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핸드폰 케이스의 문구를 '온전히 나답게'라고 새겨 넣고 다녔다. 나 스스로에 대한 다짐이자 요즘 가장 탐구하는 영역인 '나다움'에 대해서 계속해서 답을 찾고 싶었기 때문이다. 반 평생을 부모의 자식으로, 학창 시절 내내 형제의 동생으로, 누군가의 친구와 동료로, 오랜 시간 동안 회사의 담당자로 불렸던 시간이 길어지고 나니, 가족과 친구와 회사를 제외한 온전한 나로서 살아왔던 시간은 별로 없었다.
둘째로 태어나 윗 형제의 옷을 물려 입고 보던 책을 또 물려받아서 보고 학교도 학원도 동네에 놀러도 나갈 때도 늘 따라다녔다. 나의 취향같은 것은 우리 가족 누구에게도 관심사는 아니었다. 학교에서는 친구들에게 빠져 웃고 울고 하느라 친구들이 좋아하는 책이나 연예인 따위에 같이 동화되어 살았다. 내 자신을 알기보다는 친구들을 알아가는 것이 더 재미 있었다. 사회 초년생 때에는 선배들을 보고 배우고 따라가느라 정신없었고 초년기를 지나서 나 몫의 역할이 주어진 후로는 그 일들을 해내기에 바빴다. 내 자신을 알아가기에는 일상이 너무 버거웠다. 나이를 먹고 경험이 쌓여 아는 것이 많아지고 능숙해졌지만 정작 내가 뭘 좋아하는지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를 몰랐다.
해외에 혼자 몇 개월을 체류하며 일을 한 적이 있었다. 항상 부모님과 함께 살다가 나 혼자 살아보는 경험은 난생 처음이었다. 그리고 그때 내 자신에 대해 알게 된 것들이 많았다.
내가 27도 정도의 온도를 가장 쾌적하게 느낀다는 것, 여름을 그렇게 싫어하지 않는다는 것, 걷는 것을 좋아한다는 것, 모르는 동네나 골목을 여유롭게 즐기는 여행을 좋아한다는 것, 무엇보다 내가 혼자 있을 때 더 용감해지고 여유로워진다는 것.
나는 늘 열이 많은 체질이라 여름을 싫어하고 겨울이 좋다고 말했었다. 성격이 급해서 걸음걸이도 빠르고 빠른 교통수단을 이용해서 빠르게 이동하고 하루의 여정의 끝에는 가족들이 기다리는 집으로 빨리 돌아가려고 했다. 혼자 여행을 가면 그 시간이 너무 아까워 빼곡히 일정을 짜 놓고 일하듯이 여행을 했고, 친구나 가족들과 여행을 가면 그들이 원하는 대로 따라다니고 계획이 변경되면 불안했다.
사람들 속의 나와 혼자만의 나는 많이 달랐다. 오히려 정 반대였다. 그런데 나는 혼자만의 나의 모습이 더 좋았다. 한국으로 돌아와 바로 집을 알아보고 독립을 했다. 혼자만의 시간을 더 많이 가질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나를 알아가는 즐거움에 푹 빠졌다. 오늘 지금 이 순간에도 나는 타인에게 집중되어있던 관심과 에너지를 오롯이 나에게 집중하고 있다. 내가 지금 먹고 싶은 것을 해 먹고 내가 지금 하고 싶은 것을 하고 그렇게 나답게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