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종교행사에 참여한 때의 일이었다. 전혀 모르는 각지의 청년들이 모여 수일을 함께 보내야 했고 행사기간 동안 참여자들은 2인 1실로 숙소를 배정받았다.
사전 모임이 있었고 1회 차에 만난 사람들이 너무 유쾌하고 재미있어 행사에 대해 더욱 기대감이 커졌다. 내가 그때 잠시 해외에서 일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 이후 몇차례 추가로 진행된 사전 모임은 참가하지 못하고 행사장에서야 전체 참여자들을 만났다.
처음 만난 숙소 룸메이트는 예사롭지 않은 사람이었다. 식사 시간에도 눈치 없는 발언과 돌발행동을 많이 했고 숙소에 가서도 호텔 침구와 시설들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질문을 쏟아냈다. 다음날은 새벽부터 일정이 예정되어있어 호텔 프런트에서 모닝콜을 해주기로 했다. 그런데 나와 룸메이트는 모닝콜을 듣지 못하고 늦잠을 자서 10분 정도 모든 참여자를 기다리게 했다. 너무 미안해서 제가 해외 출장지에서 바로 오느라 너무 피곤해서 모닝콜을 못 들었다고 설명하며 사과를 했다. 룸메이트는 본인은 모닝콜을 들었는데 그게 모닝콜인지 몰랐고 내가 곤히 자고 있어 그냥 있으면 되는 줄 알았다. 본인이 늦은 건 룸메이트인 내 탓이라고 사람들에게 얘기하고 있었다. 그 외에도 룸메이트의 황당한 발언과 돌발행동이 이어졌고 행사 내내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았다.
그런 나를 본 여러 참가자들이 한 둘 씩 나에게 와서 위로해주며 사실 사전 모임 때에 이미 나의 룸메이트가 이상한 것을 알아차리고 모두가 거부하니 그 자리에 없던 나의 짝으로 배정된 것 같다고 했다. 알고 보니 룸메이트는 조금 정신적인 문제가 있는 사람이었고 서른을 훌쩍 넘긴 나이에 회사생활을 한 번도 안 해본 친구였다. 나는 못 보았지만 행사장에도 부모님이 직접 룸메이트를 데려다주었다고 했다. 누군가는 이 행사가 종교모임이니 룸메이트 부모님 입장에서는 그래도 사람들이 챙겨주겠지 라는 마음에 보내지 않았을까 했다.
나도 오랫동안 고대했던 행사이고 바쁜 시간을 쪼개서 마음의 평화를 얻고자 온 건데 왜 하필 이런 사람 때문에 내내 스트레스를 받아야 하는 것인지 점점 더 화가 났다. 다른 참가자들이 야속했고 룸메이트의 부모님이 원망스러웠다.
그때 참가자 중 가장 연장자인 분과 대화 중에 해주신 말이 있다
"하느님은 나의 베풂을 잊지 않으시고 7배로 돌려준대요"
나의 희생과 배려와 노력이 헛되지 않을 것이라는 이야기였다. 그 말을 듣고 나니 마음이 조금은 편해졌다. 마음수련을 위해 온 행사였고 이런 룸메이트를 만난 것도 수련의 한 과정이라고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행사 내내 룸메이트를 완전히 이해하거나 받아들이지는 못했다. 사실 행사가 끝나니 룸메이트를 안 볼 수 있다는 생각에 홀가분한 마음이 들었다.
행사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나는 참여자들과 길이 달라 버스에서 먼저 내렸다. 그때 갑자기 룸메이트가 뒤따라 내려 "내 룸메이트 잘 가"라며 나를 와락 끌어안았다. 묘한 기분이 들었다.
어떤 때는, 아니 꽤 종종 내가 기대한 것과 다른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 발생한다. 그때의 내 마음가짐에 따라 그 상황이 지옥 같을 수도 있고 덤덤하게 지나갈 수 있다. 모든 상황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을지라도 그 말을 되새기며 슬기롭게 지나가자. 그 누구도 아닌 나를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