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가 처음이세요?
이 책을 처음 기획한 것은 25년 여름이었다. 클래스 101에서 메일이 한 통이 왔다. 스팸이거나 광고 협찬 메일이라 생각했다. 아무런 생각 없이 받은 편지함을 열어 확인했다. 메일 내용은 클래스 101 커피 강의 제안이었다. 커피 유튜브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가끔 강의 개설 제안이 오긴 했지만 매번 거절했다. 왜냐하면 나도 잘 모르는 플랫폼에서 온 제안이기 때문이었다. 모르는 플랫폼에 신뢰가 가질 않았기에 강의를 만들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클래스 101은 많은 사람이 알고 있는 강의 플랫폼이다. 그러니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하지만 메일을 찬찬히 읽어보니 강의 전부를 내가 만들어야만 했다. 대본, 촬영, 편집, 조명, 소개 등 모든 것을 혼자 해야 한다. 유튜브를 운영해본 나도 이건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다고 촬영과 스튜디오를 구해서 하기도 금전적으로 부담이 됐다. 또 커피나 요리 영상은 촬영은 쉽지 않다. 말만 하는 것이 아니라 커피를 내리거나 요리를 하면서 찍어야 하기 때문이다. 실수했다고 다시 찍기가 상대적으로 어렵다. 이유는 내 예상과 다르게 커피가 추출될 때도 있기에 다시 촬영하기가 어렵다. 어려움을 알고 있기에 망설였다.
솔직히 자신이 없었다. 유튜브 1편 만드는 것도 3-4일이 걸리는데 3-4시간짜리 강연을 만들어야 하니 말이다. 고민하고 있었을 때 아내가 한 마디 했다. "우리 그때 안 한 게 아쉬웠잖아 그러니까 하는 게 낫지 않겠어?" 이 말을 듣는 순간 불현듯 작년에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1년 전, 커피 책 출간 제안이 왔다. 예전부터 책을 만들고 싶었던 나는 제안 메일을 받고 마음 들떴다. 예전부터 책을 쓰고 싶었기 때문이다. 2-3번 미팅을 해보고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가장 큰 걱정은 나의 글쓰기 실력이었다. 지금은 먼 훗날 책을 쓰기 위해 매일 조금씩이라도 글쓰기를 하고 있지만 그때는 더 형편없었다(지금도 마찬가지긴 하다). 몇 문장을 쓰면 쓸 말도 없고 또 뭘 써야 하는지 몰랐다. 형편없는 글쓰기 실력 때문에 마음이 흔들렸는데 또 다른 걱정거리가 생겼다.
계약하려던 출판사와 잘 맞지 않았다. 계약 준비 과정도 어수선했고 나를 대하는 태도가 그리 좋지 않았다. 3번 정도 미팅을 해보고 나서 출판업에 일하는 지인에게 연락했다. 계약 조건, 출판사 분위기 등을 물어보았을 때 지인의 반응은 그리 좋지 않았다. 다음에 또 기회가 올 테니 너무 서두르지 말라고 말해주었다. 고민한 끝에 출판의 꿈을 접었다. 시간이 조금 흘러서 이 일은 아쉬움으로 변했다.
아쉬웠던 점은 힘들더라도, 조건이 맞지 않더라도 일단 '저자'가 될 수 있는 기회를 포기했다는 것이다. 커피 업계에는 재작년쯤 큰일이 있었다. 이 일로 나도 타격을 입었고 여러 고민이 생겼다. 그 사건은 브라질에 때아닌 서리가 내린 것이다. '고작 그게 다야?'라고 할 수 있다. 자연재해란 단어를 많이 들었보았지만, 실제로 느껴 본 적은 거의 없다. 작년 여름에 조금 더 더운 정도? 하지만 커피는 달랐다.
내 일은 원두 납품이다. 쉽게 말하자면 개인 카페에 원두를 판다. 카페에서 많이 사용하는 커피는 블렌드 커피다. 블렌드 커피는 여러 나라의 커피를 섞어서 볶은 커피를 말한다(볶고 섞기도 한다). 블렌드 커피에 가장 많이 사용하는 커피가 바로 브라질이다. 우리나라는 물론, 브라질 커피는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커피다. 받는 사랑만큼 커피 시장에 큰 영향력을 미친다. 예컨대 브라질에 때아닌 서리가 내리다면 어떻게 될까? 커머셜 커피 가격이 요동친다. 브라질 커피를 대체할만한 커피 가격도 급등한다. 브라질 커피를 대체하기 위해 바이어들이 움직이기 때문이다. 과테말라, 인도, 코스타리카, 콜롬비아 커피가 모두 오른다. 그리고 2년 전에 그 일이 실제로 벌어졌다.
따뜻해야 할 날씨였는데 브라질 커피 농장에 서리가 내렸다. 서리는 커피 열매만 피해를 주지 않고 나무 전체에 피해를 준다. 커피나무는 매우 민감하다. 잘 죽고 병충해에도 약하다. 키우기 어려워서 커피 농장주는 커피 밭을 엎고 아보카도나 다른 작물을 심기도 한다. 키우기 어렵고 돈도 안 되는 농작품이니까. 서리 때문에 많은 커피나무가 죽고 냉해를 입었다. 받은 피해만큼 커피 가격을 부추겼다. 브라질의 서리가 나비효과처럼 우리나라 커피 시장에 영향을 미쳤다. 서리가 눈보라로 변했다.
