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를 걱정하느라 현재를 괴롭히지 말자

by 모도

전화기가 꺼져있다. 올 시간이 지나도 들어오지 않는 아이. 똑딱똑딱 움직이는 초침 소리가 오늘따라 유난히 시끄럽다. 시한폭탄 타이머처럼 주변 공기마저 얼어붙게 한다.
남편 미간에 자리 잡은 내천자 모양의 주름이 오늘따라 깊고 진하다. 도어록 누르는 소리가 들리고, 폭탄은 터졌다. 불안한 내 마음은 녹아내렸다.

이렇게 예민하게 주변 상황에 신경 쓰기 시작한 것은 언제부터였을까? 부정적인 분위기가 감도는 상황일 때 왜 그 상황을 해결해줘야 할 것 같은 책임감을 느끼는 걸까?
내 불안의 시작은 참으로 오래됐다. 거슬러 올라가 본 기억 속에 한 장면, 나는 아픈 것도 눈치를 봐야 했다. 바빠 죽겠는데 아팠으니, 나는 혼날 이유를 만들어 버린 거다.
그래서 최대한 혼나지 않을 상황에 있어야 불안하지 않았다. 밥은 다 되어 있는지, 동생은 씻었는지, 숙제는 다 했는지 항상 체크하고 또 체크했다. 그런데도 혼나는 날은 엄마가 기분이 안 좋은 날이었다.
언제 날아올지 모를 엄마의 화. 늘 조마조마했고, 싸울 수 없는 상대라는 생각에 잠 속으로 숨어들었다. 얕은 숨을 내뱉으며 잠든 시간이 되어서야 조그마한 심장은 안정을 되찾았다.

마음이 콩밭에 가 있으니 글을 읽을 수도 적을 수도 없었다. 그런 와중에 책임감 하나는 또 뛰어나서, 서평단 활동으로 받은 책을 읽어야만 했다. 마감이 코 앞이라.
예민한 사람이 쓴 예민함에 대한 책. 저자는 자신이 왜 예민해지는지, 일상 속에서 어떤 예민한 행동을 하는지, 그런 순간을 어떻게 벗어나는지 다양한 이야기로 자신의 예민함을 표현했다.
책을 읽는 내내 불편했다. 발가벗겨진 채로 학교 운동장 가운데 서 있는 기분이랄까.
책 속의 화자가 낯설지 않았다. 속에 내가 있었다.
"불같은 성격에 애 하고 싸우면 어쩌지?"
"요즘 안 그래도 아슬아슬한데, 아빠한테 대들면 어쩌지?"
오로지 이 길밖에 없다는 듯, 예민하고 소심한 생각이 가득한 쪽으로 향하는 작가처럼, 나도 그 길을 따랐다.
다른 부분도 있긴 했지만, 공감되는 부분들이 많았다. 나만 유별나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될 부분까지 신경 쓰느라 힘들게 산다고 생각했다. 쿨하고 대범한 척하느라 잔뜩 긴장한 몸과 마음이 금세 지쳐도 내 탓만 했다.
순간, 바람 빠지는 소리가 나더니 웃음이 났다.
내가 유별나게 예민하고 소심한 거라고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었으니, 새로운 발견이었다. 객관화가 특별히 잘 된 건지, 내가 지금 처한 상황을 제대로 인지할 수 있었다.

"두 사람이 싸울 수도 있지."
"애 아빠도 이젠 알아야지. 자기가 원하는 대로 애가 키워지지 않는다는 걸."
"첫째도 알아야지. 아빠가 순간적인 화가 많지만, 이성적인 사람이라 그나마 대화가 통하는 사람인 걸. 겪어봐야 알지."
"지켜보느라 마음은 힘들겠지만, 내가 해줄 수 있는 부분은 없어. 두 사람이 한 판 붙으면 중재나 잘해 보자. 제발 한 판 붙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지만."

숨구멍이 틔었는지, 답답했던 가슴에 맑은 공기가 들어갔다. 먹으면 체할 것 같아, 젓가락만 하릴없이 들었다 놨다 했는데, 겉절이에 밥 한수저를 크게 먹었다. 어찌 그리 간도 안 맞고 맵기만 한지, 그래도 오랜만에 입안으로 밥이 들어가니 달았다. 다른 책을 꺼내 읽어보니 또 읽어지더라. 짧게 서평을 써서 마무리하려고 했는데 무슨 할 말이 그렇게 많던지.
아직 두 사람이 한 판 한 것도 아닌데 내가 나를 괴롭히느라 몸이 힘들었다. 어느 것 하나 해결된 것도 없고, 애도 남편도 바꿀 수 없으니 내가 나를 바꾸며 살아야 할 모양이다.
불안한 줄만 알았지, 예민하고 소심하다는 사실까지 보태졌으니 내가 할 일이 많다. 내 마음 다독이며 살 일도 까마득하니, 미래를 걱정하느라 현재를 괴롭히지 말자고 다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