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야 써보는 실습 첫날의 기록

by 실버반지

실습이라는 걸 처음 해보는 날 아주 긴장한 상태로 병원에 갔다. 나는 실습생으로 왔으며 오늘이 첫 방문이고 여기에 있는 누구를 찾아오라고 했다는 것을 병원 문턱을 넘으며 가장 처음 마주치는 사람에게 털어놓아야 한다는 사실부터 극 I인 나에게 큰 난관이었기 때문이다.


“안녕하세요.”

45도 각도로 인사를 한다.


“오늘부터 간호조무사 실습 하러 왔습니다.”

심장이 약간 떨린다.


“종합사무실로 가려면 어디로 가야 할까요?”

~되나요 보다 조금 더 예의 있어 보이는 ~할까요 화법을 써본다.


실습뿐만 아니라 간호와도 전혀 관련 없어 보이는 안내데스크 앞에서 마스크 나눠주고 있는 직원에게 물어본다. 자동문이 열리자마자 그가 서 있었고 나를 쳐다본 건 그 사람 한 명뿐이었기에 다른 사람을 선택할 여지가 없었다. 당연히 아는 바가 없는 그는 옆에 있는 상담 간호사에게 떨리는 이 순간을 토스했다.


‘간호조무사 실습‘이라는 말을 듣지 못한 그녀는 직원이냐고 물었다.


“아니요. 오늘부터 실습하러 왔습니다.”

주눅이 잔뜩 들어있다.


어디 어디로 가라는 말을 듣고 나서야 그와 그녀의 시야에서 벗어나 가야 할 곳을 찾아 나설 수 있었다.

계단을 한 칸씩 오를 때마다 이제부터 만나게 될 사람은 어떤 사람인지 누구인지 또다시 긴장이 됐다. 처음 온 순간부터 긴장과 주의집중의 연속이다.


사무실에 도착해서도 입구에서 쭈뼛거리는 사복 차림의 두리번거리는 여자에게 관심 주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또다시 물어본다.


“오늘부터 간호조무사 실습하러 왔는데요.”

만나야 할 사람 이름이나 직급에 대한 정보도 없이 온 나는 거의 울먹거리기 직전이다. 난처해서 ‘오늘부터‘라는 표현을 자꾸 붙여 본다.


“아~ 기다리세요. 전화 한 번 해볼게요.”

이제 더 이상 미궁 속에 갇혀 있는 실습생 매니지먼트의 주체를 찾지 않아도 되는 것인가.


잠시 후 헐레벌떡 들어오는 중년 나이로 보이는 한 여자와 마주쳤고, 나를 대하기 직전까지 몹시 시급한 상황에 놓여 있었는지 보자마자 서류를 내놓으라고 한다. 짧은 인사만을 나누고 나서 주섬거리며 학원에서 받아온 서류를 찾아 꺼내드렸다. 엑셀 파일을 열어 학원과 내 이름만 적더니 곧바로 어디로 가라고 한다. 다행히 혼자 보내지는 않았고 동행해 주었다. 첫날이라 소개하려고 그러나 보다.


아주 중요하게 생각한 건 나라는 사람이 아니라 치렁치렁한 내 머리카락이었다. 머리망을 갖고 왔냐고 묻더니 머리를 딱 잡아 올리라고 당부했다. 내 스타일 아니라고 살까 말까 망설이다 혹시 모르니 분위기 봐서 안 하더라도 일단 사 갖고 간 다○ 머리망은 신의 한 수였다. 그러겠노라 답하고 1초에 세 걸음 정도 속도로 날아갈 듯 뛰어가는 그녀를 따라갔다.


얼마나 바쁜 상태에 놓여있는 사람인지 계단을 뛰어 내려가며 결혼을 했는지, 아이가 있는지 내 신상을 캐는 동안 예상은 했지만 여전히 평온한 마음으로 답하지 못하는 아이가 있냐는 질문에 또 한 번 마음이 다친다.


탈의실에서 실습복으로 갈아입고 도착하자마자 나는 한 간호조무사에게 이끌려 앞으로 해야 할 일을 열거식으로 주입받았다.


그때부터 시작된 내 고된 노동은 종일 서서 상체를 지탱했던 다리가 있나 없나 수시로 확인하게 만들었고, 집에 오면 긴장과 힘이 풀려 눈앞이 뽀얘지는 아름다운 현상을 겪게 했으며, 급격히 증가한 신체 활동으로 고갈된 에너지를 채우기 위한 저녁식사는 농경사회 밭일하던 소작농의 고봉밥을 연상시켰다.


