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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방인 Sep 27. 2015

흙 2: 물건의 소유

사람이 아닌 모든 것 #2

물건에  집착하는 여자가 있었다.


    그녀는 스트레스가 쌓일 때마다, 음식을 사 먹는다거나, 혹은, 자신만을 위한 선물을 사들였다: 옷, 안경, 스카프, 화장품, 운동화 등.


그런 그녀를 보던 주변 사람들은 한결같이 이렇게 말했다.


[너 그렇게 물 흐르듯이 돈을 쓰다가는 나중에 큰 일 날 수도 있어.]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그녀는 이따금  한 번씩 미소를 지으며 웃어 넘겼다.



    그녀가 내게 알려준 버리지 못하는 잡동사니들은 참으로 다양했고, 다양했지만 한 가지 이유 때문에 그 물건들을 버리지 못한다고 했다; 사람에 대한 추억.


사람들이 너무나도 좋지만 그들을 믿지 못했던 그녀였기에, 사람에 집착할 수 없을 바에야, 그들과 함께였던 혹은 선물 받은 물건들을 소중히 여기자고 생각하게 되었다는 그녀.



그녀의 노트에 적혀있던 물건 리스트들은 대충 이러한 형상을 띄우고 있었다.


    1. 그가 사준 Peter Rabbit 물통, 그 안, 그의 검정 양말, 그가 쓰던 검정 cricket사 라이터, 그리고, 그가 준 검정 머리끈; 결코 사랑해서는 안 될 남자에 대한 한탄.


    2. 엄마가 사준 약지 반지; 남성 기피증이 있는 그녀에게 아주 좋은 남자들의 방패막이.


    3. 스위스 여행 중 만난 엄마와 동년배의 아주머니로부터 받은 스타벅스 인스턴트 커피 한 개; 다시는 못 만날 그녀를 위한 애도.


    4. 제주도 올레길의 상징인 조랑말 간세 인형 열쇠고리; 가깝다고 느꼈지만 한순간에 멀어진 여자에 대한 회상.


    5. 그녀의 애완견 초록이를 닮은 닥스훈트 모양의 가죽 열쇠고리; 가장 좋아했던 친구와 함께 떠난 이탈리아 피렌체 가죽 시장에서 친구가 선물로 사준 선물. 그리고, 그녀에 대한 집착을 한 층 덜어주었던 고마운 물건.


    6. 청계천의 밤길 노점상에서 푼돈 주고 산 몬스터주식회사 캐릭터인 마이크 핸드폰 마개; 열심히 고시 공부하는 친구 불러다가 저녁한끼 먹이고 산책하다 발견한 마이크를 선물해주고 그녀도 하나 샀다는 따뜻한 기억.


    7. 양띠인 그녀를 위한 양 모양의 인형 열쇠고리; 초등학교 시절 했던 오케스트라에서 에버랜드에 연주 겸 소풍을 갔을 적 행복했던 시절의 가장 찬란한 기억.


    8. 알 없는 안경테; 작가로서의 예민함을 깨어나게 해 주고, 작가가 되고픈 헛된 꿈을 일깨워 주는 도구.


    9. 좋아하는 향이 가미된 소이캔들 한 개; 스스로를 위한 최고의 사치.


    10. 향초 리필 팩 포장지, 혹은 쓰레기; 그녀의 공황장애, 과호흡증에 최고의 명약인 종이봉투.


    11. 1년짜리 스케줄러; 사람들과 함께 지냈던 모든 기억의 집합소.


    12. 담배 한 갑; 지울 수 없는 괴로운 기억들의 집합소.


    13. 검은색 칫솔 한 개와 너구리 라면 한 봉지; 지독히 불타올라 허무했던 첫사랑 상대에 대한 제사 음식들.


    14. PEZ사의 크리스마스 리미티드 사탕 열쇠고리; 어릴 적 추억이 아린, 그리고 어딘가 다가가기 두려웠던 대학 동기 언니에게 받은 다정한 선물.


     15. 사치스럽지 않은 한 권의 책 선물; 항우울제, 조울제 보다도  더욱더 강력한 약.


     16. 돈 한 푼 들이지 않은 한곡의 음악 선물; 마음이 다 담긴 최고의 선물, 떨림, 설렘, 진동.



이 모든 물건이나 선물들은 그녀의 품에서 최소 3년에서 10년 내지 머물고 있었다.


    물건은 10년 넘게 보관할 수 있지만, 사람은 여자이건 남자이건 3년에  한 번씩은 꼭 물갈이를 한다던 그녀. 그래서 나에게도 큰 기대를 하지 말아 달라고 요구했었던 그녀.


나는 그래서 생각해 보았다.


    뒤  돌아봤을 때, 사람이 남아 있지 않는 삶을 살면 그건 아마도 한참 잘못되어도 잘못된 삶 아닐까?


    그녀는 어쩌면 삶이란 것을 제대로 못 고 있는 것 아닐까?


제발, 그녀가 간절히 사람에게 매달리는 날이 오기만을 바라보며 그녀에게 바치는 샤콘느.

잃어버린 물건은,
무조건 똑같은 물건을 찾아내
구매하는 나쁜 버릇이 있어.

나는 어릴 때부터 물건에 대한 집착이
유난히 강했던 것 같아.

누가 보면 소유욕이 강하다고 생각하겠지만,
아니, 나는 이미 어릴 때부터 알고 있었던 것 같아.

사람은  소유할 수 없다는 것을.
사람은 온전히 내 사람이 될 수 없다는 것을.

그래서, 나는 오늘도
가질 수 없는 사람보단
가질 수 있는 물건에게
병적으로 집착을 하곤 해.

    사람이기에, 사람이므로, 사람답기에, 충분히 그녀가 이해가 되지만은...

    그래도, 사람이기에, 사람이므로, 사람답기에, 사람에게 의지해도 되는 것이 우리의 삶이다.


나는 이것을 사람이 아닌 만물에게서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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