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룻강아지의 눈물 젖은 다이어리

레이지의 작업일보

by 낙성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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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함에도 많은 힘이 든다.





현장명 : 서울

업체명 : 레이지

작업일자 : 2021년 12월

투입인원 : 1명

날씨 : 흐림

공종 : 취업하기




평범한 사람으로 살아온 지 2n연차, 나름대로 모나지 않게 살기 위한 몇 가지 조건들이 있었다.


<레이지의 평범 조건>

1. 적당한 사람들과의 친목을 유지하는 것

2. 망하지 않을 정도의 성적을 받는 것

3. 뒤처지지 않을 만큼 유행을 따라가는 것

4. 대부분의 남들이 하고 있는 걸 나도 하는 것


무난한 성격에 무난한 외모를 가진 나는 대학생 때까지만 해도 이것들이 크게 어렵지 않은 조건들이라고 생각했다. 크게 의식하고 살아온 건 아니지만 열심히 살긴 싫고 불안하고도 싶지 않은 나의 마음이 모여서 이러한 조건들이 자연스럽게 만들어졌던 것이다. 그런데 대학을 졸업하고 나니, 이 조건들이 무의미해졌다. 비교대상이 반이나 학과가 아닌 전 국민이 되었기 때문이다. 너무 커진 비교군에 견고한 것처럼 보이던 내 기준들이 갈피를 잡지 못하고 한없이 높아지고 낮아졌다가 요동치게 되었다. 사회라는 곳은 이렇게 큰 물에서 내가 뭔가를 선택하고, 내가 택한 그 길로 가야 했다. 마치 망망대해에 남겨진 것처럼 막막했다. 그리고 난 가진 게 나룻배뿐인데 누군 선박을 몰고 어디론가 향하고 있고 누군 또 같은 나룻배인데 이미 괜찮아 보이는 섬에 도착해 잘 살고 있었다. 그런 사람들을 보며 끝없이 부러워만 하다가 결국 방향도 방법도 찾지 못한 나는 잠깐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많은 사람들이 하고 있고 괜찮아 보이는 핑계였다. 그 도피처는 자격증 준비였다. 일단 나중에 도움은 되겠지 라는 마음으로 알바와 병행하면 준비를 했다. 너무 쉽게 따버리긴 싫었던 건지 3번이나 떨어지고 마지막 기회였던 4번째에 겨우 붙게 되었다. 그렇게 1년이라는 시간이 지나가버리고 자격증을 따고 나니 이젠 더 이상 댈 핑계도 없이 취업을 해야 했다.


백수는 제법 평범하지 않았다. 세상에는 너무 많은 사람들이 일을 하고 있다. 당연하게 영어공부를 하고 시험을 보고 취업을 준비해서 일을 하고 돈을 번다. 예전에는 이게 평범한 건 줄 알았는데 엄청난 노력이 필요한 거였다. 사실 백수도 아무것도 안 하는 건 아니다. 열심히 자기소개서를 쓰고 있고 포트폴리오를 만들고 있고 면접을 보고 있다. 단지 ing일 뿐이다. 아직, 하고 있는 것이다. 세상의 시선으로는 결과물이 없는 백수는 그냥 백수인 것이다. 나는 그 모든 시간이 어떤 의미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못하고 이 시간들을 괴로워했다. 계속해서 떨어지는 면접에, 내가 사회에서 어떤 가치가 없는 사람인가 고민하기도 하고 사회에서 나는 진짜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랬더니 평범한 사람이 아니게 되었다.

나는 남들이 다 하는 일을 할 수 없는 사람이 되었다.


조금 모나진 나는 훨씬 조급해진 마음으로 일단 어디라도 들어가자!라고 생각했고, 연봉을 낮추고 눈도 낮춰 그나마 괜찮아 보이는 회사에 덜컥 취업을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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