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순번 7] 배아이식 취소
기쁜 마음으로 받은 전화기 너머 들려온 목소리는 담당 의사라고 말했다.
병원 상담실 대표 전화로 온 것 보니 간호사일 줄 알았는데 직접 전화도 해주네. 이식 전날이라 각별한 당부를 의사가 연락해 주는 줄 알았다.
“실버반지님이시죠? ㅁㅁㅁ 입니다.”
“네, 안녕하세요!!”
”월요일에 난자가 5개 채취되었는데, 이 중 2개가 수정되었어요. 배양을 해봤는데 상태가 안 좋아서 내일 이식은 취소합니다.“
”네…에~? 어… 얼마나 안 좋은데요? “
목소리를 덜덜 떨면서 물어봤다.
“2개 중 1개는 상태가 많이 안 좋고, 1개는 두고 봐야 되는데 포배기로 발달하면 이식할 수 있겠지만, 지난번 진료 때 배아 2개 이식하기로 했잖아요.
동결 가능하면 했두었다가 채취 한 번 더 해서 모아서 이식해요.”
시험관으로 인한 다태아 임신 가능성에 대해 설명해 줄 때, 쌍둥이도 괜찮다고 했던 말이었다.
난자 채취 후 이식까지 약속된 시간 5일이었다. 난임치료 순수녀였던 나는 채취한 난자와 내 몸 상태가 좋아서 5일을 키울 수 있기 때문이라고 기분 좋은 상상을 홀로 했었다.
의사가 직접 전화하는 일은 좋은 소식보다 안 좋은 소식을 전달할 때인가 보구나.
5분도 안 되는 시간 동안 전화를 끊고 난자 상태도, 전달 내용도, 의사가 직접 전화한 이유도 좋은 것이 아니었다는 현실을 직시했다.
회사에서 받은 전화여서 통화 후 할 일이 많다. 택배도 가지러 가야 되고 남은 시간도 업무를 하며 버텨야 되는데 서 있기도 힘들 정도로 마음에 상처를 입었다.
걷는데 다리가 떨리리는 게 충격이 컸나 보다.
독일 뇌과학자 아힘 페터스는 목표를 위한 기대가 우리가 실제로 달성할 수 있는 결과에 대한 기대와 일치하지 않을 때 불확실성과 스트레스가 생겨난다고 말한다.
이 유명한 독일 학자는 또 목표를 위한 기대는 진공 상태로 고립되어 존재하는 게 아니라, 사람들 사이 의사소통으로 기대들(사전확률)이 교환되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
목표는 배아이식이고, 결과는 취소였다. 기대와 결과가 불일치하며 크나큰 스트레스를 받았다. 전화 한 통화로 통화 전과 후가 다른 세상이 된 기분이다. 난자 채취 후 ‘시험관 할 만하네~’라고 한 생각은 이제 불확실이라는 근심 걱정으로 바뀌었다.
채취가 월요일이었고 전화받은 게 금요일이니까 주말은 눈물로 지새울 것이 뻔하다. 이식할 생각에 주중에 누가 뭐라고 해도 즐거움으로 가득했다.
이식만 하면 다 되는 줄 알았는데 바로 다음 날이 이식인데, 하루 사이에 이렇게 달라질 수 있나.
예정되어 있던 이식 날 아침 병원에 너무 가고 싶었다.
‘가서 이식하면 되는데’라는 생각에 텅 비어버린 약속 시간 무의미하게 앉아 있는 것이 더 공허하고 마음 아팠다.
속 상하고 아쉬운 건 똑같은데 감정에 북받친 나에 비해 남편은 꽤 이성적이었다.
금요일부터 주말 동안 울기도 했지만 위로해 주려는 남편 덕분에 싸매고 누워 있지만은 않을 수 있었다.
일요일 점심으로 먹은 곰탕이 맛있게 느껴질 무렵 정신이 제자리로 돌아오는 걸 느꼈다. 비교적 속도가 빠른 마음 회복이다.
남편이 자기도 생각해보겠다고 한 건 내가 아니라 배아를 말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이식을 못할 정도 배아라면 폐기하는 게 맞지 않나?
3일 배양해서 이식을 해버린 상태라면 모를까 몸 밖에 있는 비실비실한 배아를 왜 끌고 가는 거지?
5일이 되어가는데 포배기로 발달 못했다면 그것이 정상인가?
왜 폐기할 거냐고 묻지 않았을까?
동결 후 해동했을 때 상태가 더 나빠지면 그때는?
정신 차린 후 드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에 답을 낼 수 없었다.
아무리 무지해도 이식하고 남는 배아를 동결한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다. 무엇보다도 상태가 나빠 이식하지 못하는 배아를 폐기할지 묻지 않고 더 두고 본다는 것. 이 포인트가 신뢰를 떨어뜨렸다. 힘들게 키운 난자이고 남편과 내가 만나 처음 만든 수정란인데 아쉬움도 많이 남았다.
병원에 연락하는 순간까지 고민했던 것 같다. 다시 월요일은 시작되었고 마음 다잡고 금요일 전화받았던 그 번호를 꾹꾹 눌렀다.
“생년월일 ,,, 이름은 실버반지입니다. 동결 가능 여부 기다리지 않고 배아 폐기 하겠습니다.”
울다 보면 마음이 풀리기도 하지만, 오래 울고 있으면 우는 사람만 손해다. 첫 시험관은 결과를 알 수 없이 끝났다.
임신이 안 됐으니 성공은 아니다. 그렇다고 실패인지 실패가 아닌지 그 중간 어디쯤에 있는 듯하다.
당분간 울다가 말다가 하는 나날이 이어졌다. 용종 녀석을 떼어낼 때부터 자연임신을 시도하고 과배란주사를 맞던 기억이 스르륵 스쳐간다.
초겨울 향하는 쌀쌀한 날씨만큼이나 마음도 쌀쌀해진다.
#첫시험관시술결과
*불확실성의 심리학 (아힘 페터스 지음, 이미옥 옮김. 에코리브르. 2022)
책에는 실제 이렇게 기재되어 있습니다. (P. 276)
우리는 불확실성과 스트레스는 목표를 위한 기대가 우리가 실제로 달성할 수 있는 결과에 대한 기대와 일치하지 않을 때 생겨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따라서 기대치가 일치하지 않으면 불확실성이 생겨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우리의 목표를 위한 기대는 진공 상태로 고립되어 존재하는 게 아니다. 사람들 사이의 의사소통으로 기대들(사전확률)이 교환되는 것이다. 애초에 의사소통을 통해 비로소 기대의 불일치가 등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