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이맘때가 되면 모두가 그렇듯 나도 잠시 서서 돌아본다. 다른게 있다면 올해가 아닌 지난해를 돌아보는 것이다. 그러니까 요즘 나는 2024년이 내게 어떤 의미가 있었는지 파악 중이다. 2025년을 지금 평가하기엔 여전히 진행 중이므로 큰 그림을 보기 어렵고 어떤 의미가 있었는지는 1년을 더 묵힌 후 올해 일어났던 일과 연결해 보면 윤곽이 드러나니까.
지난해를 돌아 볼 때 바로 직전 달인 2023년 12월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떠올린다. 매일 똑같은, 경계 없는 하루를 반복하는 것 같아도 돌이켜보면 우리 인생도 소설처럼 복선이란 게 있더라. 그런 의미에서 12월은 다음 해에 대한 숨은 힌트를 찾는 재미가 있는 달이다.
2년 전 12월 1일, 나는 스페인 령 카나리아 제도 중 한 섬의 해변가에 서 있었다. 우울감과 패닉 어택으로 힘들어하던 그 해 11월, 영국으로 나 홀로 여행을 떠났고 운 좋게 타이밍이 맞아 나의 해외 취업 은인이자 멘토, 지금은 둘도 없는 친구인 Karen Louise Floyd 를 만나 함께 그란 카나리아로 왔다.
당시엔 많이 좋아졌다고, 바닥을 찍었으니 올라갈 일만 남았다고 생각했는데 이제와서 보면 지금 보다 훨씬 아팠고 이해할 수 없는 증상들에 고생이 참 많았구나 싶다. 그때는 인위적인 노력과 치열한 선택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에 와선 모든 게 자연스럽다.
돌이켜보면 당시 나는 한창 과거에 살고 있었다. 어린 시절부터 나를 힘들게 한 부모님, 두 번의 이혼 소송의 쓰라림과 이후 온갖 모진 말을 들으며 이 악물고 아이와 떨어져 지내던 시절, 갑작스러운 해고 소식의 씁쓸함과 개인 회생의 어려운 시절을 넘어 캐나다로 건너가 꿈에 그리던 해외취업의 성공, 1년 후 공황장애로 인한 병가까지 온갖 과거의 아픔들이 다 쓰다 만 물감들이 한데 섞인 것처럼 혼란스러웠다.
생각해보니 2023년 9월, 링크드인에 공황장애 고군분투기를 담은 병가일기를 올린 기점으로 혼탁하게 섞여 있던 과거의 상처들을 하나하나 벗겨내기 시작했다.
다시 스페인 해변가 장면으로 돌아와, 2023년 12월 1일 나는 검은 자갈들이 알알이 박힌 회색빛 해변가에서 지독한 과거로부터 벗어나겠노라 다짐했다. 언제나처럼 미지의 세계로 나가기 전 옆에서 도움을 주는 카렌이 나의 과거를 벗어던지는 의식을 치르도록 도와주었다. 모두에게 그런 의식 하나쯤은 필요한 법이다.
심리학에서 말하는 고통스러운 기억으로부터 벗어나는 유명한 방법들이 있다. 화장지에 해당 사건을 적고 변기에 넣어 버린다거나 기억을 자세히 적은 종이를 태우는 그런 일종의 의식과도 같은 것들이다. 이것은 기억을 단순히 없애는 것이 목적이 아닐뿐더러 의식을 치른다고 해서 갑자기 그 기억이 사라지거나 바로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이는 스스로 벗어나겠다는 의지와 함께 더 이상 휘둘리지 않겠다는, 앞으로는 능동적으로 대처하겠다는 거대한 변화의 순간이다. 특히 의식 이후 이따금씩 과거의 기억들이 밀려와도 그것들을 처리하고 돌려보낼 장소가 생기는 걸 의미한다. 내겐 그 장소가 저 멀리 대서양을 넘어 사하라 사막을 마주 보고 있는 그란 카나리아의 한 해변가다.
영상의 기온이었으나 콧날이 시큰해질 만큼 차가운 바람을 맞으며 충분히 서 있었다. 돌 하나를 던지며 이건 부모님, 또 하나 집어 들고 이건 이혼에 관한 기억, 정성스럽게 기억을 모아 집어 든 돌 하나 하나에 꾹꾹 눌러 담아 던졌다.
던진 돌들 위로 여러 차례 다녀가는 파도와 함께 기억도 부서졌다.
신기하게 그날은 쉬이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던진 돌의 크기와 수만큼이나 내 마음에 구멍이 난 듯했다. 처음으로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았고 가시를 빼낸후 얼얼함처럼 동시에 후련함을 느끼며 홀로 소파에 앉아 있던 그날 밤, 나에게 곁을 내어 주지 않던 고양이들이 다가와 다 안다는 듯 귀여운 엉덩이를 내 허벅지에 붙어 앉는 것이 아닌가. 여기저기 숭숭 구멍이 난 티셔츠에 찬 바람이 들어가는 듯한 시림이 고양이들의 따스한 온기로 채워졌던 그날 밤을 잊을 수 없다.
의식과 함께 시작된 2024년은 나의 과거의 기억들을 흘려보낸 해가 되었다.
감사일기를 쓰기 시작하며 고통스러운 상황과 닮아있는 순간을 마주하면 여지없이 무너지던 내가 오늘을 사는 법을 배웠고, 마음 깊은 곳 못 박아 두었던 우물 속 벌벌 떨고 있는 나를 발견했고, 내 안에 흐르는 거대한 사랑의 존재를 만나기도 했다. 여행에서 돌아와 쓰기 시작한 <나이 마흔, 정서적 독립과 잃어버린 자기 확신을 찾기 시작하다>로 혼탁한 기억의 덩어리를 한 겹 한 겹 벗겨 나갔고 1년 전 오늘은 늘 좋은 모습만 보여주고 싶었던 남편에게 나의 약점을 고백하며 취약성이라는 생살을 여실히 드러내기도 했다. 나의 고백에도 그래서 저녁 뭐해 먹을까, 라 묻는 남편을 보고 나의 약점이, 과거가 이제 더 이상 아무 힘이 없다는 걸 깨닫기도 했다.
그리고 지난해 12월 30일, 나는 그간 머리 터져라 고민하고, 감히 생각지도 못한, 평생의 짝사랑이자 애증의 대상인 어머니께 관계 휴식을 고하며 2024년을 마무리했다.
4년 전 병가에 들어갔을 때부터 대체 이놈의 병가 언제 끝나나, 뭐 해 먹고 사나, 고민하고, 시도하고, 계획하며 어떤 변화를 바라기도 했다. 커리어에서 바라던 큰 변화는 없었으나 개인사로 봤을 땐 송충이가 누에고치 속에서 끈적한 시간을 보냈다고나 할까.
주인공의 서사나 맥락은 소설 속에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모두 생이라는 소설 속 주인공이며 그 안엔 분명 다음 단계를 예고하는 복선과 힌트가 숨어 있다. 우리가 할 일은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호기심을 갖고 주변을 돌아보는 것이다.
지나고 보면 모든 일이 이미 정해진 것 같기도, 어떤 일들은 거대한 운명의 파도와도 같아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어 보일 때도 있지만 힌트를 하나 하나 찾다보면 생이 마치 온전히 내 선택이라도 된 듯한 뿌듯한 착각을 가지고 나아갈 수 있으니 이 또한 생이 주는 즐거움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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