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보다 더 영화 같은 우리 사는 이야기 - LA친구 방문기
남편이 신장 결석으로 고생 중이다. 아파서 잘 걷지도 못하는 남편과 점심식사를 겨우 마치고 본인이 마실 물통(신장결석은 별다른 치료가 없고 - 물론 돌파괴술 같은 레이저 시술도 있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큰 돌을 작게 만들어 주는 것이기에 결국엔 물을 많이 많이 마셔서 자연스럽게 배출할 수밖에 다른 도리는 딱히 없다)에 물을 채우고 자기 방 겸 사무실로 돌아가려 하기에 내가 가져다주겠다고 했다. 그럼 레몬을 짜서 즙을 좀 넣어 달란다. 맹물을 많이 마셨더니 비려서 더 이상은 못 마시겠다고.
오랜만에 이케아에서 산 레몬스퀴저를 찬장에서 꺼냈다. 그래 한 동안 물을 많이 마셔야 할 것 같으니 지난주에 사다 놓은 레몬 한 바구니를 죄다 짜버리겠다는 요량으로 레몬을 자르는데 문득 4년 전의 레몬 나무가 떠올랐다.
마당 한가운데 있고 밑동이 제법 퉁실하고 가지가 멋있게 뻗어 있는 멋진 레몬나무.
4년 전 아이와 함께 남편이 있는 캐나다에 본격적으로 합류하기 위해 한국을 떠났다. 캐나다에 가기 전 잠시 여행 겸 들른 곳은 다름 아닌 LA. 지난 몇 년간 남편을 만나러 캐나다 - 한국을 왔다 갔다 하던 중 우연히 페이스북에서 대학 시절 친구에게 연락이 왔다. 이 친구로 말할 것 같으면 우리는 같은 과 동기지만 잘 몰랐고 4학년 때 함께 나간 교생실습에서 인연이 된 친구다. 실습 이후에도 가깝게 지내다가 졸업 후 나는 바로 임신과 출산을 했고 그녀는 해외로 떠났다. 아마도 마지막으로 본 것이 언제였더라, 4년 전 기준으로 13년(?) 만이었던 것 같다. 그녀는 해외에서 남편을 만나 LA에 자리 잡고 산다고 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한국에 가서 아이를 픽업해 캐나다로 가는 길에 LA에 잠시 들러서 너 보고 갈까? 란 아이디어가 떠올라 지나가는 말로 말했는데 친구가 반갑게 그럼 오라는 거다. 그래! 그럼 갈게 그 길로 항공편을 알아보니 안될 일도 아니었다. 우리는 어차피 캐나다행 편도 비행 편을 알아보고 있었기에 오히려 LA까지 마일리지로 끊고 LA에서 다시 캐나다로 가는 것이 더 이익이었다. 어찌어찌 급만남의 약속을 그해 연말에 잡고는 새해가 되어 딸아이와 함께 그녀가 있는 LA행 비행 편에 몸을 실었다.
비행기 밖으로 보이는 초록 초록한 낯선 풍경들. 그리고 블록마다 보이는 키가 크고 시원한 야자수들. 방문 당시 1월이라 두꺼운 점퍼를 입고 탔는데 웬걸 내리니 여름 날씨? 아 이게 사시사철 따뜻한 LA구나! 서부구나. LA 공항에 내려 우버를 타고 그녀가 있는 도시로 갔다. 공항에서 한 시간 남짓 좀 걸렸나. 그녀가 사는 곳은 멕시코인들이 주로 사는 동네였다. 타코 집이 많았고 집집마다 야자수에 선인장이 즐비한 곳이었다. 거기에 특이했던 것은 한 집 건너 한집에 레몬 나무나 오렌지 나무가 있는 것이었다. 아니면 라임 나무. 아니 집에서 갓 따먹는 오렌지라니!!! 이래서 캘리포니아 오렌지 오렌지 하는구나~ 싶더라.
