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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이팅게일 Jan 28. 2024

How I Met My Husband(하)

내 인생에 영화 같은 순간 #3

[데이팅 앱 5일차, 누군가를 만나기로 했습니다] 

전편에 이어지는 스토리로 배경은 2016년입니다. 

데이팅 앱을 시작한 지 한 5일쯤 되었을까요. 

그날도 여지없이 침대에 누워 앱을 켜고 마음에 드는 프로필에 하트를 누르며 사람들의 프로필을 이리저리 구경하고 있었습니다(하트를 눌러놓으면 제가 마음에 드는 프로필 리스트가 따로 저장이 되는 편리함이 있습니다). 상대는 이미 제 프로필에 호감을 표했는지 그의 프로필에 하트를 누르자마자 우리가 곧 매칭이 되었다는 메시지가 떴죠. 매칭이 된 프로필을 다시 한번 찬찬히 살펴보고 있는데 곧 그에게 메시지가 왔습니다. 

“안녕! 앱에 따르면 우리가 82 퍼센트 잘 맞는다는데 우리 조심스럽게 이야기해 볼까?”

그래 안될 것 없죠! 번역을 조심스럽게라고 했지만(아마 신중하게라는 뜻도 될 듯합니다) 첫 대화의 스타터 문장으로 carefully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지난 5일간 약 10명 정도가 말을 걸어왔는데 뭔가 첫 문장부터 배려가 돋보였건 그가 처음이었고 이내 호기심이 일었습니다. 

가벼운 자기소개를 시작으로 이런저런 이야기가 오갔습니다. 대화 내용이 구체적으로 잘 기억은 안 나지만 서로의 이름을 묻다가 이름의 뜻을 물어봤던 것이 기억이 납니다. 대화는 끊기지 않고 자연스레 흘러갔고 너무 가볍지도 그렇다고 또 너무 무겁지도 않은 분위기가 좋았습니다. 

한편 캐나다에 온 지 어느덧 3주차에 접어들었고 때는 캐나다 대표 공휴일 중 하나인 빅토리아 데이를 앞두고 있었어요. 빅토리아 데이는 영국 여왕으로 재위했던 빅토리아 여왕의 탄생을 기념하기 위한 날로 특히 온타리오에서는 이 빅토리아 데이를 기점으로 본격 여름의 시작으로 봅니다(캐나다 날씨는 춥고 변덕도 심해서 보통 4월까지 눈이 펑펑 내리는데 이날 이후부터 1년 중 가장 끝내주는 날씨가 시작됩니다! 가드닝 하시는 분들도 씨앗도 기다렸다가 빅토리아 데이 이후에 뿌리고 심어요). 공휴일이 낀 주말을 여기선 롱위켄드라고 부르는데 대화가 어느 정도 무르익자 역시나 그도 앞서 말을 걸어왔던 다른 이들처럼 만남을 제안했습니다. 

"이번 롱위켄드에 특별한 계획 있어? 우리 만나지 않을래?"

'아, 이제 이분하고도 더 이상 대화는 못 이어가겠네'

못내 아쉬웠지만 어쩌겠어요. 딱히 누군가를 만날 생각이 없는데요 뭐. 
그의 질문에 저는 잘 준비된 답변을 쿨하게 시전 했습니다.

다른 이들처럼 그도 적당히 몇 번 설득하다 말거나 아니면 다른 이들과 비슷한 대답을 할 거라는 기대와 달리 그는 이렇게 말을 이었갔습니다. 

“너의 걱정 충분히 이해해. 그럼 네가 불편하지 않게 공공장소에서 보는 건 어떨까? 예를 들어 네가 머무는 숙소 근처 도서관이라던지."

으잉? 도서관이라고? 지금까지 말을 걸어온 사람들 중에는 어떻게든 설득하고자 하거나 조르거나 캐나다가 얼마나 안전한지 자기는 나쁜 사람이 아니라는 둥.. 몇 가지 반응들이 있었어요. 그런데 내가 걱정되는데 뭐 어쩌라고 하는 마음으로 거절해왔죠.(몇몇이 그랬는데 그들의 그런 태도는 저로 하여금 더욱 반감을 갖게 했죠). 지금까지 이런 식으로 저를 배려하면서 제 걱정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는 사람은 그가 처음이었습니다. 

그의 생각지도 못한 대답에 저의 마음의 빗장도 그렇게 풀려 버렸습니다. 

'그래. 따지고 보면 사람 많은 공공장소에서 만나면 안전하기도 하고 도서관의 조용하고 평화로운 면학분위기 속에서 어떤 범죄가 일어나긴 힘들지.'

그의 멋진 해결책과 함께 걱정과 두려움은 이내 사그라들었고 무엇보다 저를 배려하고 존중하는 그의 태도와 말투가 마음에 들었습니다. 만나서 이야기 좀 하다가 별로면 곧장 집에 와야겠다고 마음 먹고 숙소 근처 도서관 대신 토론토에서 제가 가장 좋아하는 장소인 박물관을 골랐습니다. 

"그래 좋아. 내 걱정을 이해해 줘서 고맙고 그럼 우리 박물관에서 볼래? 시간은 몇 시가 괜찮니?"

그날은 목요일이었고 우리는 이틀 후인 토요일, 박물관 내 기념품 매장에서 만나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우리의 만남이 시작되었습니다. 

이편의 마지막 편인 에필로그에서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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