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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 강아지는 복슬강아지는 아니지만 부드럽지

나와 쭈니의 성장기 그리고 찾아온,

by 낙성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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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나 드라마에서 주인공이 어느 순간 정신을 잃거나 어떤 사건을 계기로 과거로 다시 돌아가는 장면들이 많이 나온다. 그리고 후회되는 순간들을 바꾸려고 노력하거나 이미 예견된 일들을 미리 알고 주변사람들과 더 소중해진 시간들을 누린다. 사람은 누구에게나 돌아가고 싶은 순간이 있을 것이다. 누군가는 부모님의 사랑을 받았던 때로, 자기인생의 전성기였던 때로 혹은 가장 사랑하는 연인을 만나 아름답게 사랑했던 때로.

예전에는 나에게 그 순간이 언제냐고 묻는다면 나는 딱히 할 말이 없었다. 그만큼이나 내겐 모든 순간이 소중하기도, 힘들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것들이 모여 지금의 나를 만들고 지금의 나는 앞으로 경험할 일들이 너무 많아서 돌아갈 시간이없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아마도 그런 생각을 했던건 그만큼 뭔가 간절해본적이 없어서였던것 같다. 간절한것도 되게 어려운거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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쭈니가 자고있으면 그 모습이 너무 귀엽고 포근해 보여서 항상 괴롭히고 싶었다. 너무 귀여운걸 보면 깨물어주고 싶듯이, 그렇게 자는 쭈니를 보면 괜히 건드리고 싶었다. 근데 또 깨면 미안하니까 조심스럽게 치던 장난이 있다. ‘숨 나누기’ 라는 장난이다.

엎드려 자고있는 쭈니 앞에 마주보고 엎드린다. 그리고 쭈니가 숨을 내쉴 때 나는 들이쉬고, 쭈니가 숨을 들이쉬면 나는 내쉰다. 그러면서 서로의 숨을 (사실은 이산화탄소를) 나눠 마시는거다. 진짜 아무것도 아닌데 그냥 그게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서로의 공통점을 공유한다는게 설렜었다. 그 조그만한게 우리처럼 숨을 내쉬고 코를 골고 방구를 뀌고 트름을 한다는게, 사과를 먹을 때 아삭아삭 소리가 난다는게, 나랑 똑같은 소리가 난다는게 좋았다. 내가 좋아하는 무언가가 나랑 비슷한 행동을 할 수 있다는게 흥미로웠던 것 같다.

공통점 하니까 생각이난다. 쭈니와 나는 공통점도 많았다. 얼굴도 비슷하다는 말을 듣고, 성격도 무디고 순하고 그와중에 고집있는게 나랑 똑같고, 게으른것도, 간식을 원할때만 손을 주는 약은 행동도. 귀여운 인형을 좋아하는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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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찡찡거리며 우는 쭈니를 우리집은 모두 외면했다. 아직도 그 이유를 모르겠다. 밤이면 떠돌이처럼 돌아다니던 쭈니를. 자려고 누워있으면 톡톡톡톡,, 하고 내방으로 걸어와 낑낑 거린다. 그래서 침대위로 올려주면 앉는 척하다가 내려달라고 낑낑거린다. 그제서야 나는 다른 의도를 알아채고 밖으로 걸어나간다. 그럼 총총 걸어가 엄마가 자고있는 닫힌 방문 앞에 서있는다. 열어달라는거다. 굳게닫힌 방 문을 열어주자 쭈니가 톡톡톡톡,, 들어간다. 그러면 잠귀가 예민한 엄마가 잠에서 깨 시끄럽다고 데리고 나가라고 한다. 엄마는 쭈니가 발을 햝는 소리가 신경쓰여 잠을 못자곤 했다. 그래서 난 다시 쭈니를 안는다. 그리고 엄마에게 짜증을 낸다. “그럼 나보고 어떡하라고!” 엄마는 아빠방 침대에 올려다 두라고 한다. 아빠방 침대는 높아서 쭈니가 내려올 수도 없고 아빠는 한번 자면 잘 깨지않아서 쭈니가 내는 어떤 소리에도 잘 잔다. 그리고 침대가 넓어서인지 이불이 좋아서인지 쭈니도 꽤나 잘잔다. 그래서 나도 할 수 없이 쭈니를 아빠방 침대에 올려두고 뒤도 돌아보지않고 나와서 내 방으로 돌아간다. 휴, 한 짐을 던 기분이다.

