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든 개똥철학
여행을 가려고 공항에 도착했다. 탑승 수속을 마치고 비행기가 기다리고 있는 게이트에서 창밖을 보며 대기하고 있었다.
한 비행기가 저 끝에서부터 천천히 길을 따라 움직이더니 활주로 출발선에 섰다. 속력을 빠르게 높이며 앞으로 나가더니 곧이어 바퀴가 땅에서 떨어지며 하늘을 향해 날아오르기 시작했다. 티비에서도 실제로도 자주 볼 수 있는 비행기가 이륙하는 광경이다.
그날은 그 장면을 보면서 '아이를 키워서 세상 밖으로 내보내는 육아의 과정'을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 비행기가 활주로 출발선에 도착하기 전까지가 부모의 몫이고 날아오르는 그 순간부터는 이제 모든 것이 이 아이의 몫이라는 생각 말이다.
이 비행기(아이)가 날아오르기 전까지는 부모가 최선을 다해 아이를 양육하고, 아이는 그 긴 시간 동안 축적된 에너지로 하늘을 날아오른다. 어떤 비행기는 적당한 에너지와 속도로 정해진 항로를 따라 저공비행을 하고 또 어떤 비행기는 구름을 뚫을 기세로 높이 올라가 항로를 자유자재로 개척하며 하늘을 무대 삼아 비행한다. 충분한 연료, 튼튼한 동체, 빠릿한 소프트웨어 외에도 크고 작은 요소들이 이 비행기의 궤적에 영향을 미치리라.
아직 학교도 안 간 아이를 키우면서 무슨 개똥철학을 이리도 자신 있게 얘기하나 싶다. 또 왜 그날은 비행기의 움직임을 보면서 아이의 성장과 육아가 겹쳐 보였는지 모르겠다. 나 혼자 뒤늦게 생각해 보건대 요즘 들어 나 자신에 대해 더 많이 더 깊게 생각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지금껏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온 내 인생이지만 그전에는 없었던 후회라는 게 조금씩 생긴다. 후회가 지나칠 때면 지금은 어쩔 수 없는 유년기 과거를 파고든다. '그때 이랬으면 어땠을까', '조금 힘들어도 그때 한번 부딪쳐보고 도전해 봤으면 어땠을까', '그때의 작은 성취를 기록으로 잘 남겨뒀으면 좋았을 텐데'. 별 후회가 다 든다. 세상에 저공비행하는 비행기와 고공비행하는 비행기만 있는 건 아니지만 내가 지금까지 어떤 속도로 어떤 궤적으로 날아왔는지 나 자신은 안다.
세상 어떤 부모든 마찬가지겠지만 활주로에서 날아오르는 비행기가 정해진 항로로 적당하게 날기를 바라지는 않을 것이다. 그보다는 비행기가 자율적으로 또 자기가 원하는 속도로 자기가 원하는 항로를 날기를 바랄 것이다. 훗날 우리 아이가 성인이 됐을 때 그러니까 이제부터 제 힘으로 날아오르기 시작할 때 아이는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까.
아주 오랫동안 나는 사람은 자기 자신의 힘으로 성장한다고 생각했다. 이 말이 틀렸다는 게 아니라 아이들의 양육자로 살면 살수록 부모의 정성스러운 손길이 얼마나 내실 있게 아이에게 전달되었느냐가 한 사람의 성장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아이를 낳고 나니 내 삶의 추가 점점 아이 중심으로 이동한다. 날아오르는 비행기를 보면서 자식 생각을 했던 내 모습이 약간은 어색하다. 분명 나는 내 삶을 제일 중시했는데 왜 한 발자국씩 뒤로 가는지. 이런 내 모습이 어색하긴 하지만 싫지는 않다.
미래 성인이 된 아이들의 힘차고 화려한 비행을 바란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아이들을 양육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