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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실버반지 Dec 20. 2023

크리스마스 주간에 내리는 눈

주말이면 크리스마스다. 젊은 엄마가 아이에게 갖고 싶던 선물을 사주거나 맛있는 걸 사주기 전 착하게 지내면 꼭 갖게 해 주겠노라 약속하는 단순하고 소박한 멘트인 '세 밤 자고' 나면 바로 그 크리스마스 전전 날이다. 2023년의 크리스마스는 토요일부터 시작된다. 토요일부터 그다음 주 월요일까지가 23일에서 25일이므로 주 5일 근무 후 주말을 즐기는 패턴 상 올해의 크리스마스는 딱 3일이다. 23일은 실로 아무 날도 아니지만 분위기에 휩쓸려 크리스마스 이브의 전날이 토요일이므로 특별한 날로 간주되어지는 것이고, 24일은 그야말로 환희에 찬 크리스마스 이브이며, 25일은 이제 끝났다는 무덤덤한 아쉬움을 남겨야 하는 크리스마스 당일인 것이다. 이로써 올해는 사흘 밤만 자고 일어나면 크리스마스로 봐도 무방하다는 무언의 결의 같은 것에 맺어져 있다.


별 일 아닌 얘기를 왜 이렇게 거창하게 썼냐면, 그 아무것도 아닌 23일 일주일 전부터 내내 눈이 내리고 있다. 내내라는 것이 스물네 시간 쉬지 않고 라는 의미를 내포한다면 다소 간에 과장된 표현일 수 있다 치더라도, 어쨌든 내리다 그치다를 반복하며 수요일인 오늘까지도 눈이 내린다.


간밤에는 겨울 장마가 질 뻔한 게 차디 찬 저기압 영향을 받아 눈으로 바뀌었는지 폭설이 내린 것처럼 통베란다 창으로 보이는 학교 운동장 위가 하얀 백설기처럼 바뀌어 있다. 그 위로 출근하는 교직원들이 걸어 다니고 있는 채로 눈이 또 내린다.


이만하면 들뜨고 설렐만하지 않은가. 누군가는 눈 치우기 전 한숨이 먼저 나올 것이고 누군가는 눈오리와 눈사람을 만들 생각을 할 것이며 누군가는 바쁜 비즈니스 업무를 뛰어다니려면 교통이 원활해야 하는데 눈 와서 글렀다며 하소연할 것이다.


나는 어떤가 하면 올해도 아이가 없는 연말을 보낸다는 자괴감은 들지언정 이왕지사 이렇게 된 거 마냥 즐겨보자라는 생각이 든다. 이번달에 다녀온 성탄 장식 핫플레이스만 해도 현대백화점 삼성점, 롯데백화점 잠실점, 반포고속터미널 파미에 스테이션, 여의도 더현대까지 네 군데에 달한다.


비스듬하게 날아오는 찬 기운을 잔뜩 머금은 바람이 귀를 빨갛게 냉각시켜도 손끝이 얼얼할 정도로 동장군이 손등을 휘감아도 밖으로 나갔다. 혼자서 즐길 줄 알아야 곁에 누가 있어도 즐길 줄 안다는 일념으로 외출을 강행했기 때문에 10년 전 경제침체 시절 트리를 내리고 캐럴을 끄던 울적한 크리스마스와 사뭇 달라진 외부 세계를 체감할 수 있었다.


바닥에 깔리면 거무직직하게 변할지 몰라도 일단 내리는 순간에는 새끼 송이버섯처럼 아름다운 눈송이가 하늘에서 내려오고 있는 이 시간이 감사하다. 어디서 내려오고 있는지 시작은 보이지 않아도 종착지는 내 손에 앉고 내 머리에 자리 잡아보는 하얀 눈송이가 있어, 귓가를 촉촉하게 적셔주는 성탄 음악이 있어, 곳곳에 내 눈을 호강시키는 휘황찬란한 크리스마스트리가 있어 감사하다. 몇 해간 세우지 못한 트리를 한꺼번에 탑 쌓듯이 올리는지 청년 시절 보던 트리보다 훨씬 키가 커진 범접하기 힘든 규모의 트리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남아 있는 성탄 전야들, 다가올 크리스마스이브.

조용한 축제를 홀로 즐기는 것처럼 희망찬 마음으로 보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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