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스런 재혼 그 후 이야기
이상한 꿈으로 눈을 떴다.
어떤 유명 연예인의 집에 초대되어 방문했는데 어떤 연유로 그의 집에서 하루 머물게 되었다. 초대해 준 사람은 없고 그의 아내가 집에 있었는데 그녀는 극심한 우울증에 빠져있는지 사람이 왔는데도 인기척도 못 느낄 만큼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아니 세상 모든 일에 관심이 없고 실의와 허무에 빠져 어떻게 되든 나 외에는 상관없고 관심도 없는 상태가 더 맞겠다.(정확하겠다) 남의 집에 들어왔는데 깨우기도 안 깨우기도 뭐 했다. 약간의 인기척을 내고 그녀의 주변을 서성였으나 그녀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나도 그녀의 옆에 누웠다. 그다음 날 아침이던가 나를 보더니 화들짝 놀랐다. 그녀는 내가 남편의 바람난 상대인 줄 알았나 보다. 나를 초대해 준 유명인은 아내의 우울증에 지쳐있었다. 그녀는 남편의 지극한 사랑을 원했다. 바로 작년의 나처럼.
몇 달 전의 나다. 작년의 나. 누워만 있었던 작년 이맘때가 가장 그랬다. 남편은 신경을 쓰지만 이내 별로 관심도 없는 듯 보였고 나는 내 안에 우울에 지독히 시달리고 있었기에 대화조차 힘들었다. 그가 나를 신경 써주길 바랬고 그는 몰라서 못하는 것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그에게 '부부'라는 공동체에 대한 총체적인 이해가 없었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우린 아직 자리 잡아가는 중이기에.
꿈에서 나는 그녀에게 이런저런 조언을 했다. 그녀의 남편에게도 조언했다. 무조건적인 사랑과 관심이 필요하다고. 사랑한다는 말, 친절한 말, 나를 신경 써주는 행동과 말. 이게 다라고. 그렇게 해야 한다고. 그 말로 나는 버텼다고. 나는 이렇게 좋아질 수 있었다고. 억지로 로맨스를 넣었더니 진짜 로맨스가 되었다고.
작년 마케도니아 여행이 떠올랐다. 마케도니아는 그리스 바로 위에 위치해 있고 분지의 형태다. 지중해 날씨 영향권에 포함된다. 그 말인즉슨 지중해 헬여름 날씨란 소리다. 낮은 45도 넘게 올라가고 바짝 마른 날씨다. 집은 건식 사우나 속이 된다. 그냥 하루 종일 40도 넘는 사우나 있는 상태라고 보면 된다. 문제는 집에 에어컨이나 선풍기조차 없어서 그냥 견뎌야 한다. 사람이 그쯤 되면 그냥 아무것도 못하는 상태가 된다. 더위에 지친 개처럼 낮잠을 내리 자고 이쯤 되면 입맛도 없다. 움직이는 것 자체가 고역이다. 할 수 있는 것이라곤 머리가 깨질 것 같은 차가운 약수로(마케도니아는 국토의 반 이상이 산이다. 그리고 이 마을은 상수도가 옆에 산에서 내려오는 약수를 이용한다, 그래서 수돗물을 그냥 마시는데 그 물이 그렇게 달디 달 수가 없고 마케도니아에 있는 내내 나의 피부는 아기피부 마냥 맨들했다!) 하루에 두세 번 샤워로 더위를 달래는 길 밖에 없다. 마케도니아 여름엔 그래서 낮에는 개미 한 마리 얼씬하지 않다가 더위가 서서히 식혀지는 저녁 5시-6시 즘부터 사람들이 밖으로 나온다. 그래서인지 저녁이 늦은 편인데 저녁을 8시쯤 시작해 온갖 술과 안주로 밤 11시 12시까지 즐긴다. 아이고 어른이고 할 것 없이 다운타운은 사람들로 북적인다. 그렇게 여름을 즐긴다.
마케도니아 사람들은 영어를 대체적으로 못하면서도 잘한다(?). 학생들은 학교에 영어를 정규 교과로 도입하기 시작해 영어를 자유자재로 잘 말하는 반면 나이 든 사람들은 영어를 한 마디도 못하고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그 말인즉슨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영어를 할 수 있는 남편의 친구들을 제외하면) 백색 소음을 견뎌야 한다. 남편이 통역해주지 않는 한 어떤 상황인지 감을 잡기 어렵다. 쓰다 보니 다시 열받는다. 아니 이 남편은 내가 전혀 우선순위가 아니고 눈치조차 보지 않았잖아???
