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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이팅게일 Oct 07. 2022

공황장애 타임라인

2021년 8월부터 2022년 8월까지 치열했던 1년간의 기록

2021년 8월 - 10월: 공황발작/병가/약 복용 시작/상담치료

1. 작년 8월 말 공황장애 증상을 처음 겪은 후 한 달만인 9월 말에 병가를 내고 지금까지 회사에 복귀하지 못하는 중이다. 병원을 처음 방문했더니 의사가 약을 권했다. 당시에는 회사에서의 스트레스가 주된 증상 발현의 원인이라 생각했고 병가를 냈으니 스트레스가 사라진 상태이기에 약을 먹지 않고 이겨내고 싶었다. 공황 증세라는 것이 나에게는 굉장히 이치에 맞지 않고 이상했다. 그래서 증상이 반복될 때마다 이건 헛된 증상이니 지나갈 것이라는 강력한 믿음 하에 증상이 있을 때마다 넷플릭스를 보거나 다른 일에 집중하며 조금 있으면 지나갈 것이라고, 사라질 것이라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보냈다. 그러나 조금 쉬면 괜찮아지겠지, 이렇게 증상과 나를 분리시키는 노력을 계속하면 나아지겠지라는 기대와 희망과는 다르게 증상은 나날이 심해졌고 가슴 두근거림이 하루 종일 반복, 어지럽고, 밖에도 나갈 수 없고 산책조차 불가능, 아무 일도 할 수 없었다. 일상생활이 불가능하다는 결론 하에 병가를 낸 후 한 달 만에 약을 복용하기 시작했고 의사의 권유에 따라 테라피스트를 만나 상담 치료도 시작했다.


2. 내가 먹은 약은 에스시탈로프람이고 10mg을 매일 한 알 씩 먹었다. 2주간은 통상적인 약 적응기로 이 기간 동안 머리가 아프고 울렁거려도 이상하지 않은 것이라고 했다. 하루 종일 어지럽고 먹으면 토할 것 같고 머리가 아파서 계속 침대에 누워만 있었다. 그러기를 열흘 후 증상은 나아졌고 기분도 좋아졌다. 힘이 나는 것 같았다. 처음에는 증상이 사라졌다는 사실만으로 감사하고 신이 났다. 한동안은 일상생활하며 운동도 하며 증상이 사라져서 살 것 같고 약이 잘 맞네 그럼 나는 이제 좋아질 일만 남았어라는 희망으로 하루하루 신나게 보냈다. 그러나 다른 문제가 발생했는데, 증상은 사라졌으나 밤마다 매일매일 지독한 악몽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병원에서는 약에 부작용 중 하나라고 했다. 악몽이 계속되니 수면의 질은 당연히 떨어졌고 몸 컨디션도 덩달아 안 좋아지기 시작했다. 이후 컨디션 좋고 나쁨을 반복하는 생활이 한 동안 이어졌다. 여전히 상담치료도 병행하였으나 누군가에게 증상을 토로하고 잘 들어주니 힐링이 되는 듯했으나 그때뿐, 큰 도움은 되지 않았다. 그래도 약기운 덕에 매일 운동하고 꽤나 활기찬 하루하루를 보냈다.


