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재료가 전부다

1-1 커피 생산 국가

by 염동훈

지인들이 가끔 나에게 커피 로스팅을 잘하는 법을 물어본다. "어떻게 로스팅을 해야 맛있는 커피가 돼요?" "비결 같은 것이 있어요?"라고 묻는다. 나는 대답한다. "없어요. 그런 거. 비결이 있다면 애당초 좋은 재료를 고르는 것이죠. 다른 말로 하면 맛없는 커피를 고르지 않는 거고요" 이 생각은 아직까지 변함이 없다. 우리가 마시는 커피를 만들 때 필요한 재료는 두 가지다. 커피와 물. 두 가지다. 커피는 주연이고 물은 조연이다. 커피는 돈키호테이고 물은 산초 같다고 할까. 둘 중에 하나라도 빠지면 안 된다. 그만큼 커피에서 재료가 중요하다. 맛없는 생두(로스팅 전 상태의 커피)로 맛있게 추출된 커피를 만들 수가 없다.


커피는 신기한 재료다. 어떻게 내리는지 어떻게 로스팅하는지 어떻게 자라는지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 같은 커피나무여도 자라는 환경이 다르면 맛과 향이 달라진다. 예컨대 똑같은 두 커피가 두 나라에서 자란다고 해보자. 하나는 에티오피에서 자라고 다른 하나는 브라질에서 자란다. 커피를 수확해서 마셔보면 맛이 다를까? 정답은 다르다이다. 떼루아, 날씨가 다르기 때문에 당연하게 맛도 달라진다. 맛도 맛이지만 성장도 다를 것이다. 에티오피아 커피나무는 잘 자랄 수 있지만 브라질에서 자란 커피나무는 죽을 수도 있고 병충해를 입을 수도 있다. 같은 커피여도 어느 나라에서 자라냐에 따라 많은 것이 달라진다.


커피를 키우는 나라마다 가공법(프로세싱)도 다르다. 물을 쓰는 것에 제약이 없는 나라에서는 물을 사용하는 가공 방법이 발달했다. 반대로 물 사용에 제약이 있는 나라는 물 사용이 적은 방법이 발달했다. 또 건조한 나라에서는 자연 건조를 사용하고 습도가 높은 나라는 기계 건조를 사용하기도 한다. 자연환경에 따라 커피 가공 방법이 달라진다. 물, 습도, 평균 기온, 햇빛에 따라 커피는 다른 맛을 갖는다.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같은 나라라고 해서 같은 맛을 가진 커피가 생산되지 않는다. 가령 우리나라도 서울 날씨와 제주도 날씨는 다르. 우리나라보다 큰 땅을 가진 나라는 다 어떨까. 같은 나라이지만 전혀 다른 기후와 환경일 것이다. 커피 농장이 어느 고도에 있는지 햇빛이 잘 드는 곳에 있는지에 따라 또 커피 맛이 달라진다. 커피는 품종도 중요하지만 커피가 자라는 환경도 큰 영향을 미친다.


커피 생산 국가마다 맛은 어떻게 다를까. 가장 많이 마시는 브라질 커피부터 알아보자. 브라질 커피 맛은 우리가 즐겨 먹는 커피 맛이다. 고소한 견과류 맛, 밀크 초콜릿 향미, 은은한 단맛. 우리가 좋아하고 자주 마시는 커피 향미다. 실제로 우리가 마시는 커피에 많이 들어가 있다. 카페에서 사용하는 블렌드에 많이 들어가 있는 커피가 브라질 커피다. 고품질 브라질 커피는 은은한 꽃 향과 꿀 같은 향미도 갖고 있다. 저품질 브라질 커피는 풋내, 흙냄새, 나무 냄새, 지푸라기 냄새가 난다. 흙냄새, 나무 냄새는 좋은 냄새가 아니다. 와인에서는 흙, 나무 향을 좋게 평가하지만 커피에서는 나쁘게 평가한다. 표현만 같을 뿐 향은 다르기 때문이다. 와인에서 나는 흙, 나무 향은 고급스럽게 느껴진다. 과일 향과 어울리고 와인 맛을 풍부하게 만들어다. 커피에서는 그렇지 않다. 저품질 커피에서 나는 흙향은 커피 맛을 안 좋게 바꾼다.