사실 원하는걸 들어주지 못해 묘한 찝찝함이 남아있다. 하지만 미안하기 싫어서 외면해버렸다.


[다이어리_23.11.27]

요즘 쭈니에 대한 글을 쓰고 있어서 일까 아니면 인스타그램에 뜨는 시츄들을 너무 많이 봐서일까. 오늘 꿈에 쭈니가 나왔다. 아주 오랜만에 나왔는데 밤에 안자고 돌아다녀서 엄마 오빠 나 모두 불편해하는 꿈이었다. 결국 내가 데려왔지만 곧 나갈 듯 했다. 너무나도 예전의 그 상황이었다. 그런데 기억이 안난다. 쭈니의 촉감과 온기가 기억이 안난다. 그냥 악몽이었다. 문득 생각이 나는건. 쭈니는 뭘 위해 그 캄캄한 밤 이리저리 돌아다닌걸까. 잠은 또 왜 안자고 발을 핥은걸까. 뭐가 싫었던걸까 뭐가 불편했던걸까. 또 가슴이 답답해진다.

우리 가족이 너무 몰라서. 말도 못하는 쭈니가 얼마나 혼자 힘들었을지 모르겠다. 미안하다. 무책임한 보호자는 강아지를 키울 자격이 없는데 그걸 몰랐다.

쭈니가 죽을 뻔한 날도 있었다. 옛날에는 간식으로 개껌을 한번에 하나를 다 줬었다. 다른 개들은 그렇게 줘도 잘 먹는데 쭈니는 성격이 급한건지 뭔지 그 긴걸 제대로 씹지도 않고 그냥 계속 삼키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도 모르고 우리가족은 짜장면을 먹고 있었는데 쭈니가 켁켁 거리며 힘들어하는걸 누군가 알아차렸다. 어떻게 하지 방법을 찾다가 아는 동물병원에 전화를 했고 아빠가 방법을 듣고 짜장면을 먹던 젓가락으로 이렇게 저렇게 하더니 쭈니 이빨도 몇 개 빠지고 목에 걸렸던 개껌도 같이 빠졌다. 하 진짜 어이없었다. 지 몸만한걸 그냥 삼키는 애가 어디있어,, 다행히 살았지만 그 이후로 트라우마가 생겼는지 애가 좀 소심해졌다. 그리고 그때 오빠가 잘 쓰다듬어줘서 그런지 오빠를 유난히 좋아했다. 지를 위해 아무것도 안해주는데 좋아하다니 샘이난다. 아무튼 그 이후로 우리 가족은 쭈니에게 줄때 뭐든지 잘게 잘라서 주는 습관이 생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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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 쭈니’


