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순번 9] 두 번째 과배란
새로운 시작을 앞두면 원하는 바가 다 이루어진 것처럼 즐거울 때가 있다.
다시 시작한 시험관 2차에서 과배란주사를 타온 날 잘 되었을 그날을 상상하며 남편과 주고받은 대화다.
“이 동네는 엄마랑 아기 살기 딱 좋아.”
“맞아. 초등학교까지 여기서 다니고 학교 들어가면 학군 좋은 곳으로 이사 가자.”
“그래야지. 키즈카페도 많고. 새로 지은 쇼핑몰 같은 누릴 수 있는 건 다 누리고. “
”그래도 학원도 보내야 하니까 공부는 학구열 높은 데서 시키자. “
”그래. 학교 다니면 그때 가서 또 생각해 보자. “
잠시 정적이 흐른 후 내가 말했다.
“이런 치료라도 할 수 있어 다행이야. 이제 주사약 타왔을 뿐인데 벌써 초등학교까지 다 보낸 거 같네.”
이렇게 상상이라도 할 때면 무척 흐뭇하다.
시험관 2차를 위해 병원을 찾은 날은 토요일이었다. 직장 다니며 난임 시술을 받는 여성들이 어렵사리 선택하는 요일인 까닭에 대기는 1시간 이상 길게 소요됐다. 이 시간마저 아깝지 않을 정도로 아기가 간절한 사람이 우리나라에 정말 많다 생각했다.
1차 시험관 때 과배란주사 맞던 중간에 용량을 줄인 이력이 있다.
새로이 시작해 주신 담당 의사는 이 부분이 잘못됐다고 생각하시곤 도중에 줄이는 것 없이 같은 용량으로 계속 맞자고 하셨다.
그리하여 펜타입 주사를 매일 같은 용량으로 하루 한 번 맞게 되었다. 펜에 장착된 다이얼을 돌려 용량 맞춰 투약하는 펜타입 주사는 맞기가 참 편리하다.
그것도 하루에 한 번만 하라고 하다니. 한 차례 시험관을 하며 주사에 대한 두려움을 없앤 데다 횟수까지 줄어드니 그야말로 ‘너무 쉽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아마도 과정이 쉬워지다 보니 주사약 받아온 날 희망찬 상상으로 더 즐거워졌으리라 생각한다.
‘부푼 가슴으로 꿈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상상하는 사람은 매일매일 즐겁고 신나는 삶이 이어진다‘ *라며 ’행복을 상상하면 행복해진다‘고 한 유영만 박사님이 내 생각에 맞장구쳐주는 것 같아 매우 고맙다.
(지식생태학자로 알려져 있는 유영만 한양대 교육공학과 교수는 책으로만 접했으며 일면식이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그분께서 저를 알리도 만무합니다.)
과배란주사를 맞은 날부터 5일째 병원에 또 방문했고 난포는 잘 자라고 있었다. 무럭무럭 쑥쑥 자라라. 몇 개 더 자라주면 더 좋고.
난임 치료를 한 번이라도 해본 사람들은 알 거다.
과배란주사를 맞으면 난포가 자라고 자란 난포가 터져 배란되어 버리는 것을 막기 위해 조기 배란 억제제를 투약하며,
잘 자란 난포를 채취하는 시술에 들어가기 이틀 전 정확한 시간에 맞추어 난포 터뜨리는 주사를 맞는다.
이 과정이 모두 환자가 직접 자기 피하지방에 주사를 해야 하며 나도 다 했다.
1차 시험관 때와 달라진 건 약으로 인한 부작용이 크게 없었다.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으나 처음 시험관 때는 맞고 나면 심한 오심과 어지러움이 나를 괴롭혔다.
어지러움이 심해 온종일 손바닥과 손목이 맞닿는 두 손 부위를 이마에 갖다 대고 팔꿈치로 책상을 누르며 반 엎어진 자세로 몽롱하게 일하다 온 날도 있었다.
그날 집에서 무언가에 발을 긁혀 피가 흐르고 있는데 워낙 정신이 어지럽다 보니 아프긴 아픈데 자세히 쳐다볼 여력이 없어
피가 알아서 멈추고 굳으며 발 여기저기에 빨갛게 묻은 채로 잠 잔 날도 있다. 2차 때 맞은 약은 이런 부작용이 없었다.
주사로 인한 예민함과 큰 부작용 없이 자연스럽게 채취 일자를 잡았다.
따뜻하고 냉철한 담당 의사와 채취하기로 잡은 날은 한 해가 저물어가는 12월 29일이다. 이 날 나와 남편이 함께 병원에 가야 한다.
나도 일 하면서 시험관을 했지만 남편은 나와 비교가 안될 정도로 바쁜 사람이다.
남편 정액 채취가 다 끝나고 난자 채취 시술 시작하기 직전까지 대기실에 누워있는 나에게 전화한 것을 보면 가기 전까지 나만 두고 가도 될까 고민한 것 같다.
시험관 1차 때 3시간 가까이 기다렸던 걸 생각하면 밖에 대기실에 있지 않는 것이 내 마음이 편하다. 바쁜 거 알기에 한 번 기다려줬으면 그거면 충분하다.
남편뿐만 아니라 나로 인해 누군가가 번거로움을 감수해야 한다면 성격상 그게 더 불편하다.
회복실에서 간호사님이 자면 안 된다며 몇 번 어깨를 흔들었다. 덕분에 오래 자지 못했고 마취가 깨자마자 채취한 난자 수는 9개라는 걸 시술 직후 알았다.
이제 수정 개수만 기다리면 된다. 연구실에서 오후에 난자와 정자를 수정할 것이다. 귀가하여 별다르게 한 건 없었다.
이번에도 별로 아프지 않았고 소량 출혈에 좀 놀랐을 뿐이다.
생각 없이 보낸 이틀이 흘렀고 그 사이 수정란 개수도 알게 되었다.
8개. 90%에 가깝다.
1차 때 수정란 수에 비하면 감사한 숫자다. 또 그때가 떠올라 엉엉 울며 삼십 초 가량 오열했다. 이렇게 잘 나오는걸 그토록 힘들어했나.
병원 간호사로부터 받은 전화는 배아 이식 날짜를 알려주는 연락이었다. 이제 이식만 하면 된다. 드디어 이식을 한다.
배아 이식을 기다리는 나날은 최상의 컨디션으로 최고의 기분 상태를 유지해야겠다.
#시험관2차 #두번째과배란주사
*상상하여? 창조하라! (유영만 지음. 2008. 위즈덤 하우스)
책 원문에는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p. 71~72)
: 행복을 상상하면 행복해지고 불행을 상상하면 불행해진다. 승리를 상상하면 승리가 찾아오고 패배를 상상하면 패배가 찾아온다. 그 사람의 향기는 그 사람의 상상력에서 나온다. 이는 너무도 간단명료한 삶의 공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은 이 단순한 진리를 잊고 산다. 한 사람의 매력은 그가 어떤 상상을 하는지에 따라 달라진다. 늘 반복되는 비슷한 고민만 하면서 생각에 머물러 있는 사람에게는 한 발자국의 전진도 없다. 그러나 부푼 가슴으로 꿈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상상하는 사람은 매일매일 즐겁고 신나는 삶이 이어진다. 고민으로 일관하는 사람은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과거와 현재만 볼 수 있지만 상상하는 사람은 현재의 굴레에서 벗어나 가슴 뛰는 미래를 보는 능력을 갖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