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저한 생활 습관 관리로 난자질을 높여야 하는 건 난임 환자의 숙명이다. 글쎄… 난자질이 좋아진다는 견해는 의료인들 간에도 분분하지만 고난을 뚫고 임신에 성공한 난임인들이 쓴 절절한 후기를 보면 식단, 영양제, 수면, 운동에 대한 언급은 빠지지 않는다. 남녀노소 삶의 낙을 꼽아보라고 하면 미식에 대한 충족이 상위에 있다는 것에 의심할 여지가 없는 세상을 살고 있지만, 난임인으로서 생활은 넘치고 넘치는 미각을 자극하는 것들을 철저히 제한하고 금지해야 하는 요인이 많다. 한 인터뷰에서 책상 위에 놓인 조각 케이크 한 점을 쳐다만 보고 끝까지 먹지 않는 김연아 선수를 찍은 숏 영상이 화제가 된 적 있는데, 난임인이 지키는 식단 관리도 이에 못지 않을 것이다. 난자질이라는 것 태생 전부터 가지고 있던 난포 전구물질부터 시작된 거라 나이가 들면 노화하는 것이 자연스럽다고는 하지만, 어렵게 시험관 하면서 먹는 거라도 잘 먹고 선별해서 먹어야 도움이 될 것이다라는 모성애 짙은 바람으로 식단 관리를 한다.
서울의 봄이 천만 관객을 넘겼다. 포털 사이트 조회해 보니 천삼백만을 다가가고 있던데 대단한 기염을 토한 작품이다. 여기에 나도 티켓 두 장을 일조했다. 작년에 서울의 봄 포함해서 두 번 정도 극장에 갔는데 영화관에 가면 상영 전에 자리에 앉아 10분 정도 광고를 본다. 멍하니 앉아 정면에서 화려하게 번쩍거리는 대형 스크린을 쳐다보고 있으면 으레 나오는 빨간 상자에 들어있는 동그란 크래커 광고. 빨간 배경에 빨간 옷을 입은 사람이 앉아서 먹고, 서서 먹고, 엎드려서 먹고 한 입 베어물 때마다 사각 거리며 부서지는 과자를 보고 있으면 얼마나 먹고 싶은지. 고등학교 때 매점에서도 팔았던 과자인데 그 시절 쉬는 시간 종 치면 다음 수업 시작하기 전 짧은 시간 안에 사 갖고 교실로 돌아와야 하는 순간 스피드와 치고 나가는 추진력을 발휘해서 사 먹던 바로 그 과자다. 특히나 야자 시간에 책상 서랍에 넣어두고 학주가 복도에서 조는 놈 없나 몽둥이 들고 왔다 갔다 하는 모습이 사라지면 얼른 꺼내 바스락 거리며 먹던 추억의 스낵이다.
극장 가서 광고만 보면 먹고 싶어 죽겠는데 하나 사 와서 우물거리고 싶은데 밀가루는 난자질에 하등 도움 될 것이 없다는 말에 참는 중이다. 임신 출산에서 해방되는 날, 내 저 녀석을 먹고 말지. 엄지와 검지 손가락으로 잡아 반절 정도 앞니로 바삭 부숴먹는 그것을 꼭 해볼 것이다. 영화관에서 파는 스낵류들이 난자질에 그다지 도움 될만한 것은 없어 빈 손으로 조용히 영화 관람만 하고 나올 때면 옆에 누가 있건 그 과자 맛있겠더라 라는 말을 하곤 한다. (과자 이름은 알지만 과자 홍보글은 아니기에 명칭을 쓸 수 없는 것 죄송~)
도심이 번화하고 수많은 부도심이 발달하여 동네 지하철 역 근처만 나가도 온갖 종류의 간식이 넘쳐난다. 코앞에 있는 가게들만 해도 요플레며 아이스크림이며 샌드위치, 찹쌀 꽈배기, 겨울이면 뜨끈한 국물 한 컵 떠 마시는 꼬치 오뎅, 김 모락모락 하는 떡볶이, 기름에 지글지글 구운 호떡. 참을 수 없는 먹는 것의 땡김이 발길을 붙잡는다.
찬란한 과일 색상 그대로 반짝이는 진액을 입힌 탕후루는 어떠한가. 한 꼬치 들고 딸기든 포도든 방울토마토든 하나 쏙 빼먹으면 무슨 맛일까 아이처럼 궁금해진다. 탕후루가 유행하기 시작하던 무렵 이미 시험관을 하고 있는 중이었기에 한 번도 먹어본 적 없다.
글라인더에 그 자리에서 갈아주는 에티오피아산 원두커피는 어떤가. 넘쳐나는 원두 종류와 다채로운 커피 상품, 진화하고 발전한 테익아웃 커피 메뉴를 보면 깊고 진한 헤이즐넛 라떼 한 잔에 크림 베이글 추가해서 양손에 들고 당당한 걸음으로 뉴요커처럼 테헤란로를 걷고 싶다.
초콜릿 듬뿍 입혀 알록달록하고 자잘한 설탕 토핑 파르륵 뿌린 도넛 종이 봉지 한가득 사 갖고 와서 먹고 싶다. 머릿결이 찰랑찰랑하고 굽 있는 구두를 즐겨 신던 처녀 적에 참 많이도 먹었던 간식인데.
