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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이팅게일 Jan 22. 2024

내가 캐나다로 떠난 이유(중)

내 인생에 영화 같은 순간 2

*전편에서 이어지는 내용으로 이야기의 배경은 2016년입니다. 

1996년 중학생 때 대전의 한 외국어학원에서 당시 원어민 선생님으로 만난 Mark와 저는 그가 캐나다로 돌아간 이후에도 꾸준히 편지를 주고받았습니다. 당시에 Toronto, Ontario, Canada로 끝나는 주소를 적은 편지를 들고 우체국에 갈 때마다 느꼈던 설렘이 아직도 가끔 생각납니다. 

대학 진학 후 편지가 어느 순간 이메일로, 이메일은 다시 MSN 메신저로 이어졌습니다. 2007년 우리는 각자 배우자를 만나 결혼했고 그때 주고받은 서로의 청첩장을 아직도 갖고 있답니다. 다만 곧 이어진 출산 및 육아, 취직, 이혼 등으로 저는 힘든 시간을 보냈고 자연히 그의 존재도 점점 제 인생에서 사라져 갔죠. 

그러던 지난 2016년 2월, 5년간 다녔던 학교에서 재계약이 무산되었단 사실에 충격을 받고 있었던 어느 날 생전 쓰지 않던 Skype를 우연히 이용해야 하는 일이 생겨 추억의 핫메일 아이디로 접속을 했는데 세상에 그때로부터 4년 전인 2012년에 마크 선생님으로부터 메일이 떡하니 와 있는 게 아니겠어요? 이메일의 내용인즉슨 대만에 가게 되었는데 혹시 만날 수 있다면 서울에 잠시 들르겠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게다가 스카이프에는 예전 MSN 메신저 친구 목록도 포함되어 있었는데 거기에 그도 있었습니다. 

저는 당장 그에게 메세지를 보냈습니다. 

“Hello Mark! Can you remember me? This is Joan!”
(중학교 때 제 영어 이름은 Joan이었습니다) 

“OMG. Of course I do! How are you ~~~~~” 

이렇게 우리의 대화는 10년의 공백을 넘어 다시 이어졌습니다. 그는 알고 보니 당시 암투병 중이었던 지금의 아내와 사랑에 빠졌고 그럼에도 결혼을 감행했다고 했습니다. 3년 뒤 암은 완치되어 그들은 아이를 갖고 싶었지만 의사가 그녀의 나이와 높은 암 재발률 때문에 위험하다고 했음에도 기적같이 임신이 되어 지금은 아들 + 딸 이렇게 아이가 둘이나 있다고 했습니다. 당시 한국에서 캐나다로 돌아간 후 그는 IBM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했지만 역시나 가르치는 직업이 적성에 맞았다며 교사의 꿈을 가지고 늦게 다시 공부해 지금은 토론토 한 지역교육청 소속 공립고등학교 불어 선생님이 되었답니다. 그렇게 서로의 근황을 주고받으며 다시금 저는 중학생이 되어 깔깔거렸죠. 

정든 학교에서 재계약이 안되었다는 씁쓸한 소식을 듣고(기간제 교사들은 항상 겨울방학이 힘듭니다. 학사일정상 2월이 계약 만료라 다음 해에 어디에 있게 될지 모르기 때문이죠) 어떻게 할까 고민하던 중 적어도 한 학기는 쉬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길었던 이혼 소송으로 드디어 결혼 생활의 종지부를 찍게 된 일도 있었지만 우연히 두 달만 일하기로 했던 학교에서 5년간이나 일했고 꿈꿔본 적도 없던 교사라는 직업을 갖게 된 그 학교에서 바로 다른 학교에 자리를 알아보기엔 정이 많이 들었습니다. 무엇보다 다른 학교에서까지 교사라는 커리어를 이어서 할 만큼 직업 자체에 대한 확신이 없었죠. 교사에 대한 강력한 동기부여를 찾기 위해, 그간의 힘든 일을 겪으며 정신없이 살아온 터라 잠깐 멈춰 서서 숨 고르기 하기 위해 잠시 나만을 위한 시간을 가지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저는 어학연수는커녕 해외여행조차 제대로 가 본 적이 없었습니다.(2014년 3주간의 명상 리트릿을 위해 호주에 다녀오긴 했지만 그건 여행이라기보다 순전히 프로그램만 듣고 온 거라 여기선 여행이라 치지 않겠습니다.) 영어 교사로 근무했지만 정작 영어권 나라에서 공부해 본 적이 없다는 사실이 지난 5년 동안 저의 발목을 붙잡았고 그렇기에 앞으로도 계속 영어 교사로 살아가려면 짧더라도 꼭 경험해봐야겠다고 생각했죠. 

자 그럼 어디로 가야 하나. 그해 2월 마치 운명처럼 20년 전 인연된 Mark 선생님과 10년 만에 연락이 닿았습니다. 그럼 고민할 것도 없이 이왕 가는 거 캐나다죠! 어차피 영어권 나라에서 어학연수를 하는 것이 목적이었으니 사실 그 어떤 곳도 상관이 없었습니다. 

이렇게 된 이상 20년 만에 그를 꼭 만나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것만으로도 캐나다는 제게 갈 이유가 충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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