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代에 걸친 엄마 이야기
엄마는 아이를 키우면서 반 철학자가 된다. 나도 그렇다.
아직 초보 철학자이긴 하지만 하루하루 충실히 육아의 길을 걷다보면 최소 괴짜는 면하리라 기대를 걸어본다.
나는 가끔 원로 철학자(엄마)와 이제는 고인이 된 명예 철학자(외할머니)에 대해 얘기를 나눈다. 내가 묻고 엄마가 대답하는 식이다. 우리 엄마는 외할머니를 '시대를 잘못 타고난 참으로 아까운 사람'이라고 얘기한다. 엄마만의 의견이라기보다 엄마 형제 자매들의 공통된 생각이다. 기개 넘치고 씩씩하고 유쾌한건 외할머니의 성격적 특징이요, 놀라운건 그게 어떤 분야라 하더라도 결과물을 뚝딱하고 만들어내는 능력이다. 식솔 10명의 의식주를 도맡아 하는것은 기본이고, 거의 하루도 빠지지 않고 집을 찾아오는 손님들을 대접하랴, 마을 잔치가 있는 날에는 급식소를 방불케하는 양의 음식을 만들어 한그릇씩이라도 먹고 가라고 준비하셨다고 한다.
그와중에 밭일은 밭일이라고 계절따라 땅의 기운에 맞춰 거뜬히 해내고, 수확한 산물들은 옆 큰도시 장날이 되면 혼자 가서 뚝딱하고 팔아 경제활동도 하셨다고 한다. 시집살이가 없었는가 하면 그것도 아니요, 자식들 눈에 당신의 어머니는 지아비 섬기는 지어미의 마음으로 남편을 존중하고 받들었다고 한다. 손재주는 어찌 그리도 좋은지 나무로 만들든 철을 두드리든 실을 꿰든 미싱을 돌리든 외할머니의 손만 거치면 흠잡을곳 없는 '제품'이 완성됐다.
아닌게 아니라 외손주인 내 기억 속의 외할머니는 말그대로 능력자였다. 외할머니는 요즘 태어났다면 과장을 보태 한 시대를 호령하는 장군같은 인물이 됐을것 같다. 다만 시대 특성상, 외할머니가 자랐던 가정 분위기상 외할머니는 '아무리 그래도 여자가 남자 머리 못 이긴다'는 말의 한계를 넘지는 못하신 듯 하다. 우리 엄마는 더 뻗어나가지 못했던 다재다능한 외할머니의 능력과 에너지가 지금도 못내 아쉬운 모양이다. 만약 하늘에서 자식들의 이런 생각과 목소리를 들으신다면 외할머니는 어떤 기분이 들까?
우리 엄마는 살아가면서 이루지 못해 아쉬운게 많은 사람이다. 능력이 없는것도 아닌데 그녀의 역사를 책으로 풀어내자면 열두권도 더 나올 크고 작은 사건들이 모여 지금의 엄마가 됐다. 그 풍파를 곁에서 지켜본 자식인 나는 엄마가 꿋꿋하게 살아있어줘서 감사하다고 생각한다. 엄마와 속깊은 얘기를 할때면 하는 말씀이 있다. "그래도 사람으로 태어났으면 이루고 싶고 남기고 싶은게 있지 않겠어...열심히 산다고 살았지만 아직 내가 경험조차 해보지 못한 세상이 많다는게 속상하다". 엄마의 응축된 나즈막한 속마음을 들을때면 내 마음이 쿵하고 내려앉는다. 그리고 왠지 모를 조급함이 든다. '내가 몸과 마음 편하게 육아만 하고 있을때가 아닌데...'
자기 자리에서 당신이 할수 있는걸 하고 이제서야 자신의 인생을 살고 있는 우리 엄마에게 '엄마는 자식들에게 어떤 엄마로 기억되고 싶냐'는 말을 아직 해본 적은 없다. 우리 사이의 대화에 낯간지러운 주제인 한편 엄마의 대답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내가 짐작하는 엄마의 대답은 "너희한테 짐이나 안되면서 살면 다행이지". 내 예상이 틀릴수도 있지만 이미 오래전부터 자신의 존재가 자식에게 짐이 될까봐 대비하던 엄마가 갑자기 거창하고 원대한 얘기를 할것 같지는 않다. 이런점은 참 지독하게도 외할머니를 빼닮아보인다.
자신의 평생을 자식들에게 내어줬으면서 이제는 자식에게 짐이 될까 염려하다니. 엄마가 아니었으면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있을지 상상조차 끔찍한데 말이다. 나는 내가 잘나서 잘커서 어른이 된줄 알았는데 아이를 낳아 길러보니 그런 생각을 꽤 길게 했던 자신이 귀엽고 가소로웠다. 갓난 아기가 성인이라고 하는 나이까지 무탈히 컸다면 그게 꼭 엄마나 아빠가 아닐지라도 주양육자의 관심과 지원과 보살핌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그렇게 나는 성인이 되고 부모가 됐다.
남편과 '부모란 무엇인가(?)'에 관한 얘기를 나누면서 서로의 부모관을 어렴풋이나마 느낄수 있었다. 가볍게 시작한 대화였는데 나중에는 둘다에게서 아직 어떤 부모가 되고 싶은지 잘 모르겠다는 나왔다. 그럼에도 나는 "나중에 아이들 입에서 내가 듣건 듣지않건 간에 엄마같은 사람이 내 엄마라서 크는 동안 많이 힘들었다는 얘기는 안나와야 할것 아니냐"고 했다. 그러면서 남편에게 내가 헛똑똑이 엄마가 되지 않도록 옆에서 도와달라고 했다.
나는 아이들에게 '우리 엄마는 자기 인생을 살았던 사람'으로 기억되면 좋겠다. 이건 사실 거창하고 원대한 내 바램이다. 누구나 자기 인생을 살고 싶어하지만 모종의 여러 이유로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살지 못하고 있기도 하다. '희생'은 숭고하고 고귀한 말이지만 절대적으로 멋지기만 한 말도 아닌듯 싶다. 상대가 누구냐에 따라 환경이 어떠냐에 따라 나의 '희생'과 '인내'가 결합했을때 최악의 결과물을 낳을 수도 있다.
자신의 삶을 살고 싶었지만 모종의 이유로 긴 기간동안 그러지 못했던 우리 엄마에게 나는 빚이 있다. 아무도 나에게 내 삶이 엄마에게 진 빚이라고 말하지 않지만 지금 내가 누리는 많은 행복이 꼭 엄마의 골수와 양분으로부터 온것 같아 그런 생각을 한다. 그럼에도 나는 이 채무가 참 좋은 빚이라고 생각한다. 보람을 느끼는 어떤 일을 하면서 경제적으로 자립된 삶을 산다면 우리 엄마에게는 빚을 갚을수 있게 되고, 나와 자식들 사이에는 서로 빚을 주고 받을 필요가 없게되니 말이다. 먼 훗날 내 자식들에게 '우리 엄마는 자기 인생을 살았던 사람'으로 기억된다면 나는 하늘에서도 마음이 편할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