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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릴리 Oct 27. 2024

'무례한 말 대응하는 법' 병아리 탈출기

이제 2년차라서 좀 나아졌지만, 몇 달 전만 해도 '무례한 말에 대응'하기는 내가 제일 못하는 영역이었다. 

인간에 대한 기본적 신뢰가 있는지, 상대가 무례하게 나올 것이라고 미리 생각하지도 않을 뿐더러,

내가 어떻게 반응해야 과하지도 않으면서 나를 지킬 수 있는지 그걸 알 수 없어 벙쪄있는 경우가 많았다.


나의 직장생활 햇병아리 시절 이야기다.

신입사원으로 입사 직후 신입사원들끼리 구성된 부서에서 일을 하다가, 10개월 후 지금 있는 부서로 처음 옮겨왔다. 이 부서로 이동하고 나서 느낀 감정은, 쌩함, 그 자체였다. 3명 정도의 소수의 사람에게서 느낀 것이지만, 그게 참 크게 느껴졌다. 사실 그 전에는 인생에서 텃세라는 것을 경험해보지 못한 것 같다. 그래서 처음에는, 아 이게 말로만 듣던 텃세인가했다. 


몇 개월 지난 후 꽤 친해진 상태에서 돌아보면,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낯가림, 굳이 다가올 만큼 살갑지 않은 성격, 약간의 텃세. 이 정도였던 것 같다.


나에게 쌩함을 느끼게 한 장본인 셋은 구구와 지지 그리고 예예였는데, 이후 무례한 말들로 몇 달간 나를 고통스럽게 한 것은 구구와 지지이다. 


구구는 얼굴 표정이 없거나 찡그리고 있을 때가 많다. 그래서 얼굴을 마주볼 때마다 '나를 싫어하나'하는 생각이 들 때가 많았다. 그 앞에서 괜히 눈치를 보게 되는 때도 있었다. 그리고 내가 친해지고 싶어서 말을 걸면, ‘아닌데요?’, ‘안 물어봤는데요’, ‘뭐요.’  이런 식으로 대답했다. 그 특유의 쌩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을 하면 참, INFP의 마음이 너덜너덜해진다. 처음에 나는 한참 당황하며 ‘네?’라고밖에 반문하지 못하는 등 얼타는 병아리의 모습을 보였다. 


지나고 나서 글로 쓰니 별 거 아닌 것 같고, 이제는 '뭐요!'하는 구구의 얼굴이 앞에 그려지면서 웃기기도 하지만, 당시는 이렇게 밖에 반응하지 못하는 내가 참 미웠다. 원래 내가 사수하던 가치관은 ‘굳이 이기려고 부득부득 안 좋은 말을 뱉지 말자. 오히려 그게 지는 것이다’였다. 그렇게 생각하며 대부분의 말은 넘기는 타입이었는데, 회사에서 이런 상황이 오자 적당히 대응해주는 방법을 알아야 할 것 같았다.


내가 구구에게 시달리는 며칠 간 보다 못한 다른 부서원분들이 구구에게 이기는 법을 알려주었다. 

처음에 나에게 쌩함을 느끼게 했던 다른 장본인인 지지와 예예도 도움을 줬다. 지지는 구구의 특정 말에 내가 상처받아 보였는지 구구에게 “구구님, 싸이코패스에요?”라고 은근슬쩍 웃으며 얘기하며 구구를 저지했다. (물론 지지는 별 생각 없이 했을 수도 있고, 지지는 '싸이코패스'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하는 편이다) 


그리고 예예는 나에게 무례한 상대의 말에 대응하는 법을 전수해줬다. “리리님, 그럴 때는 ‘누구세요?’ 하거나 ‘저 아세요?’라고 말해보세요. 왠만한 건 다 방어돼요”라고 자신이 가지고 있는 꿀팁을 공개했다. 


나보다 6개월 입사가 빠르고, 나이는 더 어리지만 자신만의 사회생활 노하우를 가지고 있는 모습들이 멋있었다. 이후 예예와 빠르게 친밀해질 수 있었다. (나만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나에게 쌀쌀맞게 굴던 구구도 다른 부서원들이 그러니 자신도 나에게 꿀팁들을 전수해줬다. “리리님, 이럴 때는 ‘왜요’, ‘뭐요’, ‘어쩌라구요’ 이런 식으로 말하면 돼요.” 라고 했다. 그리고 그런 말을 써야 할 환경을 본인이 자꾸 만들었다. 그런데 구구가 무례하게 말을 할 때에도 이 말들은 입에 붙지를 않았다. 평생 해보지 않고 산 말이라서 뱉어도 어색하고,,, 뱉기도 어려웠다. 


그래도 이제 몇 달이 지나니, 벙쪄있지 않고 무슨 말이라도 뱉을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아니요.' 한 마디라도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니까. 그리고 같이 웃다가도 무례한 말을 듣거나 기분을 상하게 하면 미소를 거두고 정색해도 된다는 것을 알았으니까. 앞으로는 나도 나에게 걸맞는, 무례한 말 대응법을 터득해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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