하루 이틀 더 많은 일을 더해가며 걸음계는 드디어 만보를 돌파했고 손청결을 철저히 하라는 말에 분 단위로 비누를 문질러가며 씻은 손은 수분을 공기 중으로 빼앗겨 거북이 등처럼 쩍쩍 갈라졌다.


자, 이쯤 되면 내향인 실습생이 초반에 겪은 실황 중계가 되었을까.


그 후로 난 매일 환자들의 혈압과 체온을 재었고, 간호사들까지 통틀어 개중에 가장 만만해 보이는 인상과 말투로 인해 수없이 많은 질문을 환자들로부터 받았다.


높은 혈압인가 낮은 혈압인가, 항생제 투약은 몇 시간 단위인가, 진통제는 놔주고 있나, 일어나서 돌아다녀도 되는가, 오늘 한 검사 중에 당뇨 검사가 포함되어 있는가와 같은 내가 이곳에 와있는 이유를 충족시킬만한 질문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질문도 많았다. 편의점이 어디 있나, 물은 어디서 사야 되나, 1층과 2층엔 뭐가 있나를 물을 땐 ‘저도 여기가 처음입니다만…'이라고 속으로만 크게 외쳐주었다.


앉아 있으래서 앉아 있었는데 눈치 주는 바람에 앉았다 섰다를 반복하다 나중엔 그냥 서있어 버린 내 다리는 걷는 것 보더 서있는 게 더 힘들다는 사실을 상기시켜 주었고, 동시에 두세 가지 일을 기억하고 처리하는 동안 이렇게 일하다 보면 멀티플레이어 두뇌로 성장할 가능성이 있겠다고 위안 삼던 중 눈이 마주치자마자 전깃불을 끄고 오라고 시키려던 간호조무사에게 이렇게 말하게 되었다.


“선생님 저 침대 정리하고 바이탈 돌고 난 다음에 폐기물 상자 바꿔놔야 되는데 뭐부터 할까요?“


어이없는 웃음을 짓던 간호조무사는 형광등 불 끄라는 말을 차마 할 수 없었는지 알겠다고 하고 지나갔다.


빈 방 조명 스위치 누르는 것까지 실습생이 하고 와야 되는지 역할 혼돈이 올 때쯤 종아리에 배긴 알을 두드려 보았다. 탱탱하니 단단하게 잘 여문 다리에게 오늘도 붙어 있는 게 용하다고 달래 주었다.


시간이 많이 지났나 핸드폰 시계를 꺼내 보면 5분 지나있고, 밥 먹을 땐 시간이 많이 안 갔겠지 하고 보면 20분씩 지나 있곤 했다. 1분 버티기도 다리가 아파 벽에 엉덩이를 밀고 구부정하게 서있으면 지나가는 청소 아주머니가 어디 좀 앉아 있으라고 안쓰러운 눈빛으로 쳐다봤다.


그래도 시간이 가긴 가는구나 어찌어찌 퇴근 시간이 되자 어서 빨리 서둘러 인사를 마치고 나고 싶었지만, 앞으로 수월한 실습 생활이 되길 감안하여 한 명씩 예의바르게 인사 하고 나왔다.


처음으로 신체 노동을 겪어본 전직 사무직 근로자는 어질한 머리를 붙들고 빙글거리는 바깥세상을 구경하며 집으로 향했다. 종일 일한 팔다리로 혈액을 보내주느라 두뇌로는 혈류가 덜 흘렀는지 오후부터 머리가 띵하더니 편두통으로 변해갔다. 머리 쓰는 일을 하지 않았는데도 머리가 아플 수 있구나. 이 실습을 버티려면 혈액 순환에 신경을 써야겠다 생각했다.


첫 실습 당일날 정말 힘들었고 누가 누구인지 헷갈렸다. 동시에 몇 사람을 만났는지 기억도 안 났지만 다음 날엔 또 잘해봐야지 라는 생각을 어렴풋이 할 정도는 됐다.


하지만 연일 계속되는 고된 일과와 일이 특정되지 않고 그때 그때 쏟아지는 심부름으로 쉴 틈 없이 병원을 누비며 걷다가 잠깐 엉덩이 붙이던 의자마저 환자 보호자가 빌려가는 바람에 하루 종일 서 있어야 했을 무렵 깊은 깨달음이 스쳐갔다.


내 체력이 이대로 4~5개월을 버텨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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