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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이팅게일 Jan 27. 2024

How I Met My Husband(중)

내 인생에 영화같은 순간 #3

[캐나다에서 데이팅앱을 써보았습니다.]

전편에 이어지는 스토리로 배경은 2016년입니다. 

마크선생님과 헤어지고 난 뒤 숙소로 돌아오는 지하철 안에서 저는 데이팅 앱을 검색 하기 시작했습니다. 

보아하니 선생님 말씀대로 꼭 원나잇만 구하는 그런 용도는 아닌 듯했어요. 그래도 혹시나 싶어 네이버 블로그도 검색했는데 외국에서 친구 사귀기 좋은 앱 추천 댓글을 보고 해당 앱을 다운로드했습니다. 당시 데이팅 앱 시장에서 메이저에 속한 것은 아니었는데 어쩐지 너무 유명한 앱은 어중이떠중이들도 많을 것 같아 오히려 좋았습니다. 

앱에 접속하니 먼저 저의 기본적인 신상을 물어봅니다. 성별, 나이등의 기본적인 질문들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몇 가지 개인 신상 정보에 관한 질문이 끝나면 온보딩 질문으로 넘어갑니다(이 질문들을 온보딩이라고 표현한 것도 참 재밌습니다. 회사 신입 사원 트레이닝도 아닌데 말이죠). 온보딩 질문은 모두 객관식이고 꽤나 심도 있고 구체적입니다. 예를 들어 종교가 나의 삶에 얼마나 중요한지, 결혼을 현재 원하는지(장기적 관계를 원하는지, 원한다면 정착할 생각이 있는지 등), 자신의 감정에 얼마나 솔직한지, 정치 논쟁을 즐기는지, 정리를 잘 안 하는 사람과 데이트할 의향의 여부 등입니다. 거기에 대략적인 대답을 해야 온보딩이 끝나고 본격적으로 앱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온보딩 질문 외에도 원하면 거의 무한대에 가까운 질문에 답을 작성할 수 있어요. 이때 질문들은 더욱 다양해집니다(심지어 상황별 질문도 있어요). 질문들에 대한 대답을 더 많이 하면 할수록 제가 한 대답들을 토대로 저와 비슷하거나 같은 대답을 선택한 사람들을 추천해 줍니다. 

저는 일단 이 모든 과정 자체가 흥미로웠습니다. 게다가 잘 모르는 용어나 영어 표현을 볼 수 있어 이거 영어 공부도 되겠는데?라는 생각이 들어 동기부여마저 되더군요. 정신없이 모의고사 문제 풀이 하듯 한 40여 개 정도 풀다 보니 피곤해져서 멈췄습니다(역시나 객관식에 익숙한 한국인..). 질문이 끝도 없이 나오는데 총개수가 몇 개인지 가늠도 안되더라고요. 

일단 거기까지 답을 하니 추천 리스트가 뜹니다. 

추천 프로필들을 찬찬히 살펴보니 어떤 이성 스타일을 원하는지에 대한 내용이 대부분일 거라는 제 예상과는 달리 정성스럽고 진지한 자기소개가 담겨 있었습니다. 가족에 대한 소개, 어떤 배경에서 자랐는지,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자신이 좋아하는 책/영화 - 왜 그 책과 영화를 좋아하는지 - 매일 어떤 생각을 하는지, 자신의 철학이 뭔지부터 시작해서 저처럼 싱글 맘 /대디도 많아서 데이트에 어떤 규제가 있는지와 같이 솔직한 소개까지 쓰여 있는 걸 보니 대부분 진심인 듯 보여 마음이 한 결 편해졌습니다. 프로필만 봐도 어떤 느낌의 사람인지 알 수 있었고 무엇보다 재밌었습니다. 게다가 영어 공부는 덤이었죠!

해당 프로필의 사람이 마음에 드는 경우 북마크 표시처럼 생긴 하트 모양을 누를 수 있습니다. 그러면 상대에게 전달이 되는데 이렇게 나를 마음에 들어 하는 사람들의 리스트를 보는 것은 유료입니다. 그러다 서로 하트를 눌렀을 경우 'You guys liked each other!' 이런 종류의 메시지와 함께 상대방 프로필을 무료로 보여줍니다. 

탐색할 겸 이것저것 시도해 보니 슬슬 사람들이 말을 걸어옵니다. '우리가 매칭되었는데 한 번 이야기해 보자!' 혹은 '네가 마음에 드는데 잠깐 얘기할래?' 이런 식으로 가볍게 대화가 시작됩니다. 간단한 인사와 스몰톡 형식의 대화가 오가면 우리 언제/어디서 만나서 커피 마시자~ 라며 바로 만남을 제안하더라고요. 

기억하시는 분들은 기억하시죠? 90년대 후반에 나온 영화 "접속"을 시작으로 2000년대 초반까지 한때 채팅 사이트가 유행한 적이 있습니다. 저도 그 유행을 따라 20대 초반 한때 당시 유행했던 채팅 사이트를 통해 누군가를 만난 경험이 있습니다. 어쩌다 시작된 대화에서 그와 저는 말이 꽤나 잘 통했고 실제로 만나기는 한 두 달 후였습니다. 요즘엔 모르겠지만 당시 분위기상 채팅 사이트에서 누군가를 알게 되면 바로 만남을 갖기보다는 상대방과 충분한 친밀감을 쌓은 후 만남으로 이어진 것으로 기억하는데 여기는 바로 인사만 하고 친밀감이 쌓이기도 전에 만남을 제안한다는 것이 신기하고 충격이었습니다. 

다시금 마크선생님의 대화를 떠올렸죠. 아하, 여기는 데이팅앱이 정말 누군가를 만나기 위한 수단이구나. 소개팅 문화가 잘 없으니 데이팅 앱이 바로 소개팅 주선자 역할을 하게 되겠구나 싶었습니다. 다만 다른 점은 소개팅은 믿을만한 지인이 소개해주는 사람을 추천하고 보증하지만 데이팅 앱에서는 상세한 프로필과 밀도 있는 질문들로 상대방에 대한 정보를 대신하는 구조인 것이죠. 

하지만 어떻게 돌아가는지 이해한 것과 제가 직접 만남에 응하는 건 별개의 문제입니다. 만남을 제시하는 사람들에게 저는 이렇게 대응했습니다. 

“음 먼저 제안해 줘서 고마워. 그런데 나는 여기 여행하러 왔고 내가 있는 나라에서는 앱을 통해 누군가를 만나는 문화가 잘 없어서 낯설어. 그래서 직접 만나는 건 좀 무섭게 느껴지네.”

"아, 널 충분히 이해해. 대화해서 즐거웠고 토론토에서 남은 시간 즐겁게 보내길 바랄게, 안녕!"

거의 모두가 저렇게 대답하고 대화는 그쯤에서 마무리됩니다. 

당시 저는 딱히 누군가를 만날 생각이 없었기도 하고 오히려 저런 대답이 저의 선택을 존중해 주는 느낌과 함께 이들의 깔끔한 태도가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습니다. 

어차피 돌아가는 비행 편은 3주나 남았고 숙소도 이미 다 지불한 상태라 그때까지 꼼짝없이 여기 있어야 하는데 단조롭고 무료한 이 생활에 활력소를 찾은 기분이었습니다. 어학원을 마친 후 하루 종일 토론토 거리를 걷고 숙소에 돌아와 샤워한 후 자기 전 침대에 누워 앱에 접속해 다른 이들의 프로필을 구경하는 것이 곧 저의 일상이 되었습니다. 

다음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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