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과 불닭볶음면

자매품 핵불닭볶음면

by 루이지애나미술관

우리 남편은 면 없이는 못살만큼 면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그중에서도 남편이 최고로 치는 라면이 있는데 바로 불닭볶음면이다. 라면의 품질(?)이 최고라기보다 그가 주관적으로 따졌을때 불닭볶음면만큼 그의 희노애락을 함께한 라면이 없기 때문이다. 얼마전 저녁으로 '또' 불닭볶음면을 먹는 남편을 보는데 그 전에는 한번도 든적이 없는 감정이 들었다. 급기야 눈물이 왈칵 나오려고 하길래 황급히 자리를 떴다.


1.연애시절

연애시절 남편은 밤늦게까지 일하다가 편의점에 가서 불닭볶음면에 삼각김밥을 사먹는 소소한 취미가 있었다. 야심한 밤에 왜그렇게 자극적인 라면을 먹냐고 물어보면 "그냥 맛있잖아"라고 멋쩍게 웃으며 대답하던 그였다. 나도 진짜 그 이유를 몰라서 물어본건 아니었다. 하루 온종일 머리를 굴리고 쥐어짜내며 일하던 그가 스트레스가 없을 리가 없었다. 그 라면이 입에 맞기도 했겠지만 특유의 매운맛이 과열된 머리와 긴장감을 떨쳐내는데 잠시나마 도움이 됐으니 거의 매일같이 먹지 않았겠는가. 그때 나는 남자친구가 매운 불닭볶음면을 자주 먹는게 걱정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매운 라면으로 스트레스를 푸는 모습이 귀엽게 보이기도 했다.


남편이 자기 라면은 불닭볶음면 컵라면으로, 나는 매운걸 잘 못먹으니 라면볶이 컵라면과 김밥 두줄을 챙겨와 같이 등산을 간 적도 있다. 지금 다시 생각하니 소박하고 귀여운 데이트였다.


2.신혼시절

불닭볶음면은 우리의 신혼생활에도 여전히 함께 했다. 오랜 시간 서로 달리 살아온 남녀가 신혼기간에 싸울 일은 많디 많다. 우리도 다르지 않았다. 연애기간이 짧지 않아 서로를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결혼은 연애와는 다르다는 사실을 매일 깨닫고 있었다. 별것도 아닌 일로 혹은 별 일로 나와 투닥대거나 언성을 높인 날에 남편은 어김없이 불닭볶음면을 찾았다. 불닭볶음면으로도 부족했던건지 마치 나를 보라는 식으로 '핵불닭볶음면'을 헉헉대면서 먹는 남편이었다. 그럴때면 나는 '많이 드셔~그렇게 먹으면 네 속이 따갑지 내 속이 따갑냐?' 속으로 생각하며 나는 나대로 분을 풀기도 했다.


남편이 꼭 싸웠을때만 그 라면을 찾은건 아니다. 오늘은 왠지 특식을 먹고싶다며 어느날은 불닭볶음면 두개를 끓여먹은 적도 있었다. 그 매운 라면을 먹으면서 땀을 비오듯 흘리고 눈밑 애교살에도 땀이 송골송골 맺히는데 그래도 맛있게 맵다며 끝까지 먹던 남편 표정이 기억난다.


3.육아기

결혼 10년 차를 향해 달려가는 요즘 남편은 예전만큼 불닭볶음면을 찾지는 않는다. 마음은 여전한데 아무래도 그의 위장이 이제는 불편한가보다. 남편이 한달에 한두번정도만 불닭볶음면을 먹는다는 사실이 새삼스럽다.


눈물이 왈칵 나올것 같던 그날은 남편이 회사에서 저녁을 못먹고 집에 와 마침 집에 하나 있던 불닭볶음면 컵라면을 먹던 날이었다. 그나마도 식탁에 앉아서 먹으면 될 것을 부엌 한구석에 서서 먹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니 속상한 마음이 올라와 나도 모르게 벌컥 화를 내며 "왜 거기서 그러고 먹고 있어! 앉아서 좀 제대로 먹지" 라고 하니 불닭볶음면 매운기가 퍼져서 아이들한테 갈까봐 빨리 먹고 치우려고 한다는 것이었다.


누구나 신혼 때는 그런 적이 있었을테다. 온갖 화려한 요리는 직접 다해보고 배우자가 맛있게 먹어주면 행복해하는 그런 때 말이다. 내가 요리를 좋아하는 편이기도 하지만 진정성 있게 칭찬해주는 남편에게 무엇인들 안해주고 싶었을까. 남편도 그랬다. 그가 해주는 요리를 먹으면서 엄지손가락을 치켜들고 맛있다고 춤을 추는나에게 그는 매번 최선을 다해 새로운 요리를 해줬다. 그랬던 우리였는데 지금은 잔반처리나 불닭볶음면으로 빠르게 한끼를 때우고 있다.


내가 김치볶음밥을 뚝딱하고 만들어주면 남편이 못이기는척 맛있게 먹었을텐데 육아로 인한 피곤함을 핑계로 남편이 불닭볶음면을 먹겠다는걸 애써 말리지 않았다. 물론 남편은 그 라면이 좋아서 오랜만에 먹는 것이니 신경쓰지 말라고 했지만 내 마음이 아직도 불편한걸 보면 따뜻한 밥을 차려주는게 좋았을걸 하는 후회와 미안함이 든다.


풋풋하게 연애하고 뜨겁게 사랑했고 치열하게 육아하며 살고 있는 우리 부부에게 불닭볶음면은 일기다. 지금까지 남편이 먹은 불닭볶음면에 우리의 역사가 있다. 잘 먹지는 못하지만 나는 불닭볶음면을 참으로 애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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