남편은 그곳에 가서 여러 정신없다는 것을 핑계로(물론 그 말도 맞다) 일일이 통역해주지도 않고 캐치업 해주지도 않았다. 모두가 자기에게 말을 거는데 자기가 통역을 다 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물론 맞는 말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제 우리 세 가족이다. 가족 중심으로 어떻게든 나를 끌어들이고 그 분위기를 만들어 내는 것이 맞다. 그의 할 일이다. 그런데 남들이 오히려 내가 소외될까 봐 걱정하는데 남편은 주도적으로 나를 끼워주지 않았다. (아 놔, 쓰면서도 열받는다.) 사실 지금 이렇게 정리돼서 글을 쓰지만 당시엔 나조차도 그것이 정리가 되지 않았다. 그가 오랜만에 고국에 갔으니까 엄마와 할 말이 많겠지 이 정도로 나는 배려하고 있으면서도 화가 나는데 왜 화가 나는지 이해가 잘 되지 않았다. 적어도 생활하는 곳이 쾌적했다면 아마 온전한 정신으로 뭐가 문제였는지 파악이 잘 되었을 텐데 상상해 보라 거기다 살인적인 날씨가 나를 괴롭히고 밤에는 좁은 침대에 몸을 욱여넣어 잠도 거의 선잠. 어머니는 내가 잠을 많이 자는 것이 불만이신 것 같았다. 아침 일찍부터 나를 깨웠다. 남편은 쿨쿨 자고 있고.
이렇게 속상함이 쌓여가고 있던 어느 날, 무슨 일이었는지 이제는 기억이 안 나는데(와, 그때는 정말 속상한 일이었는데 왜 기억이 안나는 걸까! 1년도 안된 기억인데 말이다.) 내가 소외되는 상황이었나, 여느 때처럼 불편함을 견딤 하고 있는데 남편이 다가왔다. 어머님이 내가 괜찮은지 물어보라고 해서 왔다는 것이다.
거기서 눈물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아니 그 80 중반의 노인네의 눈에도 내가 고생하는 것이 보이는데 너는 이게 뭐니. 내가 소외되는 상황인 것조차 남편은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 어머님은 나에게 잔소리를 하실 수도 있고 뭘 시키실 수 있다. 내가 남편에게 잘하는지 좋은 엄마인지 궁금하실 테고. 그걸 보고 싶으셨을 거다. 그런데 남편 너는 그러면 안 되잖아. 나 너 믿고 여기 왔는데. 너는 나를 계속 신경 쓰고 나를 배려해야지. 네가 여기서 할 일은 그거지. 그건 어머니와 나 사이에 중재를 하라는 말도 아니야. 남편의 소임을 다해야지. 우린 가족이니까. 팀 멤버가 죽어가는데 모른 척하면 그 팀은 죽는 거라고. 너는 내 소속이고 나는 너의 소속이야. 영문 모르는 남편은 나를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 몰라 어깨를 토닥이고 안아주고 있었고 나는 울음을 그친 뒤 정리된 언어로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간의 속상함, 네가 왜 그러면 안 되는지, 그의 태도의 문제, 거기다 늘 정리 안되던 감정 - 남편이 아이에게만 다정하고 나에겐 다정하지 않는 것 - 을 토로했다.
남편은 모태스위트한 남자다. 한없이 다정한 사람이다. 그러니 아이에게는 말해 뭐 하랴. 그는 초혼이고 나는 재혼, 거기다 전남편 사이에서 낳은 딸아이가 있다. 나는 이혼 후에도 남편을 만나기 전까지 연애를 계속해왔고 다시 결혼을 할 생각은 없었다. 연애는 연애고 자식은 자식이니까. 별로 섞고 싶지 않았는데 남편과 아이가 처음 만나 남편 친구 가족과 한 달가량 푸껫 여행을 가고 난 뒤 마음을 고쳐 먹었다. 세상 스위트한 아빠역할을 자연스럽게 하기 시작하더니 하루 이틀도 안 돼 아이는 남편을 따르기 시작했고 자식도 없는 그가 세상 스위트한 아빠로 우리 사이보다 아이를 최우선으로 두는 모습에 결혼을 결심했다. 이 사람과 함께라면 나도 우리 딸도 행복할 수 있겠구나라는 확신에. 나는 아이를 낳는 순간부터 내 행복과 아이의 행복을 함께 절충할 수 있는 방법을 늘 모색했다. 그렇기에 굉장히 어려웠지만 그렇다고 불가능하지도 않았다. 아이가 4살이 되던 해 친아빠의 존재가 없어져 버려 오히려 자연스러웠고 그 이후에는 친정 아빠가 딸아이의 아빠 노릇을 해 주셨지만 역부족이었다. 서로 사랑하는 엄마 아빠가 밑에 자라는 그런 아이. 이 사람과 함께라면 그런 온전한 사랑을 줄 수 있을 것 같았고 역시나 그 선택은 옳았다! 아이는 남편에게서 오롯한 아빠 사랑을 받고 있고 사랑을 배우고 있다. 흔히 아빠에게서 배울 수 있는 것들 - 전구 갈기, 각종 집 고치기, 캠핑에서의 주의점 및 캠핑 텐트 치는 법부터 신체놀이(남편은 아이를 매일 업어주고 안아주고 던지고 뒹굴고 했다), 여전히 고등학생이 된 이후에도 둘이 팔씨름을 하거나 틈만 나면 안고 뽀뽀하고, 영어 책 읽기, 영화 보기, 토론하기, 코딩하기 등 일일이 열거하기 어렵다.
