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순번 19]
그나마 행복했던 순간을 꼽으라면 병원에서 주는 밥이 꽤 괜찮았다는 것?
닝닝한 맛과 미끌거리는 미음 혹은 첨가제라고는 소금조차 넣지 않은 흰쌀밥죽이 환자식이라고 생각했던지라 병원밥에는 기대가 없었다.
새콤달콤하게 무친 천사채, 중국산에 길들여져서 사서 먹는 김치는 모조리 국산이 없을 것이라는 예상을 뒤엎은 깍두기,
적당한 간에 합성조미료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 따끈한 시금칫국에 건강을 고려한 흑미밥은 입맛을 잡아끌었다.
지금 말한 메뉴들은 퇴원하는 날 아침에 나온 식사인데 저걸 막 배식받았을 때 곧바로 먹지 못하고 한 시간 넘게 눈앞에 두고 있었다.
옆 병상, 옆옆 병상, 앞 병상까지 모두 쩝쩝 거리며 숟가락 달그락 거리는 소리 내가며 먹는 것을 들으면서도 바로 수저를 들지 못하는 심정이 오죽했을까.
이래서 강아지들 보고 간식 코 앞에 두고 “기다려!”라고 하면 안 되는 거야. 십분 이해가 가는 강아지들 심정을 어루만져 보았다.
병원에서 무료하게 앉아 강아지 마음이나 헤아려보는 실없는 경험을 한 데에는 이유가 있다.
밤 사이 배출한 태아가 깨끗하게 빠져나왔는지 초음파 검사로 재차 확인하는데 아직도 자궁내막이 2cm 넘는다고 한다.
밤 동안 나이트용 패드를 5개나 사용했다. 출혈량이 꽤나 많았는데 여전히 자궁내막이 두껍다며 에르빈이라는 주사를 한 대 더 놓았다.
자궁을 더 수축시켜야 되는 모양이다. 초음파 검사에 주사까지 놓은 후에도 끝나지 않고 담당 의사가 와서 다시 볼 테니까 기다리라고 한다.
제대로 배출이 안돼서 혹시라도 수술을 하게 될지도 모르는 사람은 아침 식사를 ‘유예’한다고 들었는데 설마… 설마… 설마… 아.. 아니겠지.. 아니어야 해… 수술이 싫어 여기 온 것 아닌가. 정말로 싫다. 자궁 내막을 건드리는 건.
주변 밥 먹는 소리를 감상하며 30분쯤 지나자 눈앞에 둔 맛깔스러운 음식을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간호사실로 가서 쭈뼛거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저기.. 저 .. 밥 먹어도 돼요?”
어젯밤 배출한 검체를 고이 받아 조곤조곤 나온 것 같다고 말해준 간호사는 밤 사이 근무가 많이 힘들었는지 아니면 환자에게 절대 단호하게 전달할 때는 호랑이가 되어야 하는지
“안돼요! 아직 식사하시라는 지시 못 받았어요.” 라며 단칼에 제지했다.
단호한 간호사 어투가 무서워서 더 이상 물어보지 못하고 발길을 되돌려 병실로 향했다.
다시 30분쯤 지나자 진료실에서 만나던 얼굴이 하얗고 눈이 반달형인 내 담당 의사가 왔다며 초음파실로 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첫인상이 만족스러웠던 주치의는 매번 초음파실과 진료실이 분리되어 있어 직접 초음파를 봐주는 일이 없었다.
이 날은 입원 상태여서 처음으로 초음파를 직접 보는데 담당의사임에도 항상 진료실에서만 보다 보니 초음파 검사할 때는 낯선 모습이다.
초음파 화면을 보며 처치를 계속하는데 뭔가로 긁는 느낌이 들었다. ‘윽, 윽’ 소리를 냈더니 의사는 나에게 어디가 아프냐고 물었다.
“어디가 아프세요?”
“안쪽을 긁는 느낌이에요”
“약으로 자궁경부를 열어서 그래요. 걸려 있는 것 빼는 건데 안쪽을 약간 건드려요. 내막은 건드리지 않습니다.”
설명하는 게 역시 다정다감하다.
초음파 후 의사는 이제 됐다는 의사 표시와 함께 병실로 돌아가라고 했다.
자리에서 일어나 보니 바닥에 피가 줄줄 흘러내려 있었다. 땅에 떨어진 다량의 출혈을 보니 이런 게 유산이구나 하는 쓸쓸함이 또 한 번 밀려왔다.
병실로 간 몇 분 후 간호사실로부터 식사해도 된다는 지시가 왔다. 음식들을 뒤늦게나마 얌냠 쩝쩝 먹으며 밥 한 공기를 딱 딱 비웠다.
