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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자글방 Jan 24. 2024

특별한 손

[몸의 기록] 호두

그날은 교회에서 엄마들끼리 모임이 있었다고 했다. 당시 막 아장아장 걷던 애송이 시절의 나와 상대적 덜 애송이인 형과 그냥 집에 둘 순 없으니 같이 교회에 데려갔다. 애송이들은 지하에서 놀고 그 위에서 모임이 진행되었다. 아이를 교육하는 것에 대해 교육했다고 들었던 것 같다. 방안에 커피 냄새가 자욱해질 때쯤 덜 애송이가 들어와 어른을 호출했다고 했다. 그렇게 급하게 내려갔을 때 나는 주체가 안 되는 손을 안전장치가 없는 정수기에 들이밀고 있었다고 한다. 그리곤 꽤 큰 소리로 울고 있었다고 했다.


그날은 비가 오는 날이었다. 인생에서 처음 느낀 고통을 호소하는 울음소리가 묻힐 만큼 세찬 비가 내렸다고 한다. 애송이에게는 링거 주사를 다리에다 꽂는다. 몸이 아직 안 자라서 혈관을 찾기 어려워 그렇다는데 다리도 찾기 어려웠는지 8번 정도 (체감상) 바늘이 들어갔다 나오기를 반복했다고 한다. 병원에서는 한 달 조금 넘게 입원해 있었다고 한다. 그동안 할머니 댁과 병원에 수시로 오가면서 침대에서 떨어지는 나를 잡느라 힘드셨다고 한다.


내 왼쪽 손목에는 흉터가 생겼다. 그냥 좀 일그러졌고 부드러운 독특한 손이 되었다. 내가 나의 흉터에 대해 인지한 것은 초등학교 저학년 때였다. 나의 왼손이 남들과 다르게 생겼다는 것을 인지하고 흉터를 뚫어져라 관찰한 결과 징그럽다는 결론이 나왔다. 주로 긴 팔인 옷을 입었고, 겨울에는 장갑을 소중히 여겼다. 남들 보여주기 싫었던 것은 아니고 내가 보기 징그러웠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었을 때 흉터는 여전히 징그러웠다. 하지만 긴소매 옷과 장갑은 무한한 에너지의  초등학생에게는 걸리적거리는 것들이다. 그렇게 걸리적거리는 것을 벗어내고 난 왼손이 징그러운 손에서 그냥 좀 일그러졌고 부드러운 독특한 손이 된 것은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았다.


친구들은 가끔 내 손을 보고 왜 이렇게 생긴 것이냐고 물어보곤 했다. 그때마다 교회에서 일어난 일부터 촉감, 생김새까지 나름대로 장황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러면 친구들은 굉장히 흥미 깊게 듣고 이야기가 재미있었는지 두 달 정도 뒤에 다시 나의 독특한 손에 또 다시 대해 의문을 가진다. 이때 남들과 다른 요소는 소개나 이야기를 이어 나가기 유용하더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것을 안 순간부터 나의 특별한 손은 나의 원활한 학교생활을 위해 종종 이용되었다.


나는 심부 2도 화상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감각이 좀 둔화하였다. 사실 일상생활에 별로 지장이 가는 점은 아니다. 다만 왼손은 짝이 있다. 같은 촉감을 비교할 대상이 있다는 것은 생각보다 신기한 일이다. 같은 것을 만져도 양쪽 손은 각각 다르게 느낀다. 이게 꽤 재미있는 게 양쪽 손을 비비는 것이 버릇되었다. 무언가 긴장되는 일이 있으면 손을 비비면서 마음을 진정시킨다.


어머니는 가끔 그날 이야기를 해주신다. 그날의 갑작스러움, 병원에서의 생활, 할머니 댁에 맡겨진 형 같은 이야기를 들었다. 자세히 많이 이야기를 해주셔서 그날이 기억나는 것 같은 착시가 일어나기도 한다.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꽤나 역사 깊은 나의 특별한 손이 좀 다르게 보이기도 한다. 나의 특별한 손을 보며 가끔 생각한다. “오른손으로는 찬물을 틀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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