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실버반지 Feb 13. 2024

아무래도 까다로워진 나

난임인에게 달갑지 않은 명절 연휴가 지나갔다. 애가 안 생기느냐는 반쯤 위로 섞인 물음에 초연히 답하는 것을 넘어서 이마저도 물어보지 않는 현실에 자격지심을 느끼는 수준이 되었다면 농익은 난임인이라는 자격증이라도 발급해주고 싶다.


따라서 이번 연휴에는 친지들을 만나지 않았다. 이런저런 핑계를 대고 은둔형 외톨이로 지샜으나 홀연한 연휴 한가운데쯤 도달했을 때 음식물 떨어질 것을 걱정하여 한가득 사놓은 소고기 맛에 흠뻑 취해있다는 걸 자각하게 되자 자연스레 찾아온 우울감은 선물인척 받아들였다.


문 앞까지 배송해 준다는 전 세계 최고 수준의 빠른 택배로 받은 라디에이터는 연휴 내내 켜보지도 못하고 봄을 맞이하게 생겼다. 상품에 다소 간의 이상이 있는 것이 발견되어 긴긴 연휴를 지나 업무를 개시할 때까지 덩달아 상품 사용 개시도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를 해결하고자 연휴 직후 정상 업무가 시작되자마자 판매처에 전화를 걸었고 따따부따 시작된 클레임은 두 시간째 별 해결을 못했다.


겨우 판매상과 환불이 아닌 교환으로 처리하기로 한 후 한숨 돌리긴 했지만 대체 무엇 때문에, 누구를 위해, 무슨 목적으로 지난한 시간을 기다림과 사투를 벌여야 했단 말인가? 영상 10도를 웃도는 기온을 회복해갈 때 난방기를 켜기 위해서? 돌아오는 겨울에 쓰면 되지요 라며 초긍정 피드백을 받아가며 구매 당시에는 박수갈채를 받았다지만, 이것이 외톨이 난임인 신세로 차가운 밤을 지새울 때는 곁을 지켜주지도 못한 난방기를 위해서였다는 걸 손뼉 친 사람들은 알지 못한다.


판매처와 싸움질이나 하는 비정상적인 인간으로 보이고 싶진 않았지만 다소 간의 언쟁은 불가피했다.

뿐만 아니라 일 년 반이 넘어가고 있는 길고 긴 난임 생활에 대한 지침과 불확실함 그리고 미래에 대한 무계획에 대해서 남편에게 일일이 털어놓으려 했다. 털어놓으려던 것이 자칫 삐침 섞인 불협화음이 되긴 했으나 이대로 쭉 가자 아이는 생길 것이다라는 요지부동한 남편 말에 소득 없는 다툼 비슷한 것이 되어 버렸다.


경제적 심리적으로 의존하고 있으니까 나는 오빠(남편)를 배신하지 않을 거 같지?라는 반 협박조로 던진 한 마디에 '아니 너는 그럴 수 있을 거 같아'라고 응수하는 남편과도 그다지 생산적이지 않은 마무리로 일단락 지어졌다.


떡국 먹으러 오라는 부모님의 메시지는 이틀이 지나도록 1자가 지워지지 않도록 카톡 창 밖에서만 빼꼼 쳐다보는 수준으로 방치해 두었다. 이게 다 무슨 일인가? 40 중반이 되도록 아이를 갖지 못했다는 깊어진 책망은 타인으로부터 나를 분리시키는 외톨이를 자처한 것이다.


외부와 연계가 없으니 더욱 까탈스러워졌고 날이 선 말 한마디는 상대방을 더 멀어지게 한다. 상대방의 가슴에 닿지 못하고 표면에 튕겨져서 되돌아온 말은 다시금 나를 외톨이라는 포장지로 둘러싼다. 사람의 형상으로서 별로 좋지 않은 모양새다. 


사람은 자고로 속내가 부드럽고 표면이 매끄러워 보여야 좋은 모습이라고 직장에서는 필히 이런 모양을 만들어 내보여야 한다고 배우지 않았는가. 한데 직장을 다니지 않으니 막무가내로 망가져가고 있는 내 모양을 어떻게 차분한 어조와 다정한 목소리 적재적소에서 강약 조절을 해야 하는지 어려워하고 있는 중이다.


출산율을 높이려면 여자들 취업 나이를 유연하게(flexible) 만들어야  한다는 남편 의견에 대폭 동의했다. 임신 출산이 가장 용이한 나이인 20대 중반에 취업해서 자리를 잡아야 되는 사회니 출산이 뒤로 밀릴 수밖에. 아이는 어릴 엄마가 키워야 한다는 우리 둘의 지론이다. 학창 시절부터 육아, 보육, 건강한 출산에 대한 공교육을 받고, 대학 진학 후부터 임신을 준비해서 아이를 낳고 나서 어느 정도 키우다가 사회에 진출할 있게 만들어야 출산율이 높아지지 않겠냐며 아파트 집안 한 켠에서 열변을 토해가며 성토대회를 했다. 세상을 향해서가 아니라 남편과 단둘이서 말이다. 아무도 듣지 못하는 진지한 과제 해결 방안을 난임을 겪고 있는 부부가 마주 보고 앉아 서로의 말에 깊게 공감해 주었다. 너무 깊이 다가간 탓에 몸이 두 개인 한 사람인 줄 알았는데 그전에 미래니 무계획이니 운운하며 까탈스럽게 부딪혔던 건 과거가 된 듯싶었다.


왜 임신을 제 때 해야 하냐면 국가를 위해서가 아니라 개인 정신 건강을 위해서라는 것에 대해 의심할 여지가 없다. 저절로 쉽게 몸이 알아서 아이를 품을 나이에 적절히 건강한 임신을 하면 되는 걸, 이것이 잘 안 되는 나이에 고군분투하면 무척 고난할 뿐만 아니라 제 나이 때 딱 딱 하지 못하고 지나간 그 시기에 계속 머무르고 있어야 한다. 몸은 40대요 생활상은 20대인 불균형을 초래한다. 명절 때 '어유 우리 손주~' 해야 할 나이에 '아이를 갖고 싶어요~'라고 말해야 하는 신체 나이와 현실 생활의 격차 말이다.


그나저나 시간이 지나면 해결될 일에도 불쑥 흥분하는 나는 어떻게 다스려야 하는지 수없이 생각해도 결론이 잘 나지 않는다. 비슷한 난임인들끼리 함께하는 시간도 만들어봤으나 나처럼 민감하고 예민하고 깊은 한숨에 얼룩진 여인들이 있다 보니 함께 있어도 외로움을 느낄 터였다. 뭔가 사회적 교류를 해야 다듬어지는데 일손을 놓고 있으니 이마저도 쉽지 않다. 종일 읽고 싶은 책을 읽고 쓰고 싶은 글을 쓰며 임신에만 전념하는 이 과정을 즐기며 보낼 순 없을까. 나는 뭐 때문에 이렇게 답답함을 느낄까. 쉽게 답을 내기가 어렵다.

매거진의 이전글 난임환자의 식생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