해 차 안에서 물끄러미 그곳을 바라봤습니다.
이윽고 차문이 열리면서 한 중년의 남성이 내렸습니다. 마치 슬로우모션을 보듯 천천히 내린 그의 모습 중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그가 입은 점퍼였습니다. 눈에 띨 정도의 원색 파란 점퍼. 앞뒷면에는 그의 이름 석 자가 크게 새겨져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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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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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선거에 출마하는 사람인 듯합니다.
그가 내리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어디선가 한 여성이 나타났습니다. 그녀는 들고 있던 가방에서 급히 퍼프를 꺼내 그의 얼굴 이곳저곳을 두드렸습니다. 그녀의 행동은 그와 대조적으로 조급합니다.
그는 잠시 얼굴을 그녀에게 맡겼습니다. 1분 정도의 시간이 흐르고 수정이 마무리 된 듯 그는 느릿한 걸음으로 걸음을 지하철역 쪽으로 옮겼습니다. 그녀는 잰걸음으로 그의 뒤를 따랐습니다.
그 모습을 보니 문득 예전 회사를 다니던 시절이 생각났습니다. 매년 선거철이 되면 어디서 그렇게 나오는지 여기저기 빨강과 파랑 등 원색의 유니폼을 입고 유세를 하는 예비 후보자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새벽부터 역 앞, 아파트 앞 사거리에 나와 자신의 이름이 적힌 피켓을 들고 연신 90도로 인사를 하곤 했습니다. 저마다 지역 주민 복지를 위한 공약을 외치며 한 표를 자신들에게 행사해 주길 ‘부탁’하곤 했습니다.
점심시간엔 지역 노인복지관 식당 앞에 도열해 식사를 하러 오신 어르신들에게 일일이 명함을 돌리며 자신에게 한 표를 행사해 주십사 허리를 굽히곤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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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 세워진 그들의 허리는 더 이상 굽혀지지 않았습니다. 대신 주변 사람의 허리가 더 숙여지곤 했던 기억이 납니다.
역 쪽으로 멀어지는 그의 모습을 보며 잠시 다른 상상을 해봤습니다. 검은 세단 대신 지하철을 이용해 유세 현장으로 향하고, 바쁜 아침에 인사를 잘 받아주지 않지만 웃으며 인사를 건네며 소중한 한 표를 부탁하는 그의 모습 말입니다.
아니면 공영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내려 뒷자리에 걸어둔 선거용 옷으로 갈아입고 서둘러 역으로 향하며 주변 시민들에게 웃으며 인사를 건네는 모습을 말입니다.
회사에 들어와 그의 이름을 인터넷에 검색해봤습니다. 지역 내에서 나름 이름이 있는 회계사였습니다. 인터뷰 기사를 읽다가 한 매체에서 그가 말한 한 문장이 한 동안 머리에 남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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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에서 표를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인간의 존엄성을 깊이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누구에게나 겸손하게 고개를 숙이고 주민들의 애환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