야트막한 방갈로 스타일의 1층 집. 마당이 넓고 멋진 집이었다. 그중에 가장 멋진 것은 마당 한가운데 자리 잡고 있는 레몬 나무. 잘 생긴 레몬나무가 이 집의 균형을 맞추는 것 마냥 한가운데 터줏대감처럼 앉아 있었고 밑동이며 가지며 튼튼하고 건실, 튼실하지만 가지가 훨씬 많아서 마치 위는 삼각김밥 같고 키는 작은데 그 모습이 여간 멋진 게 아니더라! 거기다 아이 주먹 만한 레몬을 가득가득 달고 있으니 눈이 부시게 예쁜 노란 오나먼트를 주렁주렁 매단 여름 스타일의 크리스마스트리 같았다. 친구는 아들이 둘 있었고 셋째를 임신 중이었다. 레몬 마냥 상큼하고 어여쁜 아기들 둘이 레몬 나무 주위를 뱅뱅 돌며 술래 잡기도 하고 킥보드도 타고 레몬나무에 올라가 레몬을 따기도 했다. 핑크빛 석양이 물들 때 마당을 보면 노랗고 초록한 레몬나무와 색 대비를 이뤄 멋진 장관을 이루기도 했다.
그 옆에서 삼겹살도 굽고 거의 매일 갓 짠 레몬즙으로 타르타르소스나 샐러드도 만들었다. 그 이후로 나에게 있어 슈퍼에서 파는 모든 레몬이 다 별로가 되었다.(시시해졌다.) 우리 가족은 레몬을 정말 좋아해서 냉장고에 레몬이 떨어지지 않도록 구비해 두는데 볼 때마다 그 레몬나무에서 갓 딴 레몬과 비교하며 그리워하고 있다. 친구는 포르투갈에서 20대에 한인 민박집을 혼자서 운영할 정도로 살림도 하고 유달리 음식솜씨가 좋았다. 거의 만삭의 몸인데도 한창 손이 가는 아들 둘을 돌보며 우리 둘도 손님으로 맞이해 주는 그런 긍정적이고 매사 큰 일도 척척해내는 멋진 사람이었다. 그런데 보기에는 작은 체구에 날씬한 몸에 이 부분이 가장 놀랍고 인상적인데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풀 메이크업을 하는 내가 아는 유일한 여성이다. 그녀의 손톱에는 언제나 멋진 매니큐어가 칠해져 있다. 그녀의 부지런함과 바쁜 와중에도 스스로를 소홀히 하지 않는 태도와 정성에 입이 다물어지질 않았다. 생각해도 정말 정말 멋있는 여자다!
막상 도착하고 알게 된 사실. 우리는 11월 말 즘에 이 방문을 계획하고 1월에 만났고 나도 한국에서 막바지로 아이를 데리고 캐나다로 나올 준비에 이리저리 바빠 약속만 잡아 두고 어 하다 보니 출국일이 되어 출국한 터라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자세히 몰랐다. 도착하고 나니 우리가 도착하기 3일 전에 LA에 그녀의 가장 친한 절친이 세상을 떠났더랬다. 우리가 금요일인가 도착했는데 도착하고 난 다음날이 그녀의 장례식이었다. 그것도 모르고 신난 상태로 도착했는데 웬걸 그런 일이 있을 줄이야.
그럼 여행 일정을 변경해도 됐었는데 어찌 그랬나 물어보니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라 워낙에 정신도 없었고 일정을 변경하기에는 너무 코앞이라 이야기하기도 뭣했다고. 그리고 이 시기를 누군가와 보내면 더 좋을 것 같기도 했단다. 거기다 우리가 마음 잡고 13년 만에 잡은 물 건너오는 약속인데 취소하기 싫었다고.
나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13년 만에 만난 친구가 가장 힘들고 괴로운 순간이라니. 그렇기에 감사하지만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 너무 일어나자마자 직후에 만난 거라 어디서부터 어떻게 도와줘야 할지를 몰랐다. 거기다 나와 아이가 신세 지고 있는 상황에서 미안함만 더 커졌다. 그녀는 오히려 이 시기를 누군가와 함께 있으면 좋을 것 같다고 해서 애초에 5일만 머무를 계획에서 3주 후로 비행 편을 늦췄다. 살다 보면 이런 일도 있는 것이다.
친구는 낮에는 오히려 아무렇지도 않을 정도로 밝고(워낙 밝고 긍정적인 친구이기에) 우리와 함께 좋은 시간을 보냈다. 아이들을 데리고 근처 공원에 가기도 하고 푸드코트에 가서 밥을 먹기도 하고 어린 두 아들에게 맞춰 실내 놀이터에 가기도 하고. 가끔 우리 모녀는 기차를 타고 LA다운타운에도 나가고 근처 몰에 가기도 했다. 나는 나대로 상황이 웃긴 것이 마음이 편안한 상태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캐나다 본격 살이에 앞둬 가장 심란한 시기이기도 했다. 아이의 학교가 정해진 상태에서 나온 게 아니라 그냥 무조건 가서 몇 달 살아보자는 마음으로 나온 것이기에 아이가 다니는 초등학교에는 한 학기 통째로 체험학습만 올린 상태였다. 거기다 LA에 머무는 동안 디스크가 악화된 심지어 걷지도 못한 상태가 되었다. 한국에서 가져온 진통제로 버티고 있었고 낮에는 친구가 쉴 수 있도록 딸아이와 함께 자주 나가고 싶었지만 건강이 따라주질 않고 있었다. 나가서 걸으면 식은땀이 흐를 정도로 아팠으니까.