2021년 11월 - 2022 2월: 새로운 약 추가/공황장애 관련 카페 가입/공황장애 관련 책 읽기 시작

1. 악몽 때문에 잠을 못 잔다고 하니 의사가 다른 약을 처방해줬다. 이때부터 본격적인 고생이 시작되었다. 첫 번째 약과는 달리 두 번째 약의 부작용이 심했다. 나는 처음 약이 잘 맞았기에 두 번째 약도 잘 맞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2주가 지나도록 부작용 증세가 나아지질 않았다. 의사는 이 약이 안 맞으면 다른 약을 처방해줄 거라고 결국에 자기에게 맞는 약을 찾으면 된다고 했다. 처음 시도해본 두 번째 약의 부작용을 경험하고 난 후 그전까지는 의사와 병원에 의지하다가 처음으로 공황장애 관련 책을 찾아보게 되었다. 나는 인터넷에 나와 있는 정보는 거의 믿지 않는 편이라 책을 먼저 찾게 되었는데 시중에 나온 공황장애 극복기 및 관련 책을 몇 개 구입한 것 들 중에 총 3권으로 구성된 책(공황장애 1편 극복의 시작, 2편 극복의 길 위에서, 3편 불안 다스리기, 제이콥 정 저) 책이 있었는데 다른 책들과 다르게 공황 장애 증상부터 극복, 예후 증상 및 완치까지의 과정을 상당히 자세하게 나와 있었다. 마치 공황장애 백과사전 같았다. 또한 저자는 책과 함께 대표 공황장애 카페를 운영하고 있었다. 그렇게 책을 먼저 접하고 난 다음 카페에 가입했고 카페에서 보다 다양한 정보들을 접하게 되었다. 특히 약 관련 후기를 찾아보니 약이 맞는 경우는 대단히 운이 좋은 케이스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2. 약 한 달 주기로 내 몸을 상대로 한 약 실험이 시작됐다. 2주는 통상적인 약 적응 기간이라고 하니 어떤 부작용이 와도 참고 견뎠다. 2주 동안 몸이 적응하는 것을 지켜보고 괜찮으면 2주 더 복용, 그리고 안 맞으면 다시 다른 약 투여. 이런 사이클이니 한 달씩 보내니 3개월이란 시간은 금세 지나갔고 몸은 급격히 안 좋아졌다. 신기한 것은 새로운 약을 먹고 2주 후 안 맞으면 중단했는데, 이론적으로는 안 맞는 약을 끊었으니 다시 몸 상태가 첫 번째 약만 복용하던 시절로 돌아가야 하는데 몸은 이미 그때와 전혀 같지 않았다. 약 부작용으로 운동은커녕 다시 일상생활이 불가능해졌다. 거기에 마음은 마구 무너져 내려만 갔고 이게 맞나, 이렇게 하는 게 맞는 건가 의구심이 들기 시작했다. 상담치료도 계속 병행했으나 컨디션이 좋지 않은 탓인지 별 효과는 없었다.


3. 추가 약의 세 번째 시도했던 약을 중단, 다시 에스시탈로프람만 복용하던 중 의구심은 더해만 갔고 카페 책을 읽기 시작했다. 2월에 생일이 있었는데 근사한 생일을 보내기는커녕 몸이 좋지 않아 하루 종일 침대에 누워만 있었는데, 이게 대체 뭐 하는 건가? 싶었다. 약에 지쳐가고 내 몸이 실험대상도 아닌데 더구나 그 약에 몸이 변하고 안 좋아짐을 느꼈다. 그러다 책에서 저자는 약이 맞지 않아 약을 못 먹고 오로지 극복 노력으로 완치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어떤 사람들은 약이 맞지 않아 처음부터 약을 먹는 선택지가 아예 없는 경우도 있겠구나, 혹은 임신한 경우에도 마찬가지였을 거라고 생각하니 나도 아예 약을 먹는 선택지가 처음부터 없다고 생각해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몸을 상대로 어차피 약이라는 실험을 하는 판에 약을 끊는 것도 같은 실험의 일환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생일을 기점으로 갑자기 먹고 있던 약을 끊어버렸다. 의사와 상의 없이. 당시에는 내가 약 때문에 너무나 지쳐있던 상태라 이런 극단적인 생각을 하고 실행에 옮겼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하면 굉장히 끔찍하고 위험한 결정이었다.


