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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매일 경험하는 기적

by 라이팅게일

딸아이가 남편을 처음 만난 것은 8년 전 겨울.

당시 아이는 초등학교 2학년 겨울 방학을 앞두고 있었고 남편은 나와 시간을 보내기 위해 한국에 머무르고 있었다.

해외 파견차 몽골에 있던 남편의 친한 친구가 남편이 한국에 있는 걸 알고 그해 크리스마스를 푸껫에서 함께 보내자며 우리 셋을 초대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딸아이에게 남편을 소개할 생각은 없었는데 친구 가족에게 마침 딸아이와 비슷한 또래 아이들이 있어 아이가 외국인 친구를 자연스럽게 사귈 수 있는 좋은 경험이 될 것 같아 그렇게 함께 가기로 결정했다.

당시 내가 살던 아파트 앞에서 어색하게 인사를 하고 함께 인천공항으로 향했다. 그때는 몰랐지만 그게 우리 셋의 첫 만남이자 가족으로서의 첫출발이었다.

친구 가족과 어울리다 보니 자연스레 우리 셋도 '가족'이 되어 버렸다. 만난 첫날부터 아이는 남편과 바로 아빠와 딸 사이가 되었는데 당시 영어를 한 마디도 못했던 수줍은 성격의 딸아이와 한국어를 한마디도 못하는 역시나 수줍은 성격의 남편, 이 둘이 대체 어떻게 대화를 하는진 알다 가도 모르겠지만 둘은 보자마자 서로 사랑에 빠진 것 같았다. 이 둘을 보고 있으면 사랑이 눈에 보였으니까.

그렇게 시작된 이 두 사람의 사랑은 현재도 진행형이다. 한국에서는 중학교를 막 졸업했을 나이의 딸아이는 한창 예민한 사춘기 시기를 지나고 있음에도 매일매일 남편과 이마에 머리를 맞대고 소파에 기대앉아 매일 밤 한 시간이 넘게 수다를 그렇게 떨어 댄다. 대화를 가만히 듣고 있으면 의식의 흐름대로 말꼬리 잡는 농담 따먹기부터 학교 이야기, 남편의 회사 이야기와 같은 시시콜콜한 이야기에 때로는 여러 분야를 넘나드는 열띤 토론까지 이어지는데 남편은 그런 딸아이가 못 견디게 사랑스러운지 대화 도중 딸아이 이마에 연신 입맞춤을 해댄다. 가끔은 내가 이 둘을 이어주려고 결혼한 건가 싶을 정도다. 보고 있어도 못 믿겠는 다소 비현실적이기까지 한 사랑스러운 광경이다.

과거에는 나를 사랑해 주고 생각해 주는 사람들이 옆에 있었음에도 결국 남이라며 그들이 해줬던 귀한 응원과 나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를 믿지 못했다. 결국은 혈육이 세상에서 나를 가장 잘 알 것이라고 생각했고 부모님이라는 이유만으로 모진 말과 평가를 믿어버렸던 나에게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이 두 사람을 보고 있으면 참 많은 생각이 든다.

이 두 사람의 사랑이 나를 변화시켰고 지금도 그렇다.

내가 가졌던 사람과 사랑에 대한 편견, 그 좁아터졌던 시각을 반성한다.
다시금 사랑에는 한계가 없음을 마음 깊이 이해한다.

이런 두 사람과 같은 사랑이 세상을 변화시키리라 믿는다.

이런 기적 같은 사랑이 세상에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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