다시 나의 문제로 돌아와서 -
나에게 한없이 다정하던 그는 결혼 후 그 다정함을 아이에게만 쏟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나를 구박한다거나 그런 것은 아니었지만 결혼 후 우리의 로맨스가 사라졌달까. 우리 사이에 책임과 의무만 남은 것인가. 나는 그런 다정함을 원했지만 아이에게 쏟는 그가 기특하고 예쁘니까 그래 그것만으로도 만족하자 라는 마음으로 더 이상 나갈 생각은 안 했던 것 같고. 그래 우리 결혼하면 해피 에버 에프터가 그래 이런 것일까? 신데렐라와 프린스 차밍도 결혼생활이 이랬을까? 왜 아무도 해피에버애프터 그 이후에는 이야길 해주지 않는 거지?
그리고 어쩐지 아이에게 잘해주는 남편을 고마워하지 않고 뭔가 더 바라는 것 같고 아이에게 질투심을 느끼나? 이런 여러 오묘한 감정들이 맴돌아 정리되지 않았다. 그냥 그저 견딤 해야지. 그런 쌓여있는 감정들이 펄펄 끓는 마케도니아 날씨 속에서 정리가 되었다!
남편에게 말했다. 아이에게 주는 사랑 너무 고맙고 감사하다고. 그렇지만 아이에게 주는 사랑이 있고 결국 너와 내가 만나 결혼한 거야. 나는 우리 사이에 죽을 때까지 로맨스가 있길 원해. 나는 아이 때문에 너랑 결혼한 것이 아니야. 물론 아이에게 좋은 영향을 끼치고 아이가 행복해질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기에 한 것도 맞지만 그게 다가 아니야. 아이는 대학생이 되면 우리를 곧 떠날 거야. 아이는 그런 존재야. 우리가 평생 사랑하고 돌봐야 하지만 성장하면 놓아주면서 지켜주는 존재. 부모고 아이는 아이야. 우리 사이로부터 출발하고 아이는 그다음이야. 너와 나는 아이를 지극히 사랑해. 너무 행복해. 나는 우리 사이에 계속되는 로맨스가 있으면 좋겠어. 그리고 그 사랑이 매일 보였으면 좋겠어.
남편은 그제야 상황이 파악이 되는 모양이었다. 남편의 장점 중 하나는 내가 갑자기 이런 이야기를 쏟아내도 당황하지 않고 이해하고 맞춰준다. 갑자기 진지한 대화가 시작돼도 남편은 그것에 충실한다. 왜 이런 이야기를 왜 지금 하느냐는 핍박 같은 것은 하지 않는다.
자기는 내가 어른이니까 어떤 오구오구와 같은 제스처나 그런 다정함 들은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아이는 이런 것들을 당연히 해줘야 하고(아이는 이런 것들로 자라나니까!) 그렇지만 너를 사랑하는 마음이 변하거나 그런 건 아니라며 자기가 잘못했다고 사과했다.
그 이후로 우리는 달라졌다. 남편은 매일 사랑표현을 하기 시작했고 그런 사랑 표현에 내 마음도 많이 좋아졌다. 내가 우울감에 시달려 이유 없이 울 때면 아이처럼 나를 달랬다. 그리고 맛있는 것도 사주고 아이 달래듯이 아이에게 하듯 나에게도 표현하기 시작했다. 내가 가장 필요한 관심과 사랑이었다.
지난 밸런타인데이,
우린 각자가 받길 원하는 선물을 서로 사서 교환했다. 그는 세상 스위트하고 내 평생의 사랑이지만 그는 이런 기념일에 취약하다. 나는 그에게 줄 장미 한 다발을 샀지만 그에게 뭘 받으리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는데 아니나 다를까 몰래 나가서 샀는지 하트 모양 초콜릿 박스를 수줍게 건넸다. 우리는 안고 사랑스러운 입맞춤을 했다. 그리고 프랑크 시나트라의 “문 리버”에 맞춰 춤도 췄다. 아이에게도 함께 춤을 추자고 했는데 이런 면에 시크한 우리의 고등학생 딸내미는 소파에 누워 우리에게 눈 맞춰 고개만 젓고 다시 읽던 책을 읽는다. 세 곡을 연속으로 추고 함께 저녁 준비를 하러 갔다.
사랑이 느껴지는 포옹만으로도 태어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드는 날이었다.
*이미지는 이곳에서 가져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