2022 3월 - 4월: 약금단 현상/우울증/코로나

1. 2월 말에 먹던 약을 죄다 중단하고 난 그로부터 약 일주일 만에 심한 금단현상이 시작되었다. 머리가 지끈지끈 누군가가 내 뇌를 꼬집고 누르고 조물 조물 하는 것 같은 증상이 계속되었고 심해져만 갔다. 하루 종일 멀미가 났다. 그래도 약을 먹어서 겪는 부작용, 언제 끝날지 모르는 약 실험보다는 훨씬 낫다는 생각으로 견뎌냈다. 그리고 이건 금단 현상일 뿐이니 언젠간 사라질 것이 분명하다고 믿었고 이 생각 덕분에 몸은 힘들었지만 마음은 약을 먹을 때보다 편해졌다. 그러나 금단 현상 때문에 책을 읽을 수 있기는커녕 여전히 일상생활은 힘들었다.


2. 간간히 몸과 마음이 괜찮을 때 책을 열었다. 말이 읽은 거지 지금 생각해보면 이해는 고사하고 활자를 하나하나 읽는 수준이었다. 이미 공황발작 이전부터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볼 수 없을 정도로 집중력은 떨어져 있었고 이에 의사는 스트레스로 인한 브레인 포그 현상이라고 했다. 의사도 병원도 상담사도 그 누구에게도 의지할 수 없는 상황에서 믿고 의지할 수 있는 것은 책뿐이었기에 그냥 읽었다. 공황장애 카페를 방문하는 숫자가 늘게 되면서 마침 책의 저자가 직접 강의하는 공황장애 인지 교육과정 모집 공고를 보게 되었고 해외에 살고 있기에 한국 시간에 프로그램을 들을 수 있을까 염려도 되었지만 이미 나에게 다른 선택지가 없는 상황이어서 선정이 안돼도 어쩔 수 없다는 마음으로 신청했는데 감사하게도 교육 과정을 들을 수 있게 되었다.


3. 금단현상을 경험한 지 한 달 조금 안되던 3월 중순 경 코로나에 걸렸다.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심한 코로나 증상 때문인지 하루 종일 배 탄 듯 울렁대던 금단현상이 사라졌다. 코로나 완치까지 약 열흘 정도 걸렸는데 그 이후부터 지금까지 비슷한 증상은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4. 코로나 이후 몸은 다시 한번 약해졌다. 격리 해제 후 가족들과 함께 산책을 나갔는데 우리 모두 10분 걷고 100미터 달리기 한 사람들처럼 숨을 헉헉 대던 그때의 느낌을 잊을 수 없다. 거기다가 극심한 우울증이 찾아왔다. 의사에게 상담하니 코로나 후유증인 것 같다며 약을 처방해줬는데 실제로 복용하진 않았다. 겨우 금단현상이 사라졌는데 다시 반복하고 싶지 않았고 최악의 경우에 먹어야지라는 생각에 가지고 있긴 했다.


2022 4월 - 현재: 우울증/한국 방문/공황장애 인지교육 과정 수강 시작

1. 코로나 회복 후 심한 우울증이 시작된 이후 첫 인지 교육과정이 시작되었다. 첫 시간부터 심한 우울감으로 참여하지 못했다. 두 번째 시간부터 참여했는데 그때 저자가 우울증상에 관해 설명했다. 사람은 스트레스를 받거나 힘든 일이 있으면 우울감을 느낄 수 있는데 다만 공황 이전의 우울감이 좀 깔끔하고 깨끗한 우울감이라면 공황 이후에 찾아온 우울감은 좀 더 더러운 느낌이라는 설명에 큰 위로를 받았다. 나는 과거에도 출산 이후, 그리고 심적으로 크게 스트레스받은 일이 있은 후에 우울감을 겪은 적이 있는데 당시에 겪었던 우울감과는 크게 달라 스스로 혼란스러움에 빠져있었다. 스스로 혼란스럽고 정리도 안되고 이해도 안 됐다. 게다가 가족과 친구들에게 이야기해봤자 더 외롭기만 한 상황에 누군가가 이렇게 내가 겪는 상황을 쉽게 정리해주니 말도 못 할 큰 위로였다.