바보같이 순한 시츄

고집쎈 시츄

간식이 없으면 손도 주지않는 시츄

우리집 강아지 시츄

우리집 강아지 쭈니

강렬한 입냄새와 아찔한 방구냄새를 잊을만큼

기름지고 부드러운 털이, 초롱한 눈이, 귀여운 혓바닥이 매력적이던 쭈니

동그란 볼에 납작했던 코. 그래서 심했던 코골이가 웃겼던 쭈니

총총 걷는 걸음에 따라 흔들리던 꼬리가, 가끔 뒤돌아보던 맹한 얼굴이 귀여웠던 쭈니

자기가 사람인줄 알고 다른 개들을 무서워했던 어이없는 쭈니

웅크리고 자던 그 품이 따뜻했던 쭈니

아무도 없던 집 들어가서 반기면 얕게 꼬리치던 쭈니

‘나갈까?’ 라고 하면 급 눈이 커지면서 숨도 거칠어지고 현관으로 달려나가던 쭈니

그 와중에 목줄은 하기 싫어서 계속 피하던 쭈니

오래묵은 발냄새가 중독적이던 쭈니

피부랑 귀가 좋지않아 자고있으면 몰래 귀를 환기시켜줘야했던 쭈니

무표정한 얼굴에 뽀뽀를 하려고 하면 피하고 한숨쉬던 쭈니

아파도 티내지 않던 쭈니

동물병원에 가면 벌벌떨며 그때만 나를 열심히 찾았던 쭈니

어쩔 수 없이 기저귀를 찼던 쭈니

자꾸 밤에 나가려고 했던 쭈니

나가도 금방 다시 들어가자고 하던 쭈니

하루하루 힘이 떨어지고 밥을 안먹던 쭈니

발에 힘이 없어 걷지못하던 쭈니

바보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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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년초 겨울. 서울에서 취업준비를 하며 회사면접을 보러 다니고 있었다. 지금 다니는 회사의 면접을 보고 온 날이었다. 11시가 넘어가는 꽤 늦은 시간, 너무 수고한 나에게 오늘은 새벽같이 놀아주겠다는 마음으로 영화 볼 준비를 하고 유행을 따라간다고 라이스페이퍼로 떡볶이를 만들고 있었다. 그때 전화벨이 울렸다. 아빠다. 그런데 아빠가 전화가 올 리 없는 시간이었다. 그것도 안부를 자주 묻던 페이스타임도 아니고 그냥 일반전화였다. 그래서 그런지 벨이 울리는 순간 알아챌 수 있었다. 그 전화가 의미하는 바를.


전화를 받았을 때 아빠의 떨리는 목소리 너머로 들리는 엄마의 울음소리를 듣고 확신했다.

아 이제 쭈니가 없구나. 그렇게 되었구나. 나의 일부였고 우리가족의 소중한 존재였던 그 아이가 갔구나.

처음 몇초간은 너무 믿기지 않아서 눈물이 많이 나지도 않았다. 그냥 닭똥같은 눈물이 고이다 떨어졌다. 전화를 끊고나서 쿠팡으로 시켰던 강아지 기저귀를 취소하고 정성스레 말았던 떡볶이를 음식물쓰레기봉투에 우겨넣고 집으로 갈 아침기차를 예매했다. 가만히 앉아있길 몇분. 이제서야 그 사실이 현실로 다가온것같았다.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르는채 다음날이 왔고 새벽같이 일어나 강릉으로 향했다. 기차의 풍경은 나의 기분처럼 묘했다. 산 너머로 뜨는 해가 보라색과 핑크색의 몽롱한 하늘색깔을 내었다. 처음으로 집에 내려가는 길이 설레지 않았다. 그렇게 집에 도착했다.


[다이어리_22.01.12]

집에 들어서자 파란담요에 고요히 쌓여있는 너가 보였다. 분명히 너인데 미동도 없이 곤히 자는 너를 보며 눈물이 났다. 너무 차가웠다. 마치 집의 공기가 너가 우리집에 오기 전날 같았다.

웅크린 너의 몸에서는 항상 따뜻한 냄새와 온기가 있었는데 이젠 나무처럼 굳어버린 단단한 그 촉감이 낯설었다. 이제는 마지막인 너를 하염없이 봤다.