약물로 잘 배출되었구나. 아침 식사를 계속 못하게 해서 불안했는데 잘 먹고 나니 그제야 안도했다.
이후로 일주일 간은 서서히 줄어드는 추세 긴 했지만 정말 출혈량이 많았고,
병원에서 지어준 처방약을 먹고 나면 허리를 못 펼 정도로 생리통 같은 통증이 심했다.
이래서 유산하면 5일 휴가를 부여하는구나.
나처럼 시험관이며 유산이고 알릴 수 없었던 처량한 처지는 연차를 소진해서 이틀 입원하고 이어서 붙어 있는 주말까지 총 4일을 쉬었지만 그걸로 택도 없다.
적어도 7일은 푹 아주 푹 쉬어야 한다.
아니 쉴 수만 있는 상황이라면 2주간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아궁이 바로 위 뜨끈한 구들방 아랫목에서 머물기를 권한다.
(필자는 어릴 적 시골집에서 실제로 검게 탄 아랫목을 본 적 있지만, 요즘은 이런 걸 ‘온열매트’라고 부른다.)
마음이 안 좋은 건 둘 째치고 몸이 정말 아프다. 주말까지 쉬었다지만 출근한 월요일에는 하루종일 왜 그러냐는 말을 들을 정도로 컨디션 난조에 통증이 심했고,
화요일 수요일을 거쳐 조금씩 나아졌지만 입원한 다음 주 주말까지 그냥 정상이 아니라고 봐도 될 듯했다.
남편에게 부린 짜증과 괴로운 심경을 토로한 나쁜 언어들은 이제껏 만나온 중 최고점을 찍었다.
유산 후유증으로 덤으로 얻은 산후풍은 이전까지 한 번도 겪어본 적 없는 통증이었지만 시작되자마자 ‘아, 이거구나~’라고 단 번에 알 수 있었다.
아무리 날고 기는 멋있는 대한민국 워킹 여성이라 해도 이런 부작용을 감내하는 유산을 등에 지고 일을 나가서 하기에는 난임이라는 현실이 너무 서럽지 않은가.
날씨가 추우면 살갗, 그러니까 피부가 추운데 산후풍은 이거랑 차원이 다르다.
마디가 시리다고 하는 산후풍은 냉장고 문을 열어 냉기가 바깥으로 흘러나올 때 시원하다는 느낌이 아니라 발목이 잘라질 것 같은 통증이다.
저절로 한 발 물러서서 반대쪽 종아리에 시린 발목을 갖다 댄다. 어디 냉장고뿐이겠나.
시베리아 고기압이 한반도로 내려와 추위가 지속되는 날에도, 실내에 있어도 출입문 근처에 있어 찬바람이 가끔씩 스쳐 지나갈 때도, 자동차 에어컨을 발 쪽으로 켜놓았을 때도 냉한 기운이 있을 때면 손목 발목을 반대쪽 손으로 감싸 쥐어 조금이라도 온기를 전하려고 하게 된다.
글을 쓰는 지금도 이 때문에 고생하고 있다.
이런 일을 직접 겪고 보니 출산과 가정, 성공과 일 사이에서 고민하는 여자들이 너무 안 돼 보인다.
결국에는 어떤 쪽을 선택하나 궁금해지기도 하고, 일과 가정을 완벽하게 해낸 여자들을 보면 대단함을 넘어 신기해 보이기도 한다.
‘나는 그렇게 하지 못했는데.’
다들 출산이나 유산 후에도 몸과 마음이 재깍재깍 추슬러지셨는지,
일이 항상 일정한 양과 강도로 있지 않고 들쑥날쑥할 때는 아이 생각 전혀 하지 않고 일에만 온전히 집중할 수 있었는지,
일도 하고 아이도 낳아 키우며 운동하고 몸 관리할 시간은 낼 수 있었는지,
워킹맘 분들 자신의 건강은 잘 지키고 있으신 건가요?
유산한 사실을 심적 부담감 없이 터놓고 알릴 수 있고, 주변사람들도 함께 걱정해 주면 좋으련만 꿈같은 얘기일까.
장담하건대 그 누구도 쉬고 싶다는 생각에 ‘유산’을 일부러 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몸과 마음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그 일을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없단 말이다.
아직도 사회가 유산은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 분위기다. 개인인 알아서 치료하고 알아서 마음도 추슬러야 한다.
어쨌건 동병상련의 아픔을 겪은 사람으로서 유산한 난임 여성은 본인이 스스로 알아서 시기적절하게 놓치지 말고 잘 챙기라는 말을 꼭 전하고 싶다.
