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FO R EST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방인 Sep 27. 2015

흙 2: 물건의 소유

사람이 아닌 모든 것 #2

물건에  집착하는 여자가 있었다.


    그녀는 스트레스가 쌓일 때마다, 음식을 사 먹는다거나, 혹은, 자신만을 위한 선물을 사들였다: 옷, 안경, 스카프, 화장품, 운동화 등.


그런 그녀를 보던 주변 사람들은 한결같이 이렇게 말했다.


[너 그렇게 물 흐르듯이 돈을 쓰다가는 나중에 큰 일 날 수도 있어.]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그녀는 이따금  한 번씩 미소를 지으며 웃어 넘겼다.



    그녀가 내게 알려준 버리지 못하는 잡동사니들은 참으로 다양했고, 다양했지만 한 가지 이유 때문에 그 물건들을 버리지 못한다고 했다; 사람에 대한 추억.


사람들이 너무나도 좋지만 그들을 믿지 못했던 그녀였기에, 사람에 집착할 수 없을 바에야, 그들과 함께였던 혹은 선물 받은 물건들을 소중히 여기자고 생각하게 되었다는 그녀.



그녀의 노트에 적혀있던 물건 리스트들은 대충 이러한 형상을 띄우고 있었다.


    1. 그가 사준 Peter Rabbit 물통, 그 안, 그의 검정 양말, 그가 쓰던 검정 cricket사 라이터, 그리고, 그가 준 검정 머리끈; 결코 사랑해서는 안 될 남자에 대한 한탄.


    2. 엄마가 사준 약지 반지; 남성 기피증이 있는 그녀에게 아주 좋은 남자들의 방패막이.


    3. 스위스 여행 중 만난 엄마와 동년배의 아주머니로부터 받은 스타벅스 인스턴트 커피 한 개; 다시는 못 만날 그녀를 위한 애도.


    4. 제주도 올레길의 상징인 조랑말 간세 인형 열쇠고리; 가깝다고 느꼈지만 한순간에 멀어진 여자에 대한 회상.


    5. 그녀의 애완견 초록이를 닮은 닥스훈트 모양의 가죽 열쇠고리; 가장 좋아했던 친구와 함께 떠난 이탈리아 피렌체 가죽 시장에서 친구가 선물로 사준 선물. 그리고, 그녀에 대한 집착을 한 층 덜어주었던 고마운 물건.


    6. 청계천의 밤길 노점상에서 푼돈 주고 산 몬스터주식회사 캐릭터인 마이크 핸드폰 마개; 열심히 고시 공부하는 친구 불러다가 저녁한끼 먹이고 산책하다 발견한 마이크를 선물해주고 그녀도 하나 샀다는 따뜻한 기억.


    7. 양띠인 그녀를 위한 양 모양의 인형 열쇠고리; 초등학교 시절 했던 오케스트라에서 에버랜드에 연주 겸 소풍을 갔을 적 행복했던 시절의 가장 찬란한 기억.


    8. 알 없는 안경테; 작가로서의 예민함을 깨어나게 해 주고, 작가가 되고픈 헛된 꿈을 일깨워 주는 도구.


    9. 좋아하는 향이 가미된 소이캔들 한 개; 스스로를 위한 최고의 사치.


    10. 향초 리필 팩 포장지, 혹은 쓰레기; 그녀의 공황장애, 과호흡증에 최고의 명약인 종이봉투.


    11. 1년짜리 스케줄러; 사람들과 함께 지냈던 모든 기억의 집합소.


    12. 담배 한 갑; 지울 수 없는 괴로운 기억들의 집합소.


    13. 검은색 칫솔 한 개와 너구리 라면 한 봉지; 지독히 불타올라 허무했던 첫사랑 상대에 대한 제사 음식들.


    14. PEZ사의 크리스마스 리미티드 사탕 열쇠고리; 어릴 적 추억이 아린, 그리고 어딘가 다가가기 두려웠던 대학 동기 언니에게 받은 다정한 선물.


     15. 사치스럽지 않은 한 권의 책 선물; 항우울제, 조울제 보다도  더욱더 강력한 약.


     16. 돈 한 푼 들이지 않은 한곡의 음악 선물; 마음이 다 담긴 최고의 선물, 떨림, 설렘, 진동.



이 모든 물건이나 선물들은 그녀의 품에서 최소 3년에서 10년 내지 머물고 있었다.


    물건은 10년 넘게 보관할 수 있지만, 사람은 여자이건 남자이건 3년에  한 번씩은 꼭 물갈이를 한다던 그녀. 그래서 나에게도 큰 기대를 하지 말아 달라고 요구했었던 그녀.


나는 그래서 생각해 보았다.


    뒤  돌아봤을 때, 사람이 남아 있지 않는 삶을 살면 그건 아마도 한참 잘못되어도 잘못된 삶 아닐까?


    그녀는 어쩌면 삶이란 것을 제대로 못 고 있는 것 아닐까?


제발, 그녀가 간절히 사람에게 매달리는 날이 오기만을 바라보며 그녀에게 바치는 샤콘느.

잃어버린 물건은,
무조건 똑같은 물건을 찾아내
구매하는 나쁜 버릇이 있어.

나는 어릴 때부터 물건에 대한 집착이
유난히 강했던 것 같아.

누가 보면 소유욕이 강하다고 생각하겠지만,
아니, 나는 이미 어릴 때부터 알고 있었던 것 같아.

사람은  소유할 수 없다는 것을.
사람은 온전히 내 사람이 될 수 없다는 것을.

그래서, 나는 오늘도
가질 수 없는 사람보단
가질 수 있는 물건에게
병적으로 집착을 하곤 해.

    사람이기에, 사람이므로, 사람답기에, 충분히 그녀가 이해가 되지만은...

    그래도, 사람이기에, 사람이므로, 사람답기에, 사람에게 의지해도 되는 것이 우리의 삶이다.


나는 이것을 사람이 아닌 만물에게서 배웠다.

매거진의 이전글 나무 5: 독신주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