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 커피를 마셨는지 모르겠다. 서른 둘에 전세금을 빼 두 돌 지난 나와 겨우 앉기 시작한 동생을 데리고 일본으로 유학을 떠난 아버지, 한창 공부 중 혼자 되신 할머니를 모시기 위해 아버지와 헤어져 어머니와 귀국 후 곧 태어난 남동생과 함께 넷이 살아가던 시절이었는지 모르겠다.
나에겐 고모가 넷이 있는데 특히 첫째, 둘째 고모가 적적하신 할머니를 돌보기 위해 집에 자주 들렀다. 이분들은 모이기만 하면 밤새 화투판이 벌어졌는데 붙임성이 좋았던 나는 할머니 무릎에 턱을 괴고 지켜보다 담배 심부름과 같은 잔심부름을 하곤 했다. 두 고모들은 호탕한 기질의 여장부들로 함께 있으면 즐거웠다. 매일 새벽에 일어나 수수한 한복을 입고 머릿기름을 곱게 발라 넘긴 은비녀 너머로 한 시간씩 염불을 외우며 조용한 일상을 보내던 할머니는 그날만큼은 목소리가 쩌렁쩌렁해지곤 했다.
8살때의 나는 커피 심부름을 참 좋아했다. 고모들께 이따금씩 받는 용돈 보다 영희가 타주는 커피 맛이 기깔난다는 칭찬이 내 어깨를 으쓱하게 했고 당시 삶이 녹록지 않아 걸핏하면 장녀인 나에게 신경질을 내거나 손찌검을 하던 어머니도 고모들이 놀러오신 날 만큼은 상냥해졌기 때문이다.
커피, 프리마, 설탕 둘둘둘. 거기다 물은 잔의 60퍼센트만, 숟가락으로 휘저으며 남몰래 한입 먹은 게 나의 첫 커피였을지도 모르겠다.
누구보다 터프한 삶을 살았지만 가녀린 미모를 가진 어머니는 하루에 한 잔 커피를 꼭 마셨는데 그때만큼은 우아한 사모님 같았다. 하얀색 커피잔과 소서에 작은 티스푼을 곁들여 휘젓는 모습, 컵이 부딪히는 달그락거리는 소리와 은은한 향기가 나는 좋았다.
커피는 늘 동경의 대상이었기에 고등학교 때 공부를 핑계 삼아 조금씩 들이켰고 대학에 가서 허름한 건물 입구 자판기 앞에 서서 대학 친구들과 한잔 뽑아 우유와 섞어 마셨다. 벚꽃비가 내리던 밤샘 도서관에 수북히 쌓인 일회용 컵 앞에서 오간 이야기는 별 보다 많을 것이다.
다이어트를 핑계로 아메리카노로 스리슬쩍 넘어갔다. 학교에 출근할 때는 원두를 내려 본격 일과가 시작되기 전 조용한 교무실에서 친한 선생님들과 나눠 마셨고 점심을 먹고 입을 헹구기 위해 또 한 잔 마셨다. 심지어 아이를 임신했을 때도 아메리카노 한 잔을 늘 마셨고 수유할 때만 잠시 끊었다가 다시 마셨다.
몽롱한 아침에 향으로 한 번, 그렇게 한 모금 들이켜서 한 번 더 내 몸을 열어주는 커피 한 잔. 한 번은 아주 졸린 상태에서 커피를 내리다 펄펄 끓는 물을 허벅지에 모두 쏟아 2도 화상을 입은 적도 있다. 그 어떤 일도 나의 커피 사랑을 막을 순 없었다.
그렇게 커피와 함께 한 세월만 30년이 넘어갈 2년 전 5월, 돌연 커피를 끊어버렸다. 당시 나는 극심한 우울증에서 스스로를 죽으라고 일으켜 세우기 위해 매일 운동하며 식단도 열심히 하던 시절이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지독한 폐렴과 함께역류성 식도염이란 것이 처음으로 찾아왔다.
나는 평생을 먹고 누워도 아무렇지도 않았던 사람이었으나 그날 이후 모든 생활 습관을 고쳐야 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커피였다.
사실 처음엔 잠시만 끊고 나아지면 돌아가려 했다. 그러나 약 3주 정도 지독한 금단현상에 시달렸는데 머리는 깨질 듯이 아팠고 브레인 포그에 각종 심장 두근 거림 및 불안이 엄습했다. 그때 알았다, 아 커피와 이별해야 하는구나.
금단 현상이 지나가니 신기하게 늘 바짝 쪼여있던 목덜미가 느슨해졌다. 우울증에 지난 4년간 불면을 달고 살았으나 잠의 질 자체는 개선되었다.
그 이후부터 커피를 한 모금도 마시지 않았다. 지금까지.
나의 인생에 늘 함께한 커피였기에 그 이별은 참 슬펐다. 커피향도 그 맛도 좋아하지만 내 인생에 큰 즐거움 중 하나가 새로운 커피숍에 찾아가 마시는 커피 한 잔이었다. 특히 이국적인 곳에서 한 잔씩 마시는 커피의 즐거움은 여행의 풍미를 더해주니까.
커피를 끊으니 입이 텁텁해 뭔가 마시고 싶다는 욕구가 절실해 차로 넘어왔다. 카페인을 바로 끊진 못해 초반엔 내 입맛에 커피 맛과 비슷한 잉글리시 브렉퍼스트 티나 얼그레이를 아침에 마시며 커피를 못 마시는 아쉬움을 달랬다. 이후 생전 마시지 않던 핫초코나 마차 라테로 전향했다. 그런 한 잔의 어떤 재미를 잃고 싶지 않았다.
커피를 향한 그리움이 한동안 계속되었으나 정작 마시진 않았다. 한 번 유혹에 넘어갈 뻔했지만 이내 그만두었다. 괴로웠던 금단현상을 생각하며 지금까지 해온 게 아깝다. 조금만 더 해보자. 참는 게 어렵지 마시는 건 너무나 쉬운 일이니까.
그러다 최근 나는 그마저도 그만두었다. 이제 마시는 행위가 아쉽지 않게 되었다. 물론 커피숍에 가서 글을 쓰거나 사람들을 만날 때 무언가를 한 잔 시켜두고 홀짝거리는 건 즐거운 일이다. 그러나 커피가 그립지 않다. 카페인도 이젠 내게 필요 없어졌다.
커피를 끊은 후 가장 아쉬운 점은 곧바로 정신이 차려지는 느낌의 상실이다. 커피는 마법의 음료처럼 정신 바짝 차리게 하는 효과가 있지 않은가. 차도 그런 효과가 있지만 커피만큼은 아니다.
커피를 끊고 잔여 카페인까지 모두 끊어내는데 2년하고도 반이 걸렸다. 어딘가에 중독되지 않은 삶은 참으로 자유롭다. 가끔 그리운 건 정신이 똑바로 차려지는 그런 느낌인데 그것보다 이 자유로운 삶이 좋아서 조금 흐리멍덩한 상태에서 살기로 했다.
러시아의 작가 안톤 체호프에 관한 흥미로운 일화가 있다.
그는 폐결핵으로 독일의 병원에 머물렀는데 생전 먼저 의사를 부른 법이 없던 그가 그날만큼은 먼저 의사를 불러 이렇게 말했다.
"나는 죽습니다." 이렇게 독일어로 한 번,
독일어를 못하는 아내를 위해 한 번 더.
그리고 샴페인 한 잔을 요청해 "오랫동안 샴페인을 마시지 못했네"라고 말하며 모두 마신 후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세상과 이별하는 순간을 알 수 있다면 맛있는 블랙커피 한 잔을 마시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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