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분 좋은 하루입니다, 상처받은 사람들을 위한 작가 #라이팅게일 입니다.
저는 캐나다 토론토 광역지역 중 한 도시에 살고 있습니다. 6년 전 1월 한국을 떠나 이곳으로 왔어요.
아주 어릴 적 초등학교 입학하기 전에 아버지께서 공부하시는 바람에 외국에 몇 년 살긴 했지만 성인이 되어서는 해외여행이나 어학연수 등을 구체적으로 생각해 본 적은 없어요. 돌이켜보면 제 대학 생활은 그저 생존 모드였던 거 같습니다. 그런 꿈이나 생각도 자기 자신에 대해 알아가고 앞으로 무엇을 할지 생각해 봐야 하는데 돌이켜보니 저는 그때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힘들었던 시기였어요. 최근까지 비교적 오랜 시간 동안 저의 무능하고 무기력했던 20대를 오랜 시간 자책하고 괴로워했는데 작년에 그 해답을 찾은 이후 흘려 보낼 수 있었습니다.
대학교 졸업 직후 어떤 교수님과 인연이 닿아 그분께서 졸업하신 대학에 1년간 어학연수를 준비했는데 그땐 때가 아니었는지 물거품이 돼버렸어요. 나름 미국 학생 비자도 받았는데 사실 아쉬움이 크진 않았습니다.
그냥 눈앞에 보이는 기회 따라 살 때라 감사하게도 바로 다른 교수님(?)과 인연이 이어졌고 학비 지원을 받으며 동 대학원으로 진학할 수 있었어요.
그러나 그 길도 한 학기로 끝났습니다. 부모님의 반대와 이례 없는 학교 캠퍼스 이전도 있었지만 제가 학업을 이어가지 않은 건 그만큼의 열정이 없었어요. 솔직히 그땐 남자친구가 더 좋았거든요.
세상일이란 아무래도 그 순간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우선순위대로 흘러가는 법이죠. 곧 저는 당시 남자친구의 아이를 임신 하게 되었고 그 후 인생이 소용돌이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그와 힘겹게 새로운 가정을 꾸렸지만 얼마 안 가 종지부를 찍게 되었죠.
그렇게 저는 싱글맘 + 이혼 소송 중 + 안정감 없는 기간제 교사 + 부모님과의 갈등으로 서른 살을 맞았습니다.
그랬던 제게 해외에서 사는 것은 매우 비현실적인 이야기였죠.
그런데 어쩌다가 캐나다에 살게 되었냐고요?
그건 오로지 30년 전의 인연 덕분입니다.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30년 전이었던 1995년, 저는 그때 중학교 2학년이었어요. 밤 11시까지 공부시키던 입시학원을 잠시 쉬고 있었는데 그때 어느 친구가 자기랑 같이 외국어 학원에 다니자는 거예요. 영어를 좋아했던 저는 호기심이 일었고 그렇게 일주일에 세 번 시내에 있는 외국어 학원에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그곳에서 저의 은인인 Mark 선생님을 만났어요. 선생님은 캐나다에서 오신 분이었는데 당시 25살쯤 되었고 선생님들 중에 가장 풋풋하고 착한 분이셨죠. 저는 당시 중2병이 한창이라 많이 까불었는데 그런 까불 거림을 제일 나이스하게 받아주신 분이었습니다.
남 눈치 안 보고 서로의 의견을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그런 수업, 아무리 이상한 의견과 생각이라도 '넌 그렇게 생각하는구나?'라고 넘어가던 원어민 선생님들의 '쿨'한 태도를 배우며 덕분에 당시 아버지의 외도로 힘들었던 시기를 이건 내 일이 아니라 그분들 문제구나 하며 제 자신을 지킬 수 있었던 귀한 시간이었습니다.
마크 선생님은 얼마 있다가 본국으로 귀국하시게 되었는데요. 그분과 인연을 이어가고 싶다고 하니 주소를 알려주시더라고요. 당시엔 이메일이 존재하지 않을 때였습니다.
그렇게 편지로 시작한 인연은 이메일로 발전했어요. 저는 그저 오랜 인연의 누군가에게 영어로 편지를 쓴다는 것 자체가 즐거웠지 실제로 그분을 다시 만나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임신과 함께 결혼하게 되었을 때 마침 마크 선생님도 결혼을 앞두고 계셨고, 청첩장을 서로에게 보내주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앞서 말씀드렸듯 제 인생은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되었고 마크 선생님은 사라져가는 듯 했습니다.
그러다 다시 소식이 이어진 건 9년 전 2월, 5년간 근무했던 학교에서 해고 통보를 받은 직후였어요. 아이 온라인 클래스 덕분에 우연히 옛날에 쓰던 핫메일에 접속했는데 세상에 그간 사느라 확인하지 못한 마크 선생님께서 보낸 이메일을 발견하게 된 거예요.
당시 저는 학교를 그만둔 후 한 달이라도 영어권 나라로의 어학연수를 계획하고 있었습니다. 영어 교사로 5년을 일하며 영어권 나라에서 공부해 본 적 없다는 사실이 늘 콤플렉스였고 무엇보다 계획 없이 시작한 교사라는 직업을 계속 이어나갈 건지 진득하게 생각하고 싶었거든요.
그렇게 마크 선생님과도 운명처럼 인연이 다시 닿았겠다, 어디로 갈 건진 더 이상 생각할 필요도 없었죠. 곧 선생님께서 계신 캐나다 토론토로 떠났습니다.
한 달 반 일정으로 떠난 그 곳에서 제 운명의 사랑을 만났습니다. 그게 지금의 남편이랍니다.
지금 제가 살고 있는 삶은 바로 30년 전의 한 인연 덕분입니다.
종교도 없고 신도 믿지 않지만 이런 걸 보면 진짜 운명이란 게 있고 어떤 일들은 이미 예정되어 있던 걸까 싶기도 해요. 우연히 스쳐 지나간 바람 같았던 인연의 씨앗이 저 어딘가에 깊숙이 숨겨져 있다가 20년이 지난 후 비로소 싹을 피워내고 꿈꿔본 적도 계획한 적도 없는 지금 이곳으로 이끌었으니까요.
이 글을 읽고 계신 제게 소중한 인연이신 여러분, 오늘 지금 이 순간 함께하는 인연이 여러분들을 어디로 데려다줄지 모릅니다.
사랑스런 인연들과 함께하는 하루 보내시길 바랄게요.
늘 감사합니다.
감사함을 담아,
라이팅게일 드림
P.S 사진은 30년 전 학원 강의실, 마크 선생님께서 찍어주신 한창 발랄했던 중2때 저의 모습이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