와플은 또 얼마나 맛있어. 요즘이야 프렌차이즈 와플 전문집도 생겼지만 옛날에는 길가다 가판대에 ‘와플 1,000원’이라고 써있는 곳에서 천 원짜리 지폐 한 장 내밀면 그 자리에서 반죽을 구워줬다. 기계에서 노릇하게 구워나온 도우를 꺼내 와플 아저씨가 ‘크림 뭐 발라줘?’하고 물으면 ‘딸기랑 플레인이요.’라고 답한다. 이어 ‘플레인보다 딸기 더 발라주세요. 꿀(설탕시럽)은 넣지 마시고요.’라고 덧붙인다.(시럽까지 넣으면 너무 달다.) 듬뿍 크림 덮인 쪽으로 반 접어 방금 구워 겉빠속촉한 와플 한 입 와삭 물면 달디단 크림 범벅 완성품 와플이 입안 가득 적신다. 구매와 동시에 구워주는 게 아니라 정량이 정해져 있는 기성품 와플은 미리 도우를 만들어 놓았다가 팔 때마다 데워준다. 크림 양을 곱배기로 요청하는 정겨움도 경험할 수 없다. 때문에 식었다 익혔다를 몇 번 반복하면 속까지 딱딱해져 잘못 베어물면 윗니 바로 뒤 혀끝이 닿는 물고기 비늘같이 뽈록뽈록한 입천장 부위가 헐어 2,3일 쓰라린 고생을 한다. 고급 레스토랑이나 카페에서 시켜먹는 와플도 마찬가지다. 아이스크림이며 초콜릿이며 토핑이며 잔뜩 뿌려지고 올려져 있어도 이런저런 재료들로 눅눅하게 탄력을 잃은 와플 맛은 기계에서 갓 꺼낸 것만 못하다. 와플은 역시 길에서 구워주는 게 제 맛이다.
남대문 시장에 가니 호떡 파는 가게가 심심치 않게 보인다. 개당 1500원. 얼마든지 주머니에서 꺼낼 수 있는 부담 없는 금액이다. 호떡 아저씨가 동그란 스테인리스 판 손잡이를 잡고 기름칠한 철판 위에서 반죽 누르는 모습을 보면 지글지글 방금 구운 뜨거운 호떡 하나 냉큼 사 먹고 싶다. 지금도 호떡 사면 두꺼운 도화지 손에 잡힐만한 크기로 잘라 반 접어 그 사이에 호떡 끼워주려나. 기름 안 묻고 덜 뜨겁게 두꺼운 도화지로 잡은 호떡 하나. 일곱 살 어린 시절처럼 입맛이 다셔진다.
편의점에 가면 그야말로 간식 세상이다. 냉장고에 진열된 푸바오 엉덩이 같은 삼각김밥. 세 손가락 합쳐놓은 크기 만한 사과 푸딩. 시각을 자극하는 자주색 노란색 팩에 빨대 꽂아 먹는 달콤한 과일 주스. 한 개만 사 먹고 싶다~
악마의 유혹 같은 강한 이끌림을 물리치며 간식 가게 앞을 지나칠 때면 냉바람 몰아치는 눈폭풍 속을 옷깃 단단히 여미고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나가는 의지 투철한 신사 같다. 구두 신은 발이 눈 속에 파묻혀도 바람이 옷을 벗겨버릴 기세로 휘감아도 날아오는 눈망울을 피하기 위해 고개는 숙일지언정 멈추지 않고 한 발작씩 걸음을 뗀다.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이지만 달달한 탕후루 냄새가 코를 자극하는 세상이지만 절대 멈추지 않는다. 어쩔 수 없이 눈길이 가는 건 먹고 싶어서가 아니다. 화려한 색채와 예쁜 모양새 때문이다. 절대로 먹고 싶어서가 아니라고 내세에 주문을 걸고 또 건다.
당분은 난자 퀄리티에 적이라고 한다. 밀가루는 앞서 말한 것처럼 도움 될 게 없다고 한다. 자극적인 조미료는 난자질뿐만 아니라 성장기 아동을 비롯하여 성인들에게도 좋지 않다는 건 귀가 따갑도록 질리게 들었다. 불고기에 들어가는 소량의 설탕 또는 올리고당, 계란찜 맛을 더하기 위해 추가하는 합성 조미료, 맛간장에 필수로 들어가는 설탕, 이런저런 과일에 포함된 과당들, 게다가 밀가루가 주 재료인 칼국수, 소면으로 만든 비빔국수, 새콤달콤한 쫄면, 종류가 방대해져 매대 한 코너를 완전히 장악해 버린 수많은 인스턴트 라면들, 식사 후 하나씩 먹을만한 카스테라를 비롯한 각종 빵류. 이런 걸 다 제외하면 대체 뭘 먹는담. 김치하고 잡곡밥. 그리고 고기류. 고기도 구운 것 말고 수육이나 편육. 가볍게 무친 나물 반찬. 이런 것들.
이걸 다 지키면 새나라의 어린이 요건 하나 더 추가요. 전부 지킨다고 하면 걸어서 유럽에 간다는 말 만큼이나 거짓이고.
고백하건대 일정 부분 지키는 것도 있고 못 지키는 것도 있다.
다 내 난자질과 태어날 아이의 건강을 위해서 하는 것임을 재차 다짐하는 바입니다. ㅠㅠ
건강한 아이 하나 낳고 임신과 출산에서 해방되는 날, 아이는 만출해서 3개월까지는 자궁 안에 있는 상태와 같다고 하니 그때까지 잘 키워 사람 새끼 만들어놓고
꼬까옷 입혀 100일 사진 찍고 집에 귀가하는 날, 저녁때 냉장고에서 시원한 맥주 한 캔 딱 따서 쫙 들이키겠다. 맥주가 식도를 타고 넘어가는 상상만 해도 흐뭇해진다. 아! 빨간 상자 크래커도 하나 사 와야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