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과 다리의 아우성
여행블로거라면 어디 가서 뭘 보고 주요 명소는 어디에 있고 가는 방법은 어떠하더라.라고 자세히 쓸 텐데 난임을 겪고 있는 여자가 혼자 여행 가는 관점에서 쓰는 글이다 보니 오사카 관광지 이야기는 많이 나오지 않는다. 오사카 성, 우메다, 츠덴카쿠 같은 관광객 많은 곳 방문 후기는 블로그 검색만 해도 잘 나와있고 이번 내 여행 목적 또한 관광지를 많이 보고 오는 것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물론 여행지 보고 오는 활동은 당연히 하지만 그보다 나를 찾고 자신감을 회복하여 기분전환을 도모하는데 의의를 둔다는 초등시절 학급회의 주제처럼 거창한 목표를 세웠다.
그래서 말인데 어쩌면 좌충우돌하는 이야기로 구성될 수밖에 없다. 간간이 여행지 방문 이야기도 나오지만 너무나 좋았다, 훌륭했다는 후기보다 내 내면을 들여다보고 싶었다. 덤으로 J 콘텐츠에 대한 관심도 생겼는데 일본에 다녀온 결과물 중 미처 기대하지 못한 효과라고 생각하고 있다. 긍정적이라고 본다.
일곱 해 만에 나간 타국 관광은 조급한 성격을 한층 더 조급하게 만들었다. 오전 10시밖에 안 됐는데 못 가본 곳을 더 많이 가야 한다는 생각에 대충대충 둘러보고 다음 장소로 향하곤 했다. 쿠로몬시장에서 9시 30분이면 먹을 거 먹고 구석구석 돌아보고 이후 순서인 파크스 백화점으로 향해도 될 것을 그러하지 못한 건 내 성격 탓이다. 음식을 먹지 못했던 건 실은 아침에 탈 난 상태로 라멘을 먹었기 때문에 배도 더부룩하고 입맛도 없었기 때문이다. 조급해서 빨리 이동하기도 했지만 위장과 대장 상태가 음식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기도 했다.
이 날 오전 했던 행위는 도구야스지 상점에서 그릇을 사고, 쿠로몬 시장 휙휙 둘러보고, 파크스백화점 하브스 매장에서 케이크 한 조각을 사서 신사이바시로 향하는 일이었다. 여기까지 하고 열 두시 정도 되었는데 벌써 다리가 엄청 아팠다. 그럼 그렇지 쉬엄쉬엄 다녀도 힘들 코스를 한 번 앉지도 않고 가려니 발병이 나지요.
정해놓은 코스를 다 밟으려면 힘을 내야 했다. 발바닥에서 종아리까지 전달되는 묵직함을 이끌고 신사이바시 파르코와 다이마루백화점을 가야 한다. 파르코 빌딩과 다이마루 백화점은 연결돼있다. 한 곳만 찾으면 일석이조다. 진짜 걷기 힘든데 또 걸었다. 후후 인간 극장 나가고 싶은 투철한 의지다. 구글맵 라이브 덕분에 덜 헤매며 찾은 다이마루백화점 6층 지브리 샵에서 마음껏 사진을 찍고 나처럼 혼자 온 다른 여행객들 사진을 찍어주며 시간을 보냈다. 필리핀에서 왔다는 50대 정도 되어 보이는 여자가 사진 찍어 달라며 따라오지만 않았으면 좀 더 빨리 나왔을 것이다. 자꾸 아이폰 내주면서 찍어달라 하지 말란 말이다. 나는 극도의 I성향이라 과한 친근함은 불편하단 말야. 하지만 거절하지 못하는 것도 내 성격이라 졸졸 따라오는 여인의 사진을 백화점 6층을 떠날 때까지 찍어주고야 말았다.