내가 쓰던 브라질 가격은 보통 1킬로그램에 7,500~ 8,000원 선(내가 사용한 브라질은 스페셜티 커피라서 조금 비싼 편이다). 재해가 발생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15,000원으로 올랐다. 2배가 올랐다. 브라질만 올랐을까. 아니다. 위에서 말한 것처럼, 남미, 중미 커피 가격도 올랐다. 대안이 될 만한 모든 커피가 올랐다. 생두 가격은 쉽게 올라갈 수 있지만 나는 그렇지 않다. 거래처에게 문자와 카톡으로 가격 인상을 알려야 한다. 쉽지 않은 일이다. 예전에는 1,000원~2,000원 정도 올린 적이 있지만, 지금은 그때와 상황이 많이 다르다. 죄송함을 무릅쓰고 가격을 올려야만 했고 다행히 거래처 사장님들은 이해를 해주셨다.
커피 가격도 그렇지만 경기도 그리 좋지 못했다. 내 일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다른 돌파구가 필요했다. 커피 강연이나 수업 같은 수입원이 있어야 했다. 그때마다 머릿속에 '저자'라는 글자가 아른거렸다. 강연자를 구할 때 그 사람의 경력, 포트폴리오가 중요하다. 사람들이 아는 사람인지, TV에 나온 사람인지, 어떤 대학을 나왔는가가 중요하다. 이런 것도 없다면 저자라는 타이틀이라도 있어야 한다. 이것마저 없다면 많은 SNS 팔로워를 보유하고 있어야 한다. 나는 모두 해당사항이 없다. 그래서 내가 놓쳤던 책 출판의 기회가 아쉬움으로 느껴졌다.
아내의 말을 듣고, 강의를 만들기로 마음을 먹었다. 힘들고 귀찮고 어려워도 이번 기회는 놓치지 말자고 다짐했다. 굳은 다짐에도 귀찮고 힘들고 하기 싫었다. 커리큘럼부터 써야 했다. 강의 구성을 하고 강의 맞는 대본을 쓰기 시작했다. 대략 총 강의 시간이 3시간 정도이니 대본 양도 만만치 않게 많았다. 대본까지 일주일이 걸렸다. 그다음은 촬영. 카메라는 3대를 세팅했다. A 카메라는 정면 샷, B 카메라는 측면 샷, C 카메라는 직부감(직부감이란 마치 드론 촬영처럼 수직으로 아래를 찍는 촬영이다). 카메라 세 대에 조명은 4대 설치했다. 키 라이트, 필 라이트, 백라이트 2대. 이런 구성을 하는데 꽤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3개월 동안 단 한 번도 카메라와 조명을 움직이지 않았다.
모든 촬영이 끝나고 편집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촬영이 끝나서 홀가분한 기분도 잠시였다. '어떻게 하냐 진짜'라는 생각이 스쳤다. 우여곡절 끝에 편집을 마무리했다. '이제 정말 다 끝났다'라고 생각했다. 업로드를 마치고 클래스 101 매니저에게 메일이 왔다. 클래스 101 소개 페이지 작성 요청 메일이었다. '아... 아직도 할 게 남았구나'라는 생각이 스쳤다. 일주일 뒤 강의 소개 페이지 작성까지 마무리했다. 담당자에게 메일 보내고 답장을 기다렸다. 답장에는 축하 메시지와 계약서가 들어있었다.
강의는 내 손을 떠났다. 이제 다음 단계를 준비해야 한다. 다음 단계란 커피 책을 만드는 것이다. 강의 내용을 바탕으로 책을 만들기로 계획했다. 출판사에서 제안이 올 지는 모르겠으나 일단 브런치에 써보기로 했다. 주 1~2회 연재하다 보면 글이 쌓일 것이다. 출판사의 제안이 없다면 내가 직접 투고를 해볼 생각이다. 출판사가 먼저 제안을 해준다면야 나로서 바랄 게 없다.
내가 쓸 책 책 내용은 커피 원리, 커피 도구의 원리, 레시피이다. 더불어 내가 커피를 업으로 삼고 일할 때 느꼈던 이야기를 적어 볼까 한다. 커피 + 커피 에세이랄까. 커피 관련 내용은 괜찮다 쳐도 에세이가 어떨지 모르겠다. 누가 궁금해할까, 내 이야기에 관심이나 있을까. 이런 걱정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나는 며칠 동안 고민한 끝에 해결책을 찾았다. 해결책은 재밌게 쓰는 것이다. 재밌는 글이란 정의가 각자마다 다르다. 누군가는 소설을 좋아하고 누군가는 인문 책을 좋아한다. 사람마다 재밌어하는 책은 각기 다르다. 나에게 재밌는 글은 잘 읽히는 글이다. 아무리 재밌는 내용이라도 잘 읽히지 않으면 소용없다. 나처럼 생각하지 않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나는 잘 읽히는 글을 쓰기 위해 글도 열심히 쓰고 있고 교정 교열 책도 보고 있다. 책을 쓰기 위한 최소한의 노력이랄까. 미래에 내 책의 독자를 위한 예의랄까.
이 책도 완성하는데 오랜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책 쓰는 것이 처음이기도 하고 나는 글 자체를 오래 써본 경험도 없다. 그러니 더 오랜 시간이 걸릴 수밖에. 그래도 어쩌겠는가. 써봐야지. 출간이 안돼도 나에게 좋은 경험이 될 것이고 출간이 되면 더할 나위가 없다. 어쨌든 나에게 좋은 일인 것은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