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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실버반지 Jun 09. 2023

치킨 그리고 주의사항

[음식] 분실 주의보

닭을 반으로 턱 가르면 양 옆으로 다리가 ㄱ 자로 꺾이고 위로는 날개가 향한다. 나비 모양 비슷한 좌우대칭이다.

닭 한 마리를 통째로 기름에 넣어 튀겨낸 고소한 통닭은 어릴 적 시장에서  사 오면 가끔 먹을 수 있었던 별미였다.

다리와 날개는 쫀쫀하고 미끌거리는 맛이 나고 사이 공간을 차지하는 때살은 하얗고 퍽퍽하다. 결을 따라 세로로 찢어 먹기도 하고 그대로 한 입 베어도 잘 잘라진다. 크게 베어물수록 오래 우물거려야 하는 가슴살은 목 넘김이 부드럽지 못하다. 다리 살과 다르게 콜라 없이 먹기 힘든 부위다.


치킨의 변천사를 보면 시대의 변화가 느껴진다.

아빠가 사 온 옛날 통닭은 태어나서 처음 먹어본 치킨이다.

통째로 들어가는 상자가 없으니 종이봉투에 넣어 배어 나오는 기름이 옷에 묻지 않게 검정 비닐봉지로 한 번 더 싼다.

걸어서 집에 와도 여전히 뜨거운 닭을 바삭한 껍질 한 조각 먼저 뜯어먹고 다리, 날개, 때살 순으로 떼어먹는다.

그 시절 통닭이라고는 튀김닭과 양념 통닭 두 가지였다.

즐겨 먹는 편은 아니었으니 언제쯤 양념이 새콤달콤한 고추장 소스에서 간장, 허니버터, 마늘, 청양고추, 짜장, 마라맛 등으로 다양화되었는지 모르겠다.

분명한 건 맛있는 간식을 검색할 때 치킨을 빼놓을 수 없다는 건 확실하다.


치킨에 대해서는 아는 게 그다지 많지 않은 내가 혼자 있을 때 유일하게 시켜 먹어보았던 메뉴가 뿌링클이다.

근심은 없고 불만만 많던 오로지 나 사는 거 하나만 걱정하면 되던 시절 무료하게 보내던 주말이었다.

뭐 먹을만한 거 없을까 하다 나도 치킨 한 번 시켜 먹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주문해본 일이 드무니 그간 치킨의 변천사도 알지 못했다.

그냥 전날밤 TV광고에서 본 게 생각났고 전화로 주문했다. 주말이다 보니 한참을 걸려서 배달이 왔고 2만 원을 결제했다.

오랜만에 시켜본 치킨은 시세에 대해서도 무감각해 실로 비싸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어쨌든 한 조각 집어서 입에 넣었는데 혀에 닿은 첫 감각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잘게 썬 파슬리와 섞어 뿌려진 노란색 가루는 시큼하기도 하고 달착지근하기도 했다.

구강 어딘가 닿자마자 스르륵 녹아내리며 맛을 뇌로 전달해 주는데 슬러쉬 아이스크림 녹는 느낌처럼 부드러웠다.

이전까지 한 번도 먹어보지 못한 신박한 맛을 치킨에서 느껴볼 줄이야.

양이 많아 한 번에 다 먹지 못하고 남은 걸 냉장고에 넣었다가 데워먹길 반복해 주말 내내 먹었던 기억이 난다. 데울 때마다 노란 가루는 뭉치고 눅눅해졌지만 한 마리를 다 해치울 때까지 맛은 변함이 없었다.


이후 자발적으로 치킨을 시켜 먹은 일은 없다가 얼마 전 남편의 권유로 치킨집을 가게 됐다.

이전에 순살치킨을 남편이 직접 골랐다 마트 냉동식품 코너에서 파는 너겟 같은 느낌을 받은 적이 있어 이번에는 나에게 메뉴 선택권을 넘겼다.

예전에 먹은 파슬리 섞인 노란 가루 뿌려진 걸로 시켰고 이번에도 대성공이었다.

숟가락을 달라고 해서 바구니 안쪽에 떨어진 가루까지 떠먹었다. 닭보다 노란 가루를 먹으려고 시켰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낮에는 뜨거운 태양이 맹위를 떨치다 밤이 되면 선선한 바람을 보내주는 6월 밤이다.

매장 문을 열고 나오면 커다란 호수 공원이 있고 물가가 보이는 방향으로 테이블이 대여섯 개 놓여있다. 이 계절에 너나 할 것 없이 차지하려고 하는 인기 좌석이다. 호숫가 테라스 자리에 나란히 앉아 남편과 함께 맥주 한 잔 곁들여 먹은 치킨은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추억이다.

술에는 일가견이 없지만 이 날 만큼은 500cc 잔에 담아내어 온 생맥주를 남기지 않고 다 마셨다.