거기다 슬픔의 깊이를 알 수 없고 짐작조차 안 되는 친구를 두고 떠날 수도 없었다. 약 2주간 우리는 그저 그녀의 일상에 녹아 함께 일상을 보냈다. 밥을 같이 먹고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듣고 함께 끼니를 준비하고 함께 장을 보는 그런 일상. 13년 동안 얼굴 한 번 보지 않다가 갑자기 공유하게 되는 일상이라니. 지나고 보니 어쩌다가 LA에 가게 되었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친구가 가장 힘들 때 함께 일상을 보내라고. 그리고 나도 캐나다에 가기 전에 그녀를 통해 해외 살이를 조금은 예습할 수 있었고 지난 여러 해동안 여러 가지 골치 아픈 일로 애쓰며 무작정 달려온 터라 숨 고르기 할 수 있었다.
달을 넘겨 2월이 되었고 그 해 구정을 함께 했다. 중국인인 그녀의 남편은 손재주가 좋고 솜씨가 좋다. 가끔 중국 집밥도 해주고 지난 몇 주간 차고에서 뚝딱뚝딱하더니 멋진 테이블도 만들었다. 그 테이블에서 가장 먼저 한 일은 만두 빚기! 친구가 직접 소를 만들고 남편이 반죽해서 긴 방망이로 반죽을 밀고 나와 딸아이에게 던져두면 만두를 빚었다. 중국인들 만두 사랑은 말해 뭐 하랴. 이 집식구들은 이렇게 1년에 한 번 만두를 많이 빚어 1년 치를 빚는다고. 그래서 더 열심히 빚었다. 많이 많이. 친구네 곳간을 채워주고 싶어서.
LA에서의 마지막 주. 캐나다 합류가 늦어진 우리를 위해 남편이 휴가를 내어 마지막 며칠을 함께 보내기 위해 나와 딸아이를 데리러 왔다. 온 김에 그랜드캐년과 라스베이거스 여행을 하기로 했다. 그간 정이 담뿍 든 아이들과 어떻게 헤어지지 내심 걱정했는데 마지막 정신없는 여행 일정으로 아이들도 우리도 조금은 이별이 수월했다. 여행 후 돌아와 마지막 1박 2일을 함께 일상을 보냈다. 그리고 내일 다시 볼 사이처럼 자연스레 작별했다. 이 모든 일이 한바탕 꿈을 꾼 것만 같다. 오케스트라가 끝난 것 마냥. 엔딩크레디트가 올라가는 영화가 끝난 것처럼. 새로운 영화를 볼 때 새 캐릭터와 친해지고 익숙해져야 하니 낯설지만 영화가 끝나갈 때쯤에 아쉬운 것처럼. 그렇지만 영화가 끝나면 우린 각자의 현실로 돌아와 영화의 감동은 뒤로 한채 열심히 사는 것처럼. LA에서의 시간은 레몬나무라는 이름의 영화였다. 새벽녘 어스름한 아침, 이름처럼 칠흑같이 까만 까마귀들이 집 앞 도로에서 서성이는 모습, 노란 레몬이 주렁주렁 달린 나무. 거기에 어여쁜 아이들의 싱그러운 웃음소리. 식사 시간. 장보기. 그녀가 늘 행복하고 건강했으면 좋겠다. 나에게는 영화처럼 남아있다.
그 이후로 우리는 다시 각자의 새로운 일상으로 돌아가 지내고 있다. 그녀와 나의 안부는 인스타에 사진으로 공유하고 대화한다. 매일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아니지만 LA방문 이후로 나는 해마다 1월이면 그녀에게 꽃바구니를 보낸다. 그녀의 슬픔을 위로해 주기 위해 우리의 낯설고 슬프고 기쁘면서 반갑고 또 당시 일상을 함께 공유했던 그 시절을 추억하기 위해. 13년 만에 다시 만났기에 낯설지만 각자의 힘든 시기에 함께 밥을 먹고 일상을 나눈 덕에 나는 그녀가 내 가족처럼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