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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이팅게일 Jan 23. 2024

내가 캐나다로 떠난 이유(하)

내 인생에 영화같은 순간 2 

*전편에 이어지는 이야기로 배경은 2016년입니다. 


2016년 5월 6일 - 토론토에 도착한 지 정확히 세 번째 되는 날, 드디어 20년 만에 Mark 선생님을 만났습니다. 자상하게도 선생님은 제가 머무는 숙소 앞에 오셔서 꽃을 들고 기다리고 계셨어요. 

정말... 20년 만이었어요! 20년 만에 선생님을 만나기 위해 캐나다에 진짜 오다니. 이렇게 정말 우리가 다시 만나게 되다니. 보고도 믿을 수 없었습니다. 도무지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더라구요. 중학생 때 캐나다로 돌아간 선생님과 연락을 꾸준히 했지만 딱히 그를 다시 만날 생각도, 계획도 없었습니다. 제게는 가장 즐거웠던 어린 시절의 추억이자 그때 열심히 영어 공부 한 덕에 별다른 어학 연수 없이도 영어 교사가 될 수 있게 해준 제 인생에 특별한 사건이었을 뿐 언젠가 서로 다시 만나게 되리라곤 상상조차 한 적이 없었습니다. 게다가 대학 졸업 후 바로 이어진 결혼 및 출산, 이혼으로 그 기회는 더욱더 멀어져 보였으니까요. 

야속한 세월은 우리 둘을 못 비켰고 쑥스러움과 반가움이 교차한 - 이루 말할 수 없는 마음에 선생님을 보자마자 고운 말을 한다는 것이 그만, 

“OMG. You’ so old!!”

라며 못된 말을 해버렸습니다. 20년 전에 나은 줄 알았던 중2병이 도진줄 알았습니다. 

서로 보고도 못 믿어하며 우린 뜨겁게 포옹했습니다. 선생님 눈에는 15살 중학생이 언제 이렇게 컸나 하시면서도 여전히 저를 중학생으로 대해주셨어요. 한 아이의 엄마가 되고 여러 일을 겪은 후라 그때의 중학생 소녀는 없지만 다 큰 저를 이렇게 어린아이로 대해 주시는 것에 눈물이 조금 났습니다.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만남이었기에 무척이나 반가웠습니다. 아니 반가웠다는 말 한마디로 부족했죠. 너무나 반가웠던 나머지 뭐랄까 오히려 어안이 벙벙했습니다. 

뜨거운 재회를 한 후 선생님께서 마침 숙소 근처에 Casa Loma라는 옛 성이 있다며 그곳에 가보기로 했습니다.

카사 로마는 나이아가라 폭포를 통한 수력발전으로 엄청난 부를 이룬 한 사업가가 만든 대저택으로 유럽의 중세시대 성을 체험할 수 있다는 선생님의 추천으로 가게 되었죠. 좁은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성 꼭대기까지 갈 수 있고 좁은 창문 틈으로 토론토가 한눈에 다 들어왔습니다. 사실 이런 풍경이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어요. 그저 한국에서 1만킬로즘 떨어져 있는 이 낯선 땅에서 20년 전 스치듯 만난 인연과 함께 있다는 사실이 그저 놀랍고 비현실적으로 느껴졌으니까요. 

카사 로마 곳곳을 구경하며 그간의 이야기들을 나누다가 선생님께 저의 새로운 영어 이름에 대한 조언을 구했습니다. 중학교 때 처음 지은 영어 이름은 Joan으로 당시 감명 깊게 읽었던 조안 리 님의 '스물셋의 사랑, 마흔아홉의 성공'이란 책을 읽고 그분의 이름에서 따왔습니다. 책에서 그녀는 무언가를 명명한다는 행위가 운명을 바꾸기도 한다면서 잔다르크처럼 '드넓은 세계에서 온갖 고난들을 극복하면서 용감하게 살아가는 여자의 삶'을 살아가길 바라는 마음에서 지으셨다고 해요. 저 또한 그 이름에 깊은 인상을 받아 조안으로 지었습니다. 중학생때 저는 그런 용감한 여자가 되고 싶었거든요. 

그런데 지난 10년간 힘든 시간을 보내고 나니 이젠 고난, 역경 극복 그런 것 말고 뭔가 편안한 이름을 갖고 싶었어요. 마침 조안이란 이름을 제일 많이 불러주셨던 선생님과 앞으로 새로운 20년의 운명을 결정할 이름을 함께 짓고 싶었습니다. 야외 분수대에 앉아 구글에서 여자 이름을 몇 개를 골랐고 열띤 토론 끝에 새 영어 이름인 'Naomi'가 탄생했습니다. 히브리어로 '기쁨'이란 뜻으로 '새로운 시작'이라는 의미도 있었습니다. 게다가 나오미(直美)는 일본이름이기도 합니다. 저는 제가 가장 처음 기억하는 어린 시절부터 초등학교 1학년때까지 일본에서 자랐습니다. 일본 이름의 나오미는 정직한, 곧은 아름다움이란 뜻으로 과하게 솔직한 저의 성격을 대변해 주는 것 같아 마음에 들었습니다. 저의 어린 시절에 가장 큰 영향을 준 두 언어에서 모두 쓰이는 나오미라는 이름을 선생님과 함께 지으며 그렇게 새로운 운명을 꿈꿨죠. 

이름 덕분일까요? 저는 지금 그 만남 이후로 완전히 새로운 운명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참 이상한 해였던 2016년, 직전 해에 결혼 생활의 공식 종지부를 찍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까란 고민이 본격적으로 시작할 그때, 갑자기 준비 없이 무직상태가 되었고 마침 운명처럼 10년 만에 선생님과 연락이 닿아 그 길로 떠난 캐나다에서 20년 만에 선생님을 다시 만났습니다. 

그리고 지금 이곳 캐나다에서 20년 만에 지구 반대편에서 만난 선생님과 같은 땅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을 떠올릴 때면 그와 재회했을때처럼 어안이 벙벙해지면서 이게 현실이 맞나 싶을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그와의 만남은 제 인생에 영화 같은 순간 중 하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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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키 영상(x) 이야기(o)]

카사 로마를 한 바퀴를 쓱 돌고 로비에 앉아 사람 구경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직원들이 꽃을 나르며 분주히 움직이더군요. 여기 결혼식이 있나? 하고 살피는 저의 시선을 본 선생님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기가 나름 결혼식 핫 플레이스야! 여기서 결혼식을 할 수도 있어.”

“아 정말요?”

"이렇게 여기까지 놀러 온 김에 너도 토론토에서 좋은 사람 만나서 한국 갈 때 결혼 해서 돌아가. 내가 여기서 아빠 역할 해줄게. 신부 입장할 때 내가 너 데려다줄게."

당시에는 "좋은 생각이에요 꼭 그럴래요. 나 여기서 좋은 사람 만나면 꼭 아빠 역할 해줘요. 약속이에요~!"

당시에는 그렇게 농담조로 깔깔댔지만 선생님의 그 덕담 덕분이었을까요, 저는 그로부터 약 2주 뒤 이곳 토론토에서 제 평생의 사랑을 만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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