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다시 만나 해남 강진 목포 영암
가족 구성원 네 명이 하나 되어 떠나는 첫 여행이었다.
비행기를 타고 싶어 하는 큰아이의 바람은 다음을 기약하고 우리 모두 한 번도 가보지 않은 해남 땅끝마을을 행선지로 정했다. 차를 세 시간 넘게 타야 하는 긴 여정인데 어린아이들이 차에서 잘 견뎌줄 수 있을지 걱정을 뒤로한 채 아침 일찍 차를 타고 출발했다. 차에서 머무는 시간이 두 시간이 최대인 아이들은 약속이나 한 듯 낮잠을 자고 두 시간 있다가 깨어났다. 그때부터 2박 3일간 계획대로 되는 것 하나 없는 대환장 가족여행이 시작됐다.
다행히도 아이를 키우면서 내 성격이 많이 바뀐 게 이번 여행에 큰 도움이 됐다. 애초에 여정이 계획대로 되지 않을 수 있다는 걸 전제로 '꼭 가봐야 하는 곳'을 정해두지 않고 후보지와 동선만 생각해 뒀다. 계획대로 되면 좋고 아니면 말고 넷이서 같이 여행을 한다는 게 어디야 하는 마음으로 말이다.
아이들이 깬 시간이 하필 점심시간과 겹쳐 차에서는 무질서와 고성이 오갔다. 내가 운전을 하고 남편은 잠깐 쉰다고 조수석에 탔는데 먹을 것을 달라는 아이들의 허기를 채우느라 남편은 오히려 더 진땀이 났다.
간식으로 아이들의 짜증을 달래는 것도 잠시일 뿐 이내 배고프다고 하는 아이들을 위해 운전도 쉴 겸 영암으로 향했다. 맛있는 생선구이집 옆에 카트 경주장이 있다기에 겸사겸사 먹고 운전도 하러 말이다. 생선구이도 맛있었고 작은 아이는 아직 아기라 탑승이 어려웠지만 큰아이와 남편은 아까와는 다른 기쁨의 고성을 지르며 10분간 질주했다. 남편은 스트레스가 풀리는 시간이었다고 했다.
영암과 가까운 목포로 가서는 해상케이블카도 타보고 낙지탕탕이, 호롱구이, 유명하다는 콩물도 사 먹어봤다. 아이들은 줄 하나에 매달려 바다 위 높은 곳을 둥둥 떠다니는 케이블카가 무섭지도 않은지 케이블카 안에서 연신 즐겁다고 노래를 부르고 바다 아래 저것 좀 보라며 야단이었다.
높은 곳에 올라가는 걸 싫어하는 나는 하늘에 떠있는 내내 무서웠지만 말이다. 행복해하며 장난치는 아이들의 표정이 아직도 눈에 생생하다.
아직도 그날의 일정이 끝나지 않았다. 7시가 넘어서야 해남 바닷가 캠핑장에 도착해 숙소인 캠핑카에 들어갈 수 있었다. 아이들의 체력은 한계가 어디인지 이동하는 차에서 잠깐 졸더니 난생처음 머무르는 캠핑카가 신기해서인가 뛰어다니고 춤을 추고 자기들끼리 소리를 지르며 한바탕 난리가 났다. 우여곡절 끝에 식사를 마친 후 씻고 4명이 옹기종기 붙어 캠핑카에서 잠이 들었다. 어찌나 피곤했던지 온 가족이 9시도 안돼 잠이 든 것 같다.
다음날 일정도 그리 느슨하지 않았다. 진짜 행선지였던 해남 땅끝마을에 도착해 땅끝마을전망대로 갔다. 큰아이는 어제에 이어 모노레일이라는 탈것을 탄다고 즐거워했다. 그날따라 날씨가 정말 따뜻하고 환상적이었다.
모노레일을 타고 전망대로 올라가 따뜻한 햇살 아래 해남 고구마를 나눠먹고 바다와 섬들을 보면서 왠지 모르게 벅찬 행복을 다시 한번 느꼈다. 날씨가 좋아서일까 가족들과 함께여서일까 아니면 처음 가보는 곳을 보면서 드는 설렘 때문일까.
전망대를 내려와 근처 기사식당에서 만족스러운 식사를 하고 드디어 옆동네 강진으로 향했다. 강진에서는 민박집에서 자보기로 했다. '강진 푸소'는 이미 아는 사람들은 다 아는 여행 프로그램인데 강진 농가에서 정해진 기간 동안 숙식을 제공받는 형태다. 인심 좋고 음식 솜씨 좋은 민박집 사장님을 만나 우리 가족 모두 제집처럼 편하게 먹고 자고 쉬었다.
큰아이는 민박집 사장님이 방에서 티브이를 보고 있는데 내복 차림으로 사과를 먹으며 스윽 그 방으로 가더니 "할머니~"하면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는 것이 아닌가. 영상으로 남겨두고 싶은 재밌는 장면이었다. 마지막날 강진청자축제를 끝으로 2박 3일간의 여정을 마무리했다.
어릴 적 나의 가족여행을 생각하면 웃음이 나기보다는 숙연해진다. 여행을 갔던 기억이 적지는 않지만 재밌는 기억이 켜켜이 쌓여있다는 느낌은 아니다. 분명 출발할 때는 설렜는데 돌아올 때는 아이들이 울거나 침묵하며 집으로 왔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도 특이한 점은 나는 우리 가족끼리만 여행 가는 걸 좋아하지 않았다. 어색하고 썩 재미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던 것 같다. 지금 와 생각해도 많이 안타깝고 아쉽고 속상하다. 당시 우리 가족의 최선이 그 정도였다는 게.
내가 부모가 되어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여행을 해보니 가족여행은 참으로 만만치 않은 일이다. 아이들은 아이이기에 제 맘대로 굴었고 혼을 내도 잠시일 뿐 무질서와 혼돈의 향연이었다. 남편과 나의 협업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했던 것 같다. 체력 저하로 혹은 아이들의 말썽으로 한 사람의 머리가 지끈거리면 다른 한 사람은 배우자의 몸과 머리에 차오른 열기를 빼주는 역할을 했다. 남편은 집에서 육아하는 정도의 두세 배로 몸을 쓰며 아이들을 챙기고 또 같이 놀았다. 이번 여행에서 왠지 모르게 남편과 진짜 한 팀이 됐다는 느낌도 들었다.
가족을 이루고 우리 가족만의 여행을 하고 보니 나의 어린 시절 가족여행이 생각났다. 비록 내 머릿속에는 유쾌하지 않은 가족여행의 기억이 많지만 우리 아이들은 가족여행을 떠올렸을 때 '참 많이 웃었지' 하는 생각이 자주 들었으면 좋겠다. 나와 남편이 한 팀이 되어 부모 노릇을 하면 어떤 여행이라도 아이들이 아니, 온 가족이 많이 웃을 수 있을 것만 같다.
나는 이번 여행이 참 행복했다. 시간이 많이 흘러도 2025년에 가족들이 함께 갔던 해남강진 여행은 오래도록 기억에서 '팔딱팔딱' 살아있을 것 같다. 우리 다시 만나 해남 강진 영암 목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