<회복기>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공짜로 치료해주는 치료사가 있다면 그건 ‘시간’이다.
진부한 말이지만 ‘시간이 약’이라는 속담 따위는 이번에도 적용되었고, 몸이 회복되는 속도보다 빠르게 마음 정리가 되어 가고 있었다.
뭔가 하고 있지 않으면 불안해하는 성격 탓에 하루 중 반을 누워 지내는 생활도 되도록 빨리 청산했다.
이를 실천하라고 엉덩이를 걷어차 준 데일카네기 책 한 구절이 있는데 소개하면 이렇다.
우리들 대부분은 지금 발라야 할 잼에는 신경 쓰지 않고
어제 바른 잼 때문에 속을 썩이고
내일 바를 잼 때문에 걱정을 한다. *
멋지지 않은가?
난 앞으로 어떤 일을 하더라도 이 문장을 기억할 거다.
지나간 유산 때문에 싸매고 드러누웠고
향후에 할 난임 치료 때문에 골머리 썩느라
지금 해야 할 몸 챙기는 일은 손도 대지 못하고 있지 않은가.
약물 배출한 바로 다음 주 1주일은 회복기간으로 회사 - 집만 오고 가며 무념무상 쉬기만 했다.
그다음 주부터 본격적으로 심적 괴로움이라는 단단한 알껍질에서 깨고 나오려고 애를 썼다.
다음은 몸과 마음을 회복하기 위해 했던 일들이다.
1. 한의약 지원 사업 참가
남편을 졸라서 한약을 먹겠다고 했는데 찾아보니 지방자치단체 별로 난임 여성을 위한 한의약지원사업이 있었다.
3개월은 난임치료를 쉬자는 생각에 이 기간에 한약을 먹어야겠다 했고 서류만 잘 갖춰 내면 지원받는 게 어렵지 않았다.
시험관 시술을 쉬어야 하는 이유는 원인을 알 수 없는 난임이기 때문에 한약을 먹으면서 자연임신을 시도해 보는 것이라고 한다.
그래 가능성은 낮지만 자연임신 되면 좋은 거지.
(난임 치료를 못하는 기간이 지자체마다 3개월이나 6개월로 다르기 때문에 이것도 잘 알아봐야 한다.
한 시가 급한 난임 부부에게 시험관을 쉰다는 건 결정하는데 매우 큰 고려 요인일 것이다.)
한의약지원사업에 참가하려고 난임진단서를 떼오는 날 이벤트가 있었는데 고지식하고 융통성 없는 내가 교통 법규를 위반해 버렸다.
규칙과 규범은 반드시 지켜야 하는 것이라고 배운 그대로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교통 위반이라니.
병원 갔다 오는 길에 차가 막혀 일렬로 길게 늘어선 차 사이로 차선을 변경해 끼어들었더니 그 장면을 현장에서 캠코더로 찍은 것이다.
신속하게 배달된 과태료 고지서는 왕복 차비의 열 배쯤 되는 금액을 청구했다.
돈이 아까워 조심해야겠다 싶었지만 한편으론 돈이나 재화를 받는 성격의 지원사업은 찾고 또 찾아서 알아냈는데,
돈을 지불해야 하는 과태료는 과장되게 비유하자면 전광석화 같은 속도로 날아오는 대조적인 현실에 씁쓸한 웃음이 나왔다.
과태료 고지서에 나온 사진을 보면 실선이 아닌 점선 구간에서 차선을 변경했다. 점선 차선이기 때문에 해도 되는 줄 알았다.
궁금하기도 하고 돈도 아깝고 하는 마음에 경찰서에 전화해서 물어보니,
점선 구간이어도 지체되는 시간대에는 맨 뒤에 있는 차 뒤에서부터 서행해서 가야 하는 게 교통 법규에 있다고 한다.
정말 몰랐다. 실선에서는 차선 변경하면 안 되지만 점선도 막히는 구간에서는 차선을 바꾸면 안 되는지 처음 알게 되었다.
어쨌든 귀한 시간을 내어 차선을 따라 기다린 공이 무색하게 새치기를 한 격이니 내야 하는 금액은 착실히 기일 내에 납부 완료했다.
2. B형 간염 백신 접종
임신 관련된 검사를 할 때마다 내심 걸리는 게 있었는데 B형 간염 항체였다.
그 항체는 병원에서 끼워 넣은 검사 항목에 언제 넣었는지도 모르게 들어가 있어 두 번이나 검사를 해보게 됐는데 항상 음성이었다.
분명 열 살 때 학교에서 나눠준 가정통신문에 1차, 2차, 3차에 나누어 맞으라고 적혀있어 착실하게 맞았는데.