잘 먹지 못하는 술을 마시고 어찌나 취했는지 남편의 부축을 받아 집까지 걸어왔다.

집에 와서도 그 느낌을 이어받아 캔맥주 하나를 더 마셨다.

주말 저녁 예능 프로그램 시청까지 마치고 나자 집에 온 지 4시간이 지났다.

잠에 들 시간이 되자 한껏 취기가 더 올라왔고 알람을 맞춰두고 잘 생각에 스마트폰을 찾았다.


어!? 어디 갔지?


가방 안에도 없고 항상 두던 화장대 위에도 없고 충전기에도 안 꽂혀 있다.

스마트폰이 없어졌다는 사실은 순식간에 고립감을 불러왔다. 깜깜한 공간에 홀로 남겨져 외부와 완전히 차단된 것만 같았다.

이제껏 머리보다 폰을 믿었다. 손바닥 안에 들어오는 작은 기기에 담아놓은 온갖 정보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의존도가 아주 높아 없으면 안 된다.

급히 남편 핸드폰으로 내 전화번호를 눌러보지만 신호만 가고 어디에서도 진동이 들리지 않는다. 통화 버튼을 누르고 또 눌렀다. 

제발 누군가 전화를 받아주세요. 애타는 마음으로 찾은게 무색하게도 ‘고객이 전화를 받지 않아…’라는 멘트를 여섯 번을 들었다.


치킨집으로 다시 가보자. 주말 저녁이니까 늦게까지 할 것이다. 그리하여 남편과 나는 밤 열두 시에 외출복장으로 갖춰 입고 길을 나섰다.

기분 좋게 올라온 취기도 인위적으로 눌러야 했다. 애써 정신을 차려가며 걷는 길에 행여나 떨어져 있지 않을까 길가를 반으로 갈라 오른쪽은 남편이 살피고 왼쪽은 내가 보면서 갔다. 폰을 잃어버린 다급한 마음은 다른 건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1km가량을 걸어 도착했고 인적이 뜸해진 시간이다 보니 알바생이 바닥을 쓸며 마감 업무를 하고 있었다.

반가운 마음에 손님이 놓고 간 핸드폰이 있냐고 물었고 있다는 말을 듣자마자 다시 전화번호를 눌렀다.

매장 카운터에 놓여있던 스마트폰 하나가 진동을 울리기 시작했다. 금세 내 거라는 걸 알아볼 수 있었다.

스마트폰 옆 매장 전화기를 붙잡고 있는 가게 사장은 누군가와 싸우고 있는지 큰소리를 내며 통화 중이었다. “아니 그건 저희 과실이라기보다…” 자세한 내용은 알 수 없지만 미루어 짐작하건대 꽤 오랫동안 전화를 끊지 못했을 걸로 보인다.

알바생들은 매장 이곳저곳을 청소하며 돌아다니고 있었고 사장은 마감 시간 다돼서 걸려 온 전화에 시달리고 있는 그림이다.

아 그래서 전화를 걸어도 받지 못했구나.


주인이 맞는지 알바생이 한 번 더 확인한 후 핸드폰은 다시 내 손으로 들어왔다.

폰을 찾은 안도감으로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졸린 눈으로 길바닥을 훑으며 오던 길과 사뭇 달랐다.

6월 밤 시원한 공기가 재차 몸속으로 들어왔고 길가에 심어놓은 꽃들이 눈에 들어왔다.

사람도 자동차도 이동이 뜸해진 시간이라 탁한 매연도 다소 누그러진 듯하다.

저만치 사라져 간 취기를 다시 끌어올려 아까처럼 알딸딸한 기분을 느끼고 싶다. 같은 길이지만 인파로 북적거리는 시간과 한산한 시간이 이렇게 다르구나.


노란 가루 치킨으로 시작된 주말 저녁은 스마트폰을 찾으러 다니며 마무리됐다.

시고 단 맛을 여전히 잊지 못하겠으나 자주 먹을는지는 미지수다. 맛을 떠나서 치킨을 먹을 때는 주의할 게 생겼기 때문이다.

바삭하고 뜨겁고 기름진 닭 위에 뿌려진 소스 맛을 느끼며 한 점 베어 물면 저절로 맥주를 부른다.

어떤 이에게는 소주 몇 병을 마셔도 까딱없지만 누군가는 맥주 한 모금을 마셔도 전두엽 마비를 부른다.

 과음의 기준은 없는 것이다. 자기한테 맞게 먹어야 하는 거지. 

사람들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 공원 호숫가에 앉아 시원한 바람과 나무와 풀, 꽃과 함께 먹고 마시는 치킨에 맥주는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 특히 소지품 주의. 치킨집을 나설 때는 스마트폰이 손에 있는지 꼭 챙겨야 한다. 기분 좋아 그냥 자리를 떠나버리면 잃어버렸을 때 가장 치명타를 일으키는 게 스마트폰이다.


항상 주의.

치킨에 맥주

그리고 스마트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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