2. 두 번째 수업부터 인지교육과정에 믿음을 갖게 되었다. 그렇지만 당시 우울감이 심했기에 여전히 나는 책을 읽을 수도 제대로 뭔가에 집중할 수도 없었고 오히려 전보다 일상생활은 더욱 힘든 상태가 되었다. 인지교육과정을 들으면 카카오톡 그룹 챗에 초대해주시는데 많은 환우분들의 극복 노력을 매일 볼 수 있다. 나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과 매일매일 성실히 극복 노력하는 모습들을 보면 마음 한구석으로는 위안도 되고 좋은 에너지들을 받을 수 있었지만 선뜻 참여하기는 어려웠다. 자해를 매일 생각해볼 정도로 우울감이 심해진 상태였기 때문이다. 이유도 없고 끝도 없는 우울감이 심해지니 심해지니 내가 누구였는지 조차 이제는 기억이 나질 않았고 그렇다고 약을 다시 복용하자니 적응 기간을 다시 반복하는 것은 끔찍이 싫고. 그러다 나를 찾기 위해 옛 친구들에게 전화하기 시작했는데 한 친구에게 이런 상황을 말하니 한국에 오라고, 자기 집에 있으라며 그렇게 힘든데 거기 있지 말고 잠시 한국에 오라고 했다.


3. 환우분들이 늘 하시던 노력 중에 직면, 반대 증거 찾기가 있다. 안 그래도 나는 공황 증세가 나타난 이후 내가 있는 곳이 너무 싫어졌고 이곳이 마치 불행으로 가득 찬 것만 같았다. 처음에 한국을 떠나 이곳에 올 때만 해도 희망과 기대로 가득 찼는데 왜 이렇게 되었을까. 그때 그 마음을 다시 찾고 싶었고 사실 그런 거창한 생각보다 일단 있는 곳에서 벗어나면 조금 괜찮아질까 싶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한국을 방문하게 되었다.


4. 한국을 방문하니 그간의 불행이 사라진 것 만 같았다. 친구들을 맘껏 보고 웃고 떠들고, 내가 익숙한 곳들을 다니며 마음을 채워 나갔다. 한국에 오니 캐나다에서의 내 삶이 나쁘지 않게 보였다. 공황 증세도 사라진 것만 같았다. 인지 교육과정을 한국에 와서도 계속 들었지만 집중하기 어려웠다. 우울감도 공황 증세도 불안감도 못 느껴서 내가 공황 장애가 심지어 맞았나? 그냥 향수병이었나라는 착각도 들었다. 한국을 방문하며 건강검진도 받았는데 갑상선 이상에 간 수치 이상(술/담배 전혀 하지 않음) 등 건강이 실제로도 좋지 않았다. 아 그럼 공황장애가 아니라 나는 그냥 몸이 안 좋았던 건가?라는 생각과 스스로 반대 증거를 실컷 찾았다고 생각했고 아 난 이제 괜찮아진 거야라고 자만하며 약 한 달 반 머물고 캐나다로 다시 돌아왔다.


5. 시간은 5월 말이 되었고 웬걸 한국에서의 자신감 넘치고 밝고 긍정적인 모습은 온 데 간데 없이 난데없는 우울감이 다시 용솟음쳤다. 대체 이건 뭘까 한국에서의 나와 캐나다에서의 내가 그 온도차가 너무 달라 너무나 혼란스러웠다. 자해를 생각할 만큼의 우울감은 아니었지만 여전히 힘들고 고통스러운 날들이 계속되었다. 이제는 괜찮아지겠지라는 기대와는 완전히 달라서 더 우울했고 다시 뭘 어떻게 시작해야 하나,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나, 더 많은 복잡한 고민들이 생겼고 고통스러운 날들이 계속되었다.


6. 6월이 되어 인지 교육과정이 끝이 났다. 훌륭한 과정에 비해 그것을 극복 노력으로 이어가진 못했고 좋은 가이드와 여러 환우분들의 극복 노력을 보았지만 나는 정작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는 상태로 끝이 났다. 7월에 다시 해외에 나가야 하는 일정이 있어 다음 기수 인지 교육과정을 다시 신청하기 죄송스러웠지만 수업을 빠질 때 빠지더라도 이왕 시작한 거 계속 들으면 좋다는 권유 덕에 다시 들을 수 있게 되었다.


