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명사가 고유명사가 된 회사에 다니는 기분은
얼리 어답터(Early Adopter)라는 단어가 번지던 적은 언제였을까? 개인적인 기억을 더듬어보면 2010년 초반 즈음에 열심히 들었던 단어다. 그리고 나름 오랜 역사를 갖췄던 이 브랜드(무려 첫 시작이 2001년이라고 한다.)도 다시 한번 본격적인 시동을 걸고 있었다. 그리고 그때까진 내가 여기에 앉아 글을 쓰고 있을 줄도 몰랐고.
얼리 어답터(Early Adopter)라는 용어는 경제학에 쓰이는 용어*로, 본디 마케팅 전략을 수립할 때 혁신가(Innovator) 이후에 쫓는 일련의 이용자 집단을 뜻한다. 트렌드에 민감하고 새로운 문물을 빨리 적용해보고자 하는 집단으로 서비스 차원에서 보자면 파워 이용자로 거듭날 소지가 큰 집단이기도 하다.
실제로 얼리어답터에서는 다양한 장르의 새로운 아이템을 소개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다. 국내에 낯선 크라우드 펀딩 제품, 새롭게 등장한 서비스 체험, 제품의 가치 전달에 많은 비용을 들였다. 평소 개인 채널을 꾸준히 운영하며, 새로운 제품을 ‘만지는 일’자체를 좋아하던 내게는 꽤 적성에 맞는 일이었다.
아직도 현장을 돌다 보면 얼리어답터를 즐겨 봤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는다. 대개 그 이야기는 과거완료형이고, 나 역시 독자일 시절을 추억하는 이야기가 많아 반가우면서도 민망할 때가 잦다. 볼 만한 다양한 매체가 생긴 탓보다 우리가 덜 기민하고, 덜 재미있어진 덕분이 아닌가 싶어 반성이 앞선다.
과거의 추억과 함께 종종 듣는 질문이 ‘얼리어답터에 다니는 사람은 모두 얼리어답터인가?’이다. 당연하게도 내 대답은 ‘아니오.’ 새로운 제품에 큰 관심이 없는 사람도 잘 근무하고 있다. 물론, 신제품에 관심이 있는 편이 좀 더 즐겁게 일하기 좋다. 하루가 멀다 하고 새로운 물건을 만져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새로운 물건을 가지고 노는 걸 권장하기도 한다.
새로운 제품에 관심은 없다해도, 구성원 면면을 돌아보면 ‘적어도 취향은 분명하구나’ 하는 걸 느낄 때가 있다. 남들이 다 좋다니까 사고, 그냥 좋아보여서 물건을 사진 않는다. ‘내가 좋아하는 브랜드’라서, 이 기능이 ‘내게 쓸모있어 보여서’ 물건을 산다. 호오에 관한 분명한 취향이 있다.
취향은 ‘나’에게서 발아하는 식물이다. 내 경험에 뿌리를 내려, 가지각색의 꽃을 피운다. 경험이 많고 질이 좋을수록 단단하게 뿌리를 내리고, 도 높은 영역으로, 넓은 영역으로 가지를 뻗는다. 그리고 이는 ‘나’라는 토양이 없으면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그리고 얼리어답터는 여태껏 속한 집단 중 가장 취향이 분명한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그러니까 이곳은 취향으로 가득찬 정글 같다고 해야할까?
여기에 한 숟갈을 더하자면 전문성이다. 내게 우리 구성원은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전문가들’이다. 뭔가를 물어볼 때, 기대한 이상의 결과물을 받아볼 수 있어서 기쁘다. 여지껏 경험했던 다른 곳과 달리 내 동료에게 배움을 구하는 게 불편하지 않다는 점이 좋다. 내 취향과 다른 그들의 취향을 듣고 배울 수 있는 공간이라는 점에서 비교적 즐거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
나 역시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전문가’가 되고 싶다. 우리 구성원, 나아가 내 글을 읽는 독자가 무언가를 선택할 때, 내 글이 하나의 신뢰도 있는 참고자료가 될 수 있길 바란다. 설사 나와 취향이 맞지 않아 ‘거른다’고 해도 상관없다. 그 행동 자체로 내 글은 분명한 가치관을 담고 있다는 방증이 되니까. 그래서 오늘도 새로운 물건을 가지고 씨름을 하고, 생각에 잠긴다.
* 얼리어답터는 미국의 사회학자 에버릿 로저스가 1957년 저서에서 처음 사용한 말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