브라질 커피 시장은 세계 커피 시장에 많은 영향을 끼친다. 가령 브라질에 가품, 폭우, 서리 등 자연재해가 발생하면 국제 커피 가격이 급등한다. 브라질이 세계 1위 커피 산지이기 때문이다. 브라질 커피는 전 세계 커피 생산량의 35~40%를 차지한다. 세계 커피의 40%나 차지하기 때문에 커피 시장에 주는 영향도 크다. 실제로 몇 년 전 브라질에 자연재해가 있었다. 날씨에 맞지 않은 서리가 내렸다. 서리는 커피 열매와 커피나무에 냉해를 입혔다. 커피나무는 예민한 식물이다. 키우기도 어렵고 병충해에도 약하다. 키우기 까다롭다. 민감하고 예민한 식물에 때아닌 냉해가 생겼으니 결말은 뻔했다. 브라질 커피나무는 심한 냉해를 입거나 죽었다. 생산량은 감소했다. 브라질에서 발생한 서리는 커피 시장 가격을 부추겼다. 결국 브라질 커피 가격은 급등했다. 이 영향은 한국까지 오는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 한 달 사이에 브라질 커피 가격은 거의 2배가 올랐다. 커피 바이어들은 브라질 커피를 대신할 커피를 찾고 있었다. 인도, 콜롬비아, 과테말라 등이었다. 브라질 대체할 커피도 수요가 올라가니 자연스럽게 가격이 올라갔다. 그만큼 브라질 커피 시장은 세계 커피 시장에 주는 영향력이 크다.


에티오피아 커피는 매력적이다.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커피다. 많은 사람들이 에티오피아 커피를 마시고 커피 애호가가 된다. 그전까지 마셔봤던 커피와 다르기 때문이다. 그전에 마셨던 커피 맛은 브라질 커피 맛과 비슷하다. 견과류, 초콜릿 향을 가진 커피다. 에티오피아 커피는 다르다. 꽃 향, 오렌지와 레몬향, 딸기와 블루베리 향, 은은한 재스민 향이 느껴지는 커피다. 에티오피아는 내추럴 가공법, 워시드 가공법이 모두 발달했다. 쉽게 말하면 둘 다 잘한다. 에티오피아 내추럴 커피는 딸기, 블루베리, 과일 향이 느껴지고 워시드 커피는 시트러스(레몬이나 오렌지 계열), 티 (차 같은 향), 깨끗한 맛이 느껴진다. 나도 처음 에티오피아 내추럴 커피를 마시고 커피 일을 시작했다. 처음 에티오피아 커피를 마시고 충격을 받았다. 커피에서 이런 향이 날 수 있구나라는 생각이 하루 종일 머리에서 떠나질 않았다. 몇 달 뒤 바리스타가 되기로 결심했다. 지금까지 수 없이 많은 커피를 마셔봤지만 제일 좋아하는 커피는 에티오피아 커피다. 그만큼 에티오피아 커피는 매력적이다.


케냐 커피는 팔방미인 같다. 적합한 표현인지 모르겠지만 어떻게 로스팅을 해도 잘 어울린다. 스페셜티 커피처럼 가볍게 로스팅해도 좋고 클래식 커피처럼 다크 로스팅해도 좋다. 약하게 로스팅하면 포도, 블랙 커런트, 블랙베리 같은 향미가 느껴지고 강하게 로스팅하면 잘 익은 포도로 만든 포도잼, 다크 초콜릿 향미가 느껴진다. 케냐 커피는 깨끗한 맛도 갖고 있다. 케냐 커피를 마시고 난 후 입 안에 남는 맛이 깔끔하다. 좋은 커피지만 단점이 있다. 단점은 로스팀이 까다롭다는 것. 생두가 딱딱해서 잘 익지 않는다. 그것이 유일한 흠이다. 사람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나는 케냐 커피에서 느껴지는 토마토 향미를 싫어한다. 토마토, 케첩, 토마토 주스를 연상시키는 맛이다. 케냐에서 느껴지는 토마토 향미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 나는 토마토를 사랑하는 사람이지만 커피에서 느껴지는 토마토 향은 싫다. 케냐 커피를 구입할 때 토마토 향이 있다면 나는 구매하지 않는다. 아무리 훌륭한 케냐 커피라도 절대 구입하지 않는다. 편견은 갖지 않길 바란다. 여러분 입 맛에 맞을 수도 있으니까.


최근 10년 동안 가장 많은 사랑을 받은 커피는 어느 나라 커피일까? 바리스타, 로스터, 소비자에게 가장 많은 사랑을 받은 커피는 파나마 커피다. 파나마 커피에 슈퍼스타가 있다. 바로 파나마 게샤(게이샤). 게샤(게이샤)는 커피 품종이다. 게샤 커피는 꽃 향, 과일 향, 차 같은 향미(티), 깨끗함을 갖고 있는 커피다. 좋은 향미를 다 갖춘 커피처럼 보인다. 요즘 말로 끝판왕처럼 느껴진다. 파나마 게샤 유명해지기 전에도 게샤 커피는 존재했다. 없었던 커피가 아니었다. 그러나 게샤 커피는 파나마에서 게샤 커피가 갖고 있는 잠재력이 폭발했다. 파나마 떼루아와 기샤 품종이 만나 지금까지 볼 수 없던 커피가 완성됐다.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파나마 게샤 커피 농장은 품종 개량, 가공 방법, 농사법에 더 투자했다. 떼루아, 품종, 농장의 투자. 세 가지가 만나 파나마 게샤 커피는 세계 최고의 커피가 됐다. 지금은 매년 최고가를 경신하는 커피다.


