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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이팅게일 Jan 29. 2024

How I Met My Husband(에필로그)

내 인생에 영화 같은 순간 #3

내가 사랑에 빠진 순간 

저는 제가 사랑에 빠진 순간을 정확히 기억합니다. 

그날은 6월의 어느 날이었고 장소는 몬트리올의 어떤 거리였어요. 해가 질 무렵이었고 하늘이 핑크빛으로 물들어가던 시간. 저녁노을이 어스름하게 내려앉은랑 말랑한 시간대, 저녁 7시에서 8시 정도로 기억합니다. 오후에서 저녁으로 넘어가는 시간대. 몬트리올의 여름은 해가 늦게 지니까요. 우리는 손을 잡고 2차선 도로 옆 보도를 걷고 있었고 관공서 건물이었나 길 가다 분수대와 이름 모를 동상이 보여 그곳에서 잠시 걸터앉아 있었습니다. 그 거리는 메인도로가 아니었기에 사람이 많이 지나다니진 않았지만 여름 특유의 시끌벅적한 분위기가 있었고 길 건너 코너의 작은 피자집에서 “Dream a Little Dream of Me”라는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었습니다. 

'이 노래가 뭐였더라? 그래 이거 내가 태어나서 기억하는 첫 번째 로맨스 영화, French Kiss OST에 나온 음악이다.'

중학교 2학년 때 친구네 집에서 함께 모여 비디오로 봤던 영화입니다. 맥라이언과 캘빈 클라인이었나요? 이 노래로 저는 다시 사춘기 시절로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때 그런 사랑을 꿈꿨지, 가만 나 그 당시에 셀린 디온도 엄청 좋아했는데. 당시 머라이어 캐리파와 셀린 디온 파가 있었다면 나는 후자에 속했지. 아니 잠깐, 그러고 보니 내가 좋아했던 셀린 디온이 몬트리올 출신이 아니었던가? 난 지금 그녀의 고향에 와 있는 거잖아? 대박.'

당시 중학생이었던 제가 20년 후에 몬트리올의 한 거리에서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는 걸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걸 생각하니 왠지 모르게 가슴이 벅차올랐습니다. 그래, 세상 참 오래 살고 볼일이야. 로맨틱한 분위기에 끝판왕, 온 우주가 마치 제게 사랑에 빠져! 빠지라고!! 지금이야!!!라고 고함치듯 외치고 있었습니다. 안 빠지고는 못 배기게끔 말이죠.

분수대에 걸터앉아 이 사랑으로 가득한, 로맨스로 가득한 저의 마음을 주체하지 못해 풍선 터뜨리듯 당시 만난 지 3주 된 그것도 여행지에서 잠깐 만난 지금은 남편이 되었지만 당시엔 잘 몰랐던 그 외국인 남자에게 고백했습니다. 나 지금 너와 사랑에 빠진 것 같아. 나 널 사랑하는 거 같아. 아니 사랑해.

한 톨의 의심도 없는 순수하고 정확하고 깨끗하고 깔끔했던 그 감정이 저의 마음속에 내리 꽂혔습니다. 나는 이 남자와 사랑에 빠진 거야. 그 순수하고도 정확했던 감정에 이 사람과 어떻게 될까, 나는 다시 이 사람을 만날 수 있을까 등의 미래에 대한 걱정 따윈 없었습니다. 그저 순수했던 감정만 있을 뿐.

그는 갑작스러운 저의 고백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지만 곧 저를 부드럽게 안아주었습니다. 그렇게 한참 동안이나 말없이 그곳에서 앉아 있었어요. 사진은 일부러 찍지 않았습니다. 그 당시 느낌은 사진으로 표현될 일이 아니었고 사진으로 남겨두고 싶지도 않았거든요.(아니 사진 찍는 행위, 핸드폰을 꺼내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저 그 순간에 충실하고 싶었고 온전히 받아들이고 싶었습니다. 제 인생에 몇 없는 멋진 순간임을 직감적으로 알았고 그 순간을 오래오래 기억하고 싶었습니다. 제 마음속에. 저의 눈에. 

그날의 어스름했던 하늘과 선선한 바람을 떠올릴 때면 제 마음은 언제나 일렁이고 행복해지고 눈물이 조금 납니다. 



20년 만에 연락이 된 캐나다 원어민 선생님을 만나러 떠난 캐나다에서 우연히 데이팅앱을 통해 만난 그는 제 딸아이의 자상하고 다정한 아빠이자 저의 사랑스러운 남편이 되었습니다. 

가끔은 마케도니아라는 유럽의 작디작은 나라에서 태어난 남편과 동북아시아 끝에 있는 작은 나라에서 태어난 제가 다른 대륙에서 만나 가족을 이루고 산다는 사실을 떠올릴 때면 신기하고 벅찬 마음이 듭니다. 그리고 모든 커플이 그렇듯 남편과 제가 사실은 거의 불가능한 확률로 만난 얼마나 대단하고 특별한 인연인지를 생각하면 8년 전 토론토에서 그를 만난 것은 제 인생에 영화 같은 순간 중 하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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