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켜 생각해보면 사회생활을 하면서 좋은 선배들을 많이 만났다. 능력적으로 배울 것이 많은 사람도 있었고, 인간적으로 닮고 싶은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우리 모두가 경험해서 알다시피 두 가지를 모두 겸비한 사람을 만나기란 쉽지 않다. 10여 년 전에 재직했던 회사에서 그런 쉽지 않은 사람을 만났다. 그는 나의 팀장님이었다.
국내 기업에서만 일하다가 친한 지인의 소개로 외국계 회사를 들어갔다. 사용하는 용어며 시스템이며 느린 인터넷이며 모든 것이 낯설었고 많이 헤매고 있었지만 그럴 여유조차 없었다. 그곳은 흔히들 생각하는 자유롭고 여유로운 외국계 회사의 분위기는 아니었다. 정장을 입고 9시까지 출근해서 퇴근시간인 6시가 되면 본사 담당자들이 출근하는 시간이 되어 다시 2차 업무에 돌입해 새벽까지 업무가 이어졌다.
업계에서 이름 난 회사를 나와 당시 막 뜨기 시작한 디지털 전문 회사로 이직했다가 적응하지 못하고 3개월 만에 나와서 들어간 회사였다. 다시 실패를 경험하기도 싫었고 어떻게든 해내고 싶어 버티고 견뎠다. 매일 야근 후 택시 안에서 눈물을 훔치며 퇴근했고 주말에는 부족한 언어 수업을 들었고 집에 싸들고 온 일을 하다 보면 항상 근육통에 시달렸고 잠시 쉬려고 침대에 누우면 또 고장 난 수도꼭지처럼 눈물이 흘렀다.
나의 느린 적응 탓에 팀 사람들에게 많은 양해를 구해야 했다. 어느 날은 팀장님께서 점심을 먹으러 가는 길에 넌지시 회사의 시스템 적응과 내 업무의 능숙도를 좀 더 속도를 내달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그것을 내 부족함에 대한 경고로 느꼈고 더 주눅이 들었다.
그날도 매일과 같이 야근을 하고 있다가 잠시 자리를 비웠을 때 집에서 걱정이 되어 전화가 왔던 모양이었다. 바로 뒷자리의 팀장님이 내 전화를 받아 우리 엄마와 통화를 하고 계셨다.
"너무 잘하고 있어요. 정말 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그 말을 엄마에게 해주셔서 너무 감사했다. 엄마는 매일 집에 늦게 들어오고 힘들어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나보다 더 힘드셨지만 내색하지 않고 계셨을 것이다. 또래보다 일찍 학교에 보내서 나이도 어리고 키도 작은 내가 학교에서도 직장에서도 남들을 따라갈 수 있을지 적응은 잘하는지 걱정이 많으셨던 엄마를 그 말 한마디로 안심시켜 주셨다. 나 또한 자괴감에 빠져있던 순간에 그 한마디로 인해 더 잘 해내야겠다는 용기를 얻었고 그 회사에서 몇 년 더 경험과 경력을 쌓을 수 있었다. 나는 곧 회사에 적응을 마치고 국내 기업에서 국내 사정에 맞는 업무 경험의 장점을 살려 담당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그 해 우수직원 상을 수상했다.
내가 얻은 것은 외국계 회사에서의 근무경력이라는 이력뿐만이 아니다. 부족한 팀원을 기다려주고 용기를 주어 더 큰 성과를 만들어내는 리더십을 직접 보고 배웠다. 이제 내가 동료들과 후배들을 인간적으로 배려하고 용기를 주는 사람이 되려고 노력한다. 그때의 팀장님 만큼은 안되지만 그를 닮아가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한다.
엄마는 지금도 종종 팀장님의 안부를 물어보신다. 그리고 나도 그의 성공과 행복을 늘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