너를 보내주고 오는 길

바다에 갔다. 노을이 지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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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는 그렇게 말한다. 시간이 모든걸 해결할거야. 시간이 지나면 다 괜찮아질거야. 맞는말이다. 뭐든 그때는 죽을 것 같고 힘들지만 진짜 죽지만 않는다면 나중에는 다 한때가 되어버린다. 마음속에 큰 부분을 차지하던 사건도 흐르는 시간 속에서 점점 감정도 기억도 흐려져 작은 조각으로만 남게 된다. 그리고 너무 작아지면 잊혀진다. 그래서 나는 쭈니가 잊혀질까 무섭다. 시간이 지나면 그리워하던 감정도 조금은 수그러들겠지만, 감정이 수그라든다는 것이 그 아이의 기억을 잊는 것일까봐. 어느순간 내가 쭈니를 만났다는 것이 잊혀져버릴까봐. 그렇게 영원히 잊은채 살아갈까봐. 어쩌면 나는 쭈니를 그리워해서가 아니라 쭈니를 잊지않기위해 타투를 한 것같다. 쭈니 타투를 하기로 마음을 먹은건 쭈니를 키울 때 부터였던 것 같다. 예전부터 내 첫 번째 타투는 쭈니가 될 것이라고 마음속으로 정해놓고 있었다. 쭈니가 무지개다리를 건너면 그 때 더 큰 고통으로 그 마음을 잊어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막상 현실로 다가오니 그보다 더 큰 고통은 없을 것 같았다. 그냥 그걸로 해결이 안되는 아픔이었고 사실 아픔이라기보다는 공허함에 가까웠다. 시도때도 없이 눈물이 나고 다시는 볼 수 없고 만질 수 없다는 것이 속상하고 허무했다. 꿈같았다.


꿈이기도 했다. 어느날, 쭈니랑 만나서 같이 놀고있었는데 갑자기 애가 시름시름 아프고 쓰러진다. 그렇게 당황해서 어쩔줄모르다가 눈을 뜨면 꿈이었다. 그래서 쭈니는 한동안 나의 사랑스러운 작은 악몽이었다.

여러 악몽이 있었다. 그렇게 생생했던 눈동자와 털이 인형처럼 굳어버리기도하고, 알고보니 쭈니가 없는게 아니라 내가 잃어버렸던 거였어서 쭈니를 다시 찾고 행복하게 지내기도 한다. 또 어느날은 쭈니랑 똑같이 생긴애가 나와서 쭈니가 둘이 된다. 그럼 둘중에 누가 진짜 쭈니인지 헷갈리기도 한다. 신나서 막 뛰어다니다가 아플때처럼 온 몸이 굳어버리기도 하는데 꿈에서는 현실감각이 없어 어영부영 하다가깨지만 꿈에서 깬 순간 그 순간 이게 꿈이었다는게 슬프고 또 좋았고 그런데 너무 미안해서 또 울게된다. 그런데 그렇게 나를 괴롭히던 그 꿈들도 이제 사라져 간다. 내 삶에서 쭈니가 없었던 것처럼 꿈에서 조차도 나오지 않는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어떤 사람의 존재가 잊혀지면서 그 사람이 찍혀있던 사진이나 그 사람만의 흔적들도 같이 사라지는걸 본적이 있다. 마치 그것처럼 내 삶에서 조금씩 없어져 가고 있는 것 같다. 이젠 힘들 때 쭈니를 떠올리지않는다. 그냥 힘들뿐이다. 그 따뜻했던 위로가 잘 떠오르지 않는다.


사실은 어쩌면 내가 쭈니를 잘 보내주고 있는 과정인지도 모르겠다. 더 이상 그 아이에게 기대지않고 온전히 내 삶을 내가 스스로 받아들일 준비를 하고 있는 것 같다. 이젠 그 아이도 내가 필요하지 않듯이 나도 쭈니가 필요하지 않은 것이다. 쭈니는 이제 없지만 쭈니가 주고 간 것들이 너무 많으니까 그것에 충분히 행복하다.

쭈니 덕분에 우리가족이 좀 더 화목할 수 있었고

나의 닫힌 마음을 열고 말할 친구가 생겼었고

내가 타지에서도 힘을 낼 수 있었고

우리가족의 위로가 되어주고 행복이 되어주고 아픔이 되어주고 공감이 되어줘서 고맙다고.

많이 수고했으니 잘 가라고 인사해주자.



잘가, 쭈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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