파나마 게샤 커피를 마시면 화려한 꽃 향, 티 같은 향미(재스민), 진한 과일향이 느껴진다. 그리고 복합성까지 갖고 있다(복합성이란 커피 안에서 여러 가지 향미가 있는 것을 말한다). 여러 과일 향과 차 향이 입 안부터 코 안쪽까지 퍼진다. 단점이 있다면 가격이다. 최고의 커피인 만큼 가격도 최고다. 비싼 가격이지만 기회가 있다면 한 번쯤 마셔보길 바란다. 파나마 게샤 커피 한 잔에 1~3만 원 정도다(더 비싼 커피도 있다). 커피 한 잔치고 비싼 가격이다. 세계 최고의 커피를 치킨 한 마리 가격으로 즐길 수 있다면 괜찮치 않은가? 와인이나 위스키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커피는 가능하다(언젠가는 커피도 불가능해질 것이다). 미식 경험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마셔보길 바란다. 커피를 바라보는 관점이 바뀔지도 모른다.


간략하게 나라별 커피를 알아봤다. 위에서 소개한 국가 말고도 커피를 생산하는 나라는 많다. 콜롬비아, 코스타리카, 과테말라, 르완다, 예멘, 부룬디, 에콰도르, 페루, 인도, 온두라스, 엘살바도르, 인도네시아, 니카라과 등이 있다. 생산지마다 다른 커피 맛을 느껴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다. 위에서 소개한 커피도 마셔보고 소개하지 않은 다른 국가 커피도 마셔보자. 다양한 커피를 접해보면 내 입맛에 맞는 커피가 어느 나라 커피인지 금방 알 수 있다. 커피를 배울 때 경험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 다양한 커피를 맛보고 커피를 내리는 것이 중요하다. 내가 소개한 커피 말고도 다양한 커피를 즐겼으면 좋겠다.


커피를 좋아하면 자주 듣는 커피 이름이 있다. 과테말라 안티구아, 브라질 세하도, 에티오피아 예가체프. 나라 뒤에 붙은 단어는 지역 이름(산지 이름)이다. 우리나라로 치면 대한민국 청양(고추) 정도이지 않을까. 같은 지역 이름을 붙었다고 해도 같은 맛을 가진 커피가 아니다. 같은 지역이지만 땅 크기는 제각각이다. 브라질 세하도가 그렇다. 세하도는 남한 땅 크기 20배 정도 된다. 커피 생산 지역이지만 웬만한 나라보다 크다. 이 정도 큰 땅에는 다양한 기후와 토양을 갖고 있다. 커피 생산 지역 이름만 갖고 커피 맛을 판단하면 안 된다. 추측만 가능할 뿐이다. 마셔보고 전에 예측 정도 할 수 있다. 결국 커피 맛은 마셔봐야 안다.


최근 커피 농업 발달 속도가 빨라졌다. 다양한 커피 품종을 찾거나 개발하고 새로운 가공 방법을 도입하고 있다. 커피에는 수많은 종이 있다. 우리는 수많은 중에서 아라비카 커피를 마신다. 로부스타와 리베리카도 소비하지만 아라비카 소비량이 더 많다. 아라비카 안에는 수십에서 수백 개의 품종이 있다. 이 말은 아직 인간이 못 마셔본 품종도 많고 보지도 못한 품종도 많다는 이야기다. 커피 품종의 세계는 무궁무진하다. 커피 농장 프로듀서와 농업 전문가들은 새로운 커피를 찾기도 하고 개발하기도 한다. 가공 방법도 비슷하다. 전통적인 가공법에서 벗어나 새로운 것을 찾고 있다. 와인 발효 시스템과 비슷하게 해보기도 하고 이스트나 효모를 넣어 새로운 향을 만들기도 한다. 새로운 품종과 가공방법으로 커피 농업 발달 속도는 점점 더 빨라지고 있다. 이것이 같은 나라의 커피라도 맛이 다른 이유다. 같은 나라와 농장에서 생산된 커피라도 프로듀서가 어떻게 가공하냐에 따라 커피 맛은 달라진다. 프로듀서는 커피 품종까지 똑같다 하더라도 다른 맛을 만들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