7. 해외 방문 동안 맞지 않는 시차 때문에 교육과정을 한 달간 들을 수 없었다. 책도 읽지 않았다. 다만 좋은 사람들을 만나 마음을 채웠고 가족들과 좋은 시간을 보냈다. 순간순간 울컥하는 마음과 우울감이 찾아오긴 했지만 새롭고 낯선 환경에서 그 마음에 빠져 있을 틈이 별로 없었고 특히 가족들과 24시간 붙어 있으니 자연히 가족들에게 내 증상과 마음에 대해 이야기할 시간이 많았고 그 덕분에 가족들이 좀 내 상태에 대해 이해할 수 있는 좋은 시간을 보냈다.


8. 7월 말 캐나다로 복귀했다. 다시 돌아가면 또 안 좋아지는 것은 아닐까라는 염려와는 달리 확실히 예전보다는 좀 더 건강해지고 마음도 단단해졌다. 공황 증세/우울감/금단 현상은 나타나지 않았다. 7개월 만에 운동도 다시 시작했다. 규칙적인 생활과 예전보다 더 많은 가족들의 응원과 사랑을 받으며 아 원래 공황이란 것이 갑자기 안 좋아졌다가 갑자기 이렇게 또 좋아지는 건가?라는 생각도 했다. 책을 읽을 수 있는 상태가 되었고 드라마, 영화도 전처럼 볼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인지 교육과정을 다시 듣기 시작했다. 약을 먹을 때 가장 답답했던 부분이 구름에 떠 있듯 어떤 생각을 하면 그 생각을 꾸준히 못하는 것, 갑자기 스리슬쩍 잊어지는 증상이었는데 그런 증상은 사라졌고 그때에 비해 확실히 집중력이 좋아졌고 생각이 또렷해졌다.


9. 이렇게 꾸준히 운동하고 규칙적인 생활을 하다 보면 좋아지겠지라는 생각으로 하루하루 생활하던 중, 갑자기 불편감을 인지했다. 아무 일도 없는데 손톱을 물어뜯고 긴장하고 초조한 상태에 있는 나를 발견했다. 그게 8월 중 순의 일이다. 왜 갑자기 불안증세를 경험하고 있지? 이 불안함은 어디에서 오는 거지? 여러 의문을 가지며 원인을 파악하려고 노력해도 대체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뚜렷한 이유도 없고 밑도 끝도 없는 불안감. 더러운 우울감처럼 더러운 불안감이 들었다. 그러다가 한 인지교육 강의에서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공황장애 예후로 불안감이 온다는 사실. 뇌는 처음에만 불안증세를 알아채지 그게 고질화가 되면 뇌는 더 이상 불안감을 인지하기 어려워서 실제로 공황장애 환자들이 이걸 인지하지 못해 오히려 본인이 불안감을 느끼고 있다고 말하지 않는다고 한다. 딱 내 상태였다. 마치 알레르기 주사가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는 것에 무디게 하는 것처럼 불안감에 무뎌져 인지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구나.


10. 책을 새로 구입했다. 처음 책을 전자책으로 구입해서 읽었는데 아무래도 전자책은 내가 필요한 부분을 다시 찾아 읽기 어렵고 보기 어려워서 그런지 자주 펼치기 어렵다. 나는 이제 겨우 극복 노력을 할 수 있는 상태가 비로소 되었구나. 이만큼 온 것이 다행이고 감사하다. 이제 출발점에 선 기분이다. 기념으로 책을 다시 구입했고 며칠 전부터 공부하듯 읽기 시작했다. 이게 바로 이미 많은 분들이 하고 계시는 이해 노력이구나 하고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공황장애 첫 증상 발생 이후 1년 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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