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순번8]
이식을 못하고 난 후 한동안 침울했다. 유치하게도 이별 노래를 들으면서 눈물이 나다니.
‘너는 모르지. 너만 모르지. 너를 사랑하는 내 맘을. 걸음이 느린 내가 먼저 가지 못해서 ~’ *1) 대략 이런 가사를 들으며 혼자 짝사랑한 것 같다는 생각을 해봤다.
임신은 몸속에서 일어나는 물리 화학반응이다. 간절히 원하는 것과 관계가 없다.
어떤 이는 아무 생각 없이 하룻밤을 보내고 아이가 덜컥 생기기도 하고,
나처럼 난임으로 고생하는 사람은 절에 가서 100일 기도를 한다 해도 오늘 생길지 내일 생길지 내일 이후 언젠가 생길지 알기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래가 들리는 감성적인 상황에 눈물을 흘려 내려보내는 것은 의지로 제어할 수가 없었다.
+ 아이를 키우며 남편과 내가 더 꽉 찬 미래를 설계할 수 있겠다 생각해서.
+ 양측 조부모가 모두 살아 계시는 축복받은 시점에 탄생이라는 걸 겪을 수 있어서.
+ 나에게서 나온 절반을 세상에 남기고 갈 수 있어서.
+ 여러 가족과 엮여 사랑이라는 걸 받아보고라고.
+ 힘든 일도 많지만 자연의 아름다움도 느끼고 좋은 음악 그림과 신나는 일도 많은 세상살이 해보는 게 나았다 생각도 해보라고.
그리고 부모가 되는 데는 이유가 없기 때문에.
아이를 낳아 행복하려고 시도한 일이 왜 눈물이 되어 돌아오는가 싶다.
‘만약 행복해지려고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면 분명 방향이 잘못됐다는 것이다!’ *2)
미국의 신경과학자이고 심리학자면서 동시에 코미디언이기도 한 브라이언 킹 박사가 전해준 이 문구는 난임 치료 중인 내게 도움 될 만한 말이었다.
5일 배양하여 이식하려 했으나 발달 상태가 느려 4일째 되는 날 전화를 받고 이식이 취소되었다는 사실에 여러 의사들은 이런 조언을 주었다.
“5일 째에도 포배기로 발달 못한 배아는 뭔가 정상이 아니니까 그럴 거다. 그런 배아 이식 했다 유산되면 2~3개월을 쉬어야 된다.
그렇지만 실버반지님이 이식을 안해봤기에 다음 차수엔 나라면 이식 시도를 해보겠어요.”
“배아가 3개 이하로 나오면 3일 배양 이식을 하고, 4개 이상 나오면 5일 배양해서 좋은 배아를 선택해 보자. 이식을 해야죠.”
“3일 배양 배아 이식도 가능하다.”
“같은 날 같은 배양액으로 키운 모든 배아가 그렇게 되진 않았지 않냐. 관리가 필요하다.”
불안해하는 심리가 많은 편(반드시 고쳐야겠다 생각하는 성격이기도 하다)인 나는 가만히 있지를 못해했다.
1차 시험관 후 다음 차수까지 한 달을 기다려야 한다. 그동안 상담을 받으러 다녀보았다.
어느 날은 진료실에서 상담받으며 찔찔 짜는 일까지 발생했는데 실로 43세 사람 모습이라기엔 무리가 많았다. 훌쩍거리거나 엉엉 소리 내어 우는 것이 아니라,
“ㅂ…배…아…가 잘 안…자라…서…” (눈물을 한 번 꾹 참았다 다시 이어간다.) “이식을… 모..옷… (흑흑흑) 못했어요…”
나에게는 처음 일어난 일이지만 진료실 의사는 많이 본모습인지 부드러운 휴지를 조용히 건넨다. 진료실 간호사님도 살짝 쳐다보신다.
이렇게 전하고 있는 나 자신도 부끄럽다.
상담을 받고 올 때마다 남편을 살며시 괴롭히곤 했다.
오늘은 무슨 말을 들었다고,
어떤 날은 상담받고 나니까 안심이 되고 어떤 날은 상담받고 더 힘들다고,
5일 동안 잘 살아남아 순탄하게 이식한 사람도 있다고,
내 상태가 이렇게 나쁜 것이냐고,
이제 어디로 가야 되냐고.