짖꿎은 초등학교 같은 반 남자애들은 복도에서 줄 서서 주사 맞을 차례를 기다리다 늦게 맞으려고 슬며시 여자애들 뒤에 가서 서던 것도 기억나는데.
3차 접종 때는 얼마나 아팠는지 주사 놓던 의사가 안경을 썼던 것까지 뚫어져라 쳐다봤던 기억도 나는데.
근데 왜 항체가 없지?
감기에 걸리거나 코로나 백신을 맞거나 소소한 잔병치레로 다니는 내과에 갔을 때 물어본 바로는 B형 간염은 시간이 많이 지나면 예방접종을 해도 항체가 없을 수 있다고 한다.
내가 주사를 맞던 1990년 대에는 예방 접종 기록을 남기지 않아 접종 여부를 확인할 수 없지만,
맞은 것만 분명하면 또다시 접종하지 않아도 된다고 해서 그냥 두고 있었다.
이번에 착상 시기에 코로나에 걸리고 원치 않게 유산을 하다 보니 임신한 상태는 내 몸이어도 내가 제어할 수 없다는 걸 절실히 느꼈다.
그리고 불안함이 많은 성격 상 이런 큰 일을 겪고도 마음 한 켠에 걸리적거리는 먼지 같은 요인을 방치한다는 건 허용할 수 없었다.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더 컸겠지만 말이다.)
B형 간염 항체도 음성에서 양성으로 바꿔놓자는 결의에 찬 일념으로 예방접종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또 열심히 찾아보니 병원에서 맞으면 회당 3만 원, 보건소에서 맞으면 회당 5천 원이다. 아싸! 보건소로 가자.
생각한 당일 보건소로 향했고 5시 30분까지는 도착해야 하나 5시 35분에 아슬아슬하게 미끄러지듯 들어가서 제발 놔달라고 오늘 아니면 올 시간이 없다고 사정했다.
나이가 지긋하신 중년에서 노년으로 넘어가는 과정에 계신 차분한 여자 의사는 “그래 그래 어서와 해주자.”라면 접수하고 오도록 해주었다.
감사한 배려에 영광의 5천 원을 결제한 후 접종 전 문진에 열심히 답했다.
단발머리에 안경을 쓴 희끗희끗한 은발이 다수 보이는 보건소 의사는 흡사 만화에 나오는 의사 캐릭터를 연상시켰다.
“임신 중이거나 앞으로 임신 가능성이 있어도 접종 가능합니다.”
라는 말에 내가 “한 달 전쯤에 임신한 적이 있으면요?”라고 물었다
“어?”
의사는 잠시 생각하더니 “아~ 그랬구나.“라며 머리를 끄덕거렸다.
마감 시간 임박한 늦은 시간에 어렵게 왔지만 무사히 접종을 마친 내게 의사가 말했다.
”유산이 뭐 어때서, 유산했다는 건 임신할 수 있다는 거야. 계속 (임신) 시도할 거지?”
“네…”
유산 후에 몇 번 들은 적 있지만 들을 때마다 그 말이 싫다.
‘임신은 된다는 거네.’ 이 말.
거두절미하고 던져지는 이 말속에 ‘너무 힘들어하지 말아라. 그마저도 안돼서 고생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는 걸 알지만,
유산의 아픔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에게서 나오는 그 한 마디는 얼마나 큰 고통인지 가늠하지 못하는 것 같아 속상하기 짝이 없다.
임신했으면 출산을 해야지 누가 유산이 하고 싶어 했겠는가.
나쁜 뜻으로 한 말은 아니니까, 그거 아니고도 헐레벌떡 달려온 내게 잘 맞고 갈 수 있게 도움 주신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이니까 그 마음만 기억하자.
나중에 한약을 지으러 한의원에 방문했을 때 들었지만,
유산 후 회복하는 기간에는 몸에 어떤 조치도 하지 않고 그대로 쉬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한다.
예방 접종도 하지 않고 몸을 그대로 두어야 한다고 한다.
‘나는 자연인이다~’이런 상태를 말하는 것 같다.
하지만 시간이 없다.
성격도 급하고
소심하고 불안해서 뭐라도 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다.
한약도 먹고 간염 백신도 맞으며 아픈 기억은 지나고 나서 인생에 점 하나로 남게 되도록 하나씩 차분하게 해 나가기로 했다.
#한약 #한의약지원사업 #영양제 #간걱정 #B형간염백신
*데일 카네기. ‘자기관리론’. 장세연 옮김. 혜민라이프. 2014. p.27
책에 나온 문장 그대로 인용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