아침부터 사 온 그릇들과 케이크, 가이드북, 물 등으로 어깨는 점점 아파왔다. 2000년대 초반도 아니고 가이드북은 왜 들고 나왔을까. 여행 오랜만에 나온 사람 티가 난다. 구글맵이 있어 가이드북 따위는 펴볼 일도 없다는 걸 이제 알았으니 말이다. 결단을 내려야 한다. 일본에서 파는 작은 소품들이 만만한 가격이 아니란 걸 눈이 휘둥그레지도록 봤으니 적절히 스킵하자. 구매는 부담스러울 것으로 예측되는 토큐핸즈, 우리나라에도 있는 무인양품은 과감히 지나쳤다. 발과 다리가 살려달라고 애원하고 있으니 이런 결정이 무리는 아닐 것이다.
가격이 만만한 것을 찾자는 신조로 오사카에 왔다. 아기자기한 소품은 사되 예상한 가격에서 벗어나면 못 사는 것이다. 막상 가져가서 보면 안 이뻐 보일 수도 있다라고 최면을 걸며 사고 싶어 미치겠는 아이템들을 휙휙 지나쳐 주었다. 맘이 편한 것만은 아니다. 아쉽다 아쉽다 못 사서 아쉽다 하며 지나갔으니까. 자그마한 인테리어 소품 및 캐릭터 상품 등이 확실히 우리나라에서 본 것과는 다른 정교하고 매끈함이 있었다.
예산이 따라 주어야 한다는 강한 의지로 마음은 억제하되 발과 다리의 편의는 봐준 결과 마지막 코스를 남겨놓은 시간이 오후 2시였다. 와 이르다. 한 군데만 더 가면 되는데 이제 두 시 밖에 안 됐다니.. 그런데…
아무리 구글맵으로 찾아도 안 나온다. 라이브를 켜고 한참을 따라왔는데 도착했다고 나오는 상점은 보이지 않는다. 찾고 있는 상점은 3천 냥 샵이라고도 알려진 3 COINS다. 자유 일정 마지막 코스로 꼭 보고 오자고 한 곳이라 찾아야 하는 마음이 컸다. 오후 2시 햇빛은 뜨겁고 땀은 흘러 머플러도 풀었더니 짐이 더 많아졌다. 어깨도 아프고 죽겠다. 지하도로 내려가는 입구가 사방에 있는 커다란 사거리에서 50분을 헤맨 것 같다.
끝내 보이지 않아 아무 편의점에 들어가 샌드위치와 푸딩을 사서 숙소로 향하기로 했다. 너무 힘들어서 찾을 엄두가 안 났다. 그릇, 케이크, 가이드북, 머플러에 샌드위치와 푸딩 추가요. 500미리 물도 한 통 들어 있습니다. 내 어깨 살려. 어쩔 수 없이 숙소로 가기로 했다. 메트로를 타려면 어디서 타야 하지? 구글 맵이 알려준 곳은 여태껏 끼고 빙빙 돌고 있던 지하도 내려가는 길이었다. 이게 신사이바시역인가? 내려가보니 진짜 메트로 역이다. 신기하다 밖에서 볼 때는 신사이바시라고 안 쓰여 있는걸.
아침에 샀던 것처럼 똑같이 메트로 승차권을 사서 개찰구에 넣고 승강장으로 내려왔다. 안도의 한숨과 함께 순간 머릿속에 지나가는 무언가. 아! 3 COINS가 지하상가에 있나? 구글맵이 연신 가리켰던 아래를 향하는 화살표를 보고 메트로를 타러 내려왔던 것처럼, 도착하고서도 보이지 않던 목적지도 지하에 있었던 건가? 그럼 바로 발밑에 있었던 건데.
하. 열차는 승강장으로 들어오고 있고 시간은 오후 2시 50분 밖에 되지 않았다. 충분이 구경할 수 있는 시간인데 다시 갈 것인가 말 것인가. 따위의 고민은 2초 정도 했다. 이대로 개찰구 밖으로 나가면 2400원 돈을 날리는 건데. 갈까 말까. 거센 속도로 들어오고 있는 지하철 속도만큼이나 빠르게 결정했다. 숙소로 가자. 어깨 아파 죽겠다는 현실과 240엔이라는 지하철 요금이 남은 투어에 대한 아쉬움을 넘어섰다. 호텔이 있는 신오사카역도 크다고 하니까 이대로 가서 그곳을 더 둘러보자라는 생각을 하며 지하철에 올라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