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중에’는 하지 않겠다는 말.
'나중에'
둘째 아들이 자주 하는 말입니다.
책 좀 읽을래?
벗어놓은 옷 좀 잘 치워주면 안 될까?
양치해야지?
이발하러 갈래?
모든 질문에 대한 첫 번째 대답은 '나중에'입니다.
어쩜 제 어린 시절 모습과 똑같은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인지 제가 다그치기 힘들어하고 있습니다.
가슴에서 올라오는 화를 잠시 가라앉히고 아들의 말을 곱씹어 봅니다.
'나중에'
우리에게 나중은 언제일까요?
지금 하지 않고 있는데 나중엔 할 수 있을까요?
중요한 것은 나중이 온다는 확신을 가지고 계시나요?
저는 미루기를 정말 잘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해야 할 일을 내일의 나에게 미뤄두고 즐거움만 쫓았습니다.
회의 자료를 만들기 위해 켜둔 노트북으로는 영상을 보거나 똑같은 내용의 뉴스를 읽었습니다.
머릿속으로는 '해야지. 해야지'라고 외치지만 실행하지 않았습니다.
어느새 자료를 제출해야 할 시간이 다가옵니다.
급하게 만든 자료들이 좋은 성과를 얻어낼 리가 없습니다.
운동은 또 어떤가요?
'나가야지'라는 생각만 할 뿐 몸은 소파에 기댄 채 멍하니 TV를 보고 있었습니다.
'아 오늘은 늦었으니 내일 하자.'라며 나가는 것을 포기합니다.
매일같이 내일의 나에게 미루고 있었습니다.
조금씩 망가지고 있었던 것이죠.
경제적인 상황도 비슷합니다.
지갑 안에 카드에게 맡기고 있었습니다.
신용카드를 통한 경제활동은 어느덧 부담으로 다가오기 시작했습니다.
급여는 순식간에 사라지고 다시 카드를 사용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었던 것이지요.
나중으로 미루면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쉽게 바뀌지 않았습니다.
결심조차 나중의 나에게 미루고 있었으니까요.
온라인 글쓰기 이후 실행력이 약간 높아졌습니다.
독서와 글쓰기 등의 작은 성공을 누적하면서 '나도 할 수 있다. 하면 되는구나!'를 느낀 것이지요.
비록 완벽하진 않지만 미루지 않고 해내는 작은 일들이 마음을 단단하게 합니다.
머릿속에 맴돌고 있는 생각도 정리합니다.
'앞으로 100세, 120세까지 산다고 하는데 나는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수없이 마주칩니다.
세 아이들에게 제 노후를 맡길 수 없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것조차 미루기 하면 안 되는 것이니까요.
송길영 님은 <핵개인의 시대>에서 '효도의 종말'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셨습니다.
'자식들에게 준 것만큼 돌려받지 못하는 '미정산 세대'가 나타날 것이다.'라고 합니다.
2024년을 마무리하는 과정에서 20~30년 후의 일을 생각해 봅니다.
그날이 어떻게 다가올지는 모르지만 지금 해야 할 일을 하면서 기다려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자신의 삶을, 나의 운명을 미래의 나에게 맡기지 말고 지금 만들어 보면 어떨까요?
읽고 쓰는 연습이 힘을 보태줄 것입니다.
글쓰기는 장점이 많습니다.
과거에 잘못했던 일, 상처받았던 일을 치유하는 글쓰기.
나에 대해 알아가는 글쓰기.
앞으로 다가올 미래를 긍정적으로 만들어주는 글쓰기.
가장 큰 장점은 '현재를 충실하게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주는 글쓰기' 아닐까요?
머릿속이 복잡하고 두서없이 적어나가는 글이지만 이 한 페이지가 저와 여러분에게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2024년을 정리하고 다가오는 2025년에 크게 성장할 저와 여러분이 되길 소망합니다.
우리는 잘할 수 있습니다. 이미 잘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