표현하기 힘든 불안감에 그랬던 것 같다. 역시나 진취적이고 미래지향적 성격의 남편은 언제나 해결책을 고민해주곤 한다.
남편 성격이 나와 정반대여서 이럴 때 아주 다행이다.
한 달간 얼굴을 볼 때마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끝에 우리는 세 번째 만나서 들은 ”3일 배양 이식도 가능하다. “라고 말한 의사뿐께 다음 시험관을 맡기기로 했다.
조용히 티슈를 건네주기도 한 그 의사는 ”찔찔 짜지 말고 여행을 갔다 오던지 해. 그대로 있다가 기분 상태만 바꿔가지고 와. 찔찔 짜고 그러고 있는 거 난소에 정말 안 좋아. “라는 난임 치료 순수녀가 알아듣기 매우 쉬운 말로 2차 조언도 주었다.
브라이언 킹 박사가 적은 문구와 일맥상통하는 말이기도 하다. ‘스트레스에 장기간 노출되면 대가를 치러야만 하고 실제로 치르게 된다.’ *3)
긴 말 안 했지만 따뜻하기도 하고 하고자 하는 말만 분명히 전하는 냉철함도 있는 이 의사에게 조언을 들은 후 실제로 여행을 다녀왔다.
카라반 속에서 잠을 자고 캠핑을 즐기는 정적인 내 성향과 다른 이색 여행이었다.
아무런 정보 탐색 없이 시작한 1차 시험관처럼 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영양제를 사들였다. 먹으면 뭔가 좋아질 거란 예감이었다.
그보다도 이렇게라도 해야겠다는 마음이 컸겠지만 말이다. 영양제를 먹으며 난임 여성들이 많이 한다는 하루 만보 걷기를 했다.
이 걷기는 향후 만 이천보까지 늘었다. 게다가 그때부터 사들인 영양제는 4개월 간 38만 원어치를 사는 결과를 토해내기도 한다.
(매일 짠순이라고 남편에게 타박받는 나에게는 놀라운 일이다.)
4주 정도 시간이 흐르니 이식 취소 전화를 받은 그때 감각도 점점 무뎌져 있었다. 영양제를 먹으며, 만보씩 걸으며, 집 베란다에 서면 탁 트인 경관을 내어주는 근처 대학교 운동장 트랙을 열심히 뛰었다. 코로나로 폐쇄했다가 최근에 다시 개방한 운동장이 때마침 숨이 찰 정도 운동 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해 주어 다행이다.
돌아오는 생리 때 병원에 가야 한다. 따뜻함과 냉철함을 지닌 그 의사분과 다시 시작하리라.
한 달보다는 더 지났지만 생리는 시작됐다. 시작 전 일주일 간은 날짜가 지났는데 왜 시작을 안 하느냐고 조바심 가득한 걱정을 남편에게 토로하기도 했지만 정상으로 돌아온 신체리듬은 난임병원에 가라고 알려주었다.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기회가 있음에 감사한다. 이번 차수에 잘 될 것이다. 나는 엄마가 된다. 나는 엄마가 된다. 되뇌었다.
#이식취소 #눈물 #난임병원상담
*1) 하동균 그녀를 사랑해줘요 (2006)
*2) 느긋하게 웃으면서 짜증내지 않고 살아가는 법 (브라이언 킹 지음, 윤춘송 옮김, 2023, 프롬북스)
이 책의 원문에는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P. 15)
‘나는 심리학 관련 학위도 있지만, 코미디언이기도 하다. 명심해야 할 점은 만약 행복해지려고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면 분명 방향이 잘못됐다는 것이다!‘
*3) 같은 책 p.68~69에 기재된 원문입니다.
‘단 6개월의 단기 계약이었다 하더라도 그녀에게 자신의 뇌가 위협이라고 받아들인 상황 속에서 신경을 곤두세운 채 보낸 기간이다. 아침마다 교통체증 속에서 6개월을 앉아 있었고 불필요하게 높은 수준의 아드레날린과 코르티솔 호르몬의 영향 속에 보낸 6개월이었다. 스트레스에 장기간 노출되면 대가를 치러야만 하고 실제로 치르게 된다. 내 눈꺼풀에 경련을 일으킨 직장으로의 출근은 1년 동안 계속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