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라이팅게일 Jan 26. 2024

How I Met My Husband(상)

내 인생에 영화 같은 순간 #3

[20년 만에 만난 캐나다 선생님의 신박한 조언]


* 전편에 이어지는 스토리로 배경은 2016년입니다. 

토론토에 온 지 열흘 정도 지나니 모든 것이 제법 익숙해졌습니다. 신발이 닳도록 하루에 4시간 정도 걸어다니다 보니 이곳이 원래 살던 곳처럼 느껴질 정도였죠. 게다가 어학원 스케줄이 아침 일찍 있어 토론토에 출근하는 여느 직장인처럼 빽빽한 지하철을 타고 무표정한 얼굴의 출근러들을 따라 지하철 입구까지 함께 걷다 보면 여기가 서울인지 토론토인지 잘 모르겠더라고요(직장인들의 아침 얼굴은 어느곳이던 모두 비슷한 것 같습니다).

출근길 사람들을 보는 재미가 쏠쏠했습니다. 토론토는 성공한 다문화 국가로 사람들의 출신 배경을 굉장히 존중해요. 그래서 그런지 사람들의 패션 스타일이 굉장히 다양합니다. 각자의 문화적 배경에 따른 스타일부터 특히 캐나다의 5월은 날씨가 참 애매한데 어떤 이는 패딩에 털모자를 쓰고 다니는가 하면 다른 이는 반팔에 반바지를 입고 있죠. 한국은 매 시즌 유행이 있어 그에 따른 트렌디함과 세련됨을 자랑하지만 한편으로 비슷비슷한 스타일이죠. 이곳은 이렇다 할 유행은 없지만 그만큼 다채로우니 재미있습니다. 

한편으로 토론토는 참 할 게 없는 심심한 도시입니다(이곳에서 4년 넘게 살아보니 캐나다 전체가 좀 그렇습니다). 인프라는 오래됐고 서울처럼 예쁜 카페나 멋진 레스토랑이 모여 있는 핫플도 거의 없습니다. 산이 없는 평평한 지대라 한국처럼 경치가 막 좋지도 않죠. 다만 도시가 오대호 중 하나인 온타리오 호수와 맞닿아 있어 비치에 가서 시간을 보내거나 곳곳에 흩어져 있는 트레일을 따라 산책하는 것이 이곳에서 할 수 있는 거의 전부입니다. 도시를 벗어나면 멋진 주립공원들이 있지만 태평양을 끼고 있는 밴쿠버나 로키마운틴이 있는 벤프, 주변에 산도 있고 프랑스 문화가 강한 몬트리올-퀘벡을 생각하면... 글쎄올시다죠. 주변 유명 관광지라고는 나이아가라 폭포 하나(물론 세계적으로 유명하죠. 매번 가도 멋진 나이아가라지만 제가 말하고자 하는 건, 서울이나 뉴욕 등 다른 나라의 대도시 혹은 역사가 깊은 유럽의 다른 도시에 비해 볼거리나 체험할 거리가 다양하지 않다는 겁니다). 다문화 국가이기에 한식, 중식, 일식은 말할 것도 없고 베트남식, 멕시칸, 발칸식, 이탈리안 등 다양한 레스토랑에 베이커리 천국이지만 그렇다고 딱히 이렇다 할 맛집도 없습니다. 인프라가 굉장히 오래되어 첨단 기술이 생활 속에 녹아 있는 한국과 아시아 도시의 생활 수준에 비하면 한참 뒤처져 있습니다. 그런데 또 토론토가 AI 선도 도시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매너가 좋고 친절이 몸에 밴듯한 배려하는 분위기가 있어 선진국처럼 느껴지는 참 신기하고 묘한 도시입니다.

열흘이 지나자 저는 토론토가 지겨워졌어요. 그리고 곧 후회가 몰려왔죠. 아, 이 돈으로 유럽여행이나 갈걸. 나 유럽 한 번도 가본 적 없는데. 슬슬 가성비가 생각나기 시작하더라고요. 그렇지만 누굴 탓하겠어요, 토론토에 대해 사전 조사 1도 없이 옆 도시 가듯 온 제 잘못이죠. 어학원의 같은 반 친구들은 매일 같이 반 친구들 혹은 홈스테이 친구들과 어울려 술을 마시거나 클럽에 가는 유흥활동으로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데 그런 것들을 졸업한 지도 10년이 넘은 저로서는 이미 해본 것들로 앞으로 남은 3주라는 시간을 보내고 싶지 않았습니다.

**
20년 만에 만난 마크 선생님은 제가 여기 있는 동안 일주일에 2번 이상 주기적으로 저를 만나줬습니다. 일도 하면서 한창 손이 많이 가는 제법 어린아이가 둘이나 있어 그의 인생에 가장 바쁜 시기에 개인적 시간을 내기 힘든 상황에서 제가 이곳에 와 있다는 이유로 감사하게도 귀한 시간을 내어 저를 살뜰히 챙겨주셨죠.

그날도 마크샘과 밥을 먹는 날이었어요.

"저 심심해요. 여기 너무 평화롭고 좋은 곳이긴 한데 앞으로 남은 3주동안 이렇게 여기가 서울인지 외국인지 모르는 상태에서 시간을 보내고 싶지 않아요. 오히려 내 나이또래의 현지인들은 어떻게 사는지, 이곳 생활이 어떤지 궁금한데 현지인들을 어떻게 하면 만날 수 있을까요?”

앞으로 3주간 무얼 해야 즐겁게 보냈다고 소문이 날까 라는 생각으로 폭풍 검색을 해보니 관광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기엔 이미 틀렸고 지하철 속에서 출근하는 제 나이또래의 사람들을 보며 이곳 사람들의 생활이 궁금해진 참이었습니다. 언제나 새로운 것은 사람을 통해 단기간내 많이 배울 수 있으니까요.

“그럼 데이팅 앱 깔아서 이곳 사람들과 데이트를 좀 해보는 게 어때?”

으잉? 이런 무슨 생각지도 못한 조언을. 데이팅앱이라면 채팅 사이트 말하는 건가? 저의 20대 초반 잠깐 유행했던 채팅사이트들이 떠오르더라구요. 요즘에는 한국도 데이팅앱을 통해 사람들을 많이 만나는 분위기지만 7년 전에는 매우 생소했습니다(적어도 제겐 생소했어요. 당시 제 주변 싱글들 중 데이팅 앱을 통해 사람을 만났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었으니까요). 그런데 심지어 외국에서 데이팅앱을 통해 누군가를 만난다는 것 자체가 겁이 났죠.

“데이팅앱이라뇨! 그거 원나잇 하는 사람들만 하는 거 아니에요? 무서워요.”

“아냐, 나도 데이팅 사이트 통해서 아내를 만났는데?”

마크선생님은 이곳은 한국처럼 소개팅 문화가 거의 없어 보통 누군가를 만날 때 보통 바나 클럽에서 만남이 시작되거나, 취미 활동으로 나간 밋업, 혹은 직장 내 등에서 만나는데 데이팅 앱도 이성을 만날 수 있는 여러 방법들 중 하나라며 물론 원나잇을 원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그건 어디서나 있을 것이고 보통 사람들이 많이 만나는 방법이라고 적극 추천했습니다.

그 자리에서는 아니라고 손사래를 쳤지만 집에 돌아오는 길에 문득 저는 데이팅앱이 궁금해졌습니다.

다음 편으로 이어집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내가 캐나다로 떠난 이유(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