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에 사랑스런 순간
부끄럽지만 저의 어릴 적 꿈은 Backstreetboys의 막내 Nick Carter라는 멤버와 결혼하는 것이었습니다. 저의 첫 최애라고 볼 수 있는데요, 당시엔 열심히 노력하면 언젠가 이룰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영어와 사랑에 빠졌던 중학생 시절 자연스레 팝음악을 많이 듣게 되었고 어머니께서 서점을 운영하신 덕에 당시 온갖 최신 잡지를 섭렵할 수 있었기에 덕질이 매우 수월했습니다.(핫뮤직 잡지 혹시 기억하시나요?)
영어를 너무 써먹어 보고 싶기도 했고 특히 동경하던 닉 오빠가 있는 미국에 하도 가고 싶어서 어머니께 어학연수를 보내달라고 매일 시위를 했습니다. 그 꿈이 너무도 간절해서 매일 밤 자기 전에 기도했던 기억도 나네요. 미국 어학연수 프로그램이 있다는 이유 하나로 특정 고등학교에 진학했고 저의 2년이 넘게 지속된 시위에 두 손 두 발 다 드신 어머니께서 아버지를 설득하신 덕에 고1 여름 방학에 미국 오레곤 지역으로 어학연수를 3주간 다녀오기도 했습니다. 그때 걸렸던 해외 앓이병이 낫질 않아 아마 지금 캐내디언 남편과 영어로 소통하며 살고 있나 봅니다.
아무튼 저의 오랜 꿈이 지난 11월 이뤄졌습니다!
닉과 결혼까진 아니어도 그의 솔로 콘서트를 다녀왔어요.
여전히 Backstreetboys 음악을 너무 좋아해서 주기적으로 정주행 하듯 찾아 듣고 있지만 15살 때만큼 닉에 열정적이지 않아서 사실 그의 솔로 콘서트를 갈까 말까 고민했는데요. 이왕 가는 거 그룹 완전체 공연이라면 망설임 없이 가겠는데 솔로라니... 거기다 그의 콘서트 사실을 뒤늦게 알아 좌석도 마땅치 않았어요. 콘서트 장소도 나이아가라 폭포에 위치해 있어서 야간 운전에 대한 부담도 있었고요. 이렇게 여러 생각들로 가성비를 따지고 있는데 불쑥 어릴 적 제가 나타나 혼을 내더라고요? 아니 이렇게 갈 수 있는데 왜 안 가냐고! 돈도 있고 시간도 있으면서!! 게다가 북미에 있으면서!!! 내 소원 성취해 내 한 풀어줘 이러는 겁니다.
그래서 다녀왔습니다.
알고 보니 닉 오빠는 자신의 커리어를 단 한 번도 멈추지 않았더라고요. Backstreetboys가 벌써 올해로 30년이 되었답니다. 자신의 솔로 곡과 그룹 곡을 두 시간 내내 혼자 이끌어 가는데 어색함 없이 너무나 훌륭히 소화해 내더라고요. 한편으로 한 사람이 노래를 불러도 괜찮을 만큼 다섯 명이 한 목소리를 내기 위해 이면에는 얼마나 연습을 했을까 싶었습니다. 30년간 이 업계에 몸담으며 포기하지 않고 솔로 앨범도 꾸준히 내왔고 얼마 전 새로 낸 솔로 앨범 기념으로 이렇게 북미 투어도 할 만큼 티켓 파워도 갖고 있다뇨. 얼마 전 90년대 팝스타였던 그의 남동생이 스스로 생을 마감한 일이 있었는데 동생을 위해 특별히 노래를 만들어 슬픔을 달래고 애도하는 방식도 뭉클하고 좋았습니다. 예전엔 그의 멋진 외모와 목소리에 반했다면 지금은 그의 꾸준함과 성실함, 그의 비극적인 일을 자신이 좋아하는 일로 극복하는 강인함과 팬들을 향한 애정, 여전히 소년미 뿜뿜한 해맑음과 순수함을 잃지 않은 그와 다시 한번 사랑에 빠졌습니다.
캐나다사람들은 보통 수줍어하고 조용해서 이 콘서트에 떼창이 있을까 싶었는데 정말 찐팬들만 왔나 보더라구요. 저와 비슷한 연배의 언니 동생들의 떼창 분위기에 놀랐고 그들의 떼창에 저도 모르게 노래가 술술 나오더라고요. (역시 어릴 때 듣고 외웠던 노래는 몸이 기억하나 봐요! 아마 백만 번 들어서 그런가 봅니다.) 그의 노래를 자습실에서 참 많이 들었는데 어쩐지 콤콤한 도시락통 냄새로 가득한 교실의 하얀 콘크리트 벽도 생각이 났습니다.
무엇보다 콘서트 내내 어린 저를 만나며 대화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그래 나는 오랜 꿈을 이뤘어. 15살 중학교 시절 당시 겪었던 힘들었던 가정 내 불화에도 영어에 대한 애정과 좋아하는 노래들로 힘든 부분을 잘 극복할 수 있었구나 싶어 어린 저에게 감사했습니다. 힘든 상황에서도 한편으로 좋아하는 것을 포기하지 않았던 어린 시절의 나를 만나 꼭 안고 이렇게 말해주었어요.
"네가 이 꿈을 꾼 덕분에 지금의 내가 이렇게 즐거운 시간을 보내게 되었어! 고마워"
콘서트에 가기 1년 전, 매일 어디론가 사라지고 싶을 정도로 우울감이 심했습니다. 그랬던 제가 1년 후 저의 첫사랑 최애 콘서트에 와서 신나게 노래도 부르고 27년전 방안에 붙여 놓은 브로마이드에서 그의 얼굴을 매일 보며 사랑을 꿈꾸다 그와 2미터 반경에 닿았다는 사실에 무한한 기쁨을 느꼈습니다. 27년 전에 이렇게 되리라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요.
콘서트를 딸아이와 함께 했는데 음악 취향이 매우 올드해서 Backstreetboys를 함께 좋아할 뿐 아니라 70년대 80년대 락그룹과 노래는 전부 꾀고 있는 아이와 함께 신나게 방방 뛰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콘서트가 끝난 자정이 다 된 시간, 쿵쾅거리는 마음과 쉽게 가라앉지 않는 흥분에 괜스레 나이아가라 폭포에서 서성이며 딸아이와 콘서트 이야기를 하며 감격의 순간을 함께 나눴습니다.
이제는 더 살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좋아져서 기쁨도 느낄 수 있구나 싶어 무엇보다 감격이었죠. 오랜만에 살아서 참 행복하다. 오래 살고 볼 일이야. 참 아름다운 밤이구나.라고 생각했던 날이었습니다. 나이아가라 폭포 앞에서 27년 전 1만 키로 떨어져 있는 작은 방에서 꾼 꿈으로 제가 가장 사랑하는 딸아이와 함께 우리가 정말 좋아하는 장소인 나이아가라 폭포까지 와서 이 멋진 순간을 함께 할 수 있게 해 준 모든 것에 깊이 감사를 드렸어요.
어릴 적 나에게 당당하게 성공했다고 말할 수 있는 그런 뿌듯하고 감격스러운 날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