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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실버반지 Mar 06. 2024

두통

머리가 한쪽 면씩 조여드는 통증이 삼일 째다.

뒤통수를 네 개 영역으로 나누어 삼사분면 정도 해당하는 지점부터 두통이 시작된다. 목덜미 바로 위쪽 그러나 정가운데 움푹 들어간 곳이 아니라 좌우측 툭 튀어나온 뼈 부분부터 아파오니 무척 유별난 고통이다. 거기부터 시작해 목덜미로 번지다가 점점 관자놀이까지 타고 올라온다. 대략 오후 세시쯤부터 시작되다 밤이 되면 머리 옆면 전체가 단속적으로 조였다 풀었다를 반복하는데 통증의 최정점 시간인 밤 아홉 시 무렵에는 몸을 가눌 수가 없다. 머리가 조여올 때면 메슥거리는 감각이 목에서 꿈틀거려 뭘 먹지도 못한다. 앉았다 일어날 때면 관자놀이가 쑥 들어갔다 나오는 듯한 극심한 통증이 솟구치듯 앞이마까지 번지면 전두엽까지 얼얼하다. 머리 전체가 한 번 화끈 조였다 풀리는 감각이 눈 깜빡할 새 강타하고 나야 온전히 일어나서 걸음을 걸을 수 있다. 한 손으로 벽 같은 걸 짚은 채로 반대 손을 머리에 갖다 댄다. 두통약 광고 한 장면처럼.


이런 기이한 통증이 삼일쯤 계속 됐고, 하루는 오른쪽 다음 날은 왼쪽 그다음 날은 다시 오른쪽 번갈아 가며 아팠다. 목덜미가 아파서 손으로 목을 막 주무르다가 가당치도 않은 민간요법이라는 생각이 들 때쯤 관자놀이를 딱따구리가 찍어대는 통증이 시작된다. 조였다가 풀었다가 유리에 압착고무를 붙였다 떼었다 하는 것처럼 머리 옆면이 욱신 거린다.


날짜를 세어보니 성장호르몬을 맞은 지 6일 째다. 이번에 저자극요법을 했기 때문에 성장호르몬만 맞은 날, 과배란 주사만 맞은 날, 과배란 주사와 성장호르몬을 같이 맞은 날을 비교해 볼 수 있었다. 역시 어떤 약을 썼을 때 내약성이 좋은지 어떤지는 내 몸에 투약해 보면 안다. 참 서글프게 느껴지는 난임인 생활의 한 대목이다. 머리 한 쪽면씩 조여대는 통증이 심해서 약들 인서트지를 읽어보니 성장호르몬과 과배란 주사 둘 다 부작용에  두통이 쓰여 있었다. 성장호르몬은 건강한 성인에게 과량 투여했을 때 두통이 나타날 수 있다고 써있고, 과배란 주사는 열 명중 한 명 이상 꼴로 나타날 정도로 두통이 흔한 부작용이라고 한다.


두통이 부작용인 약을 한꺼번에 써서 아픈가 했더니 꼭 그런 건 아니었다. 과배란 주사만 맞은 날은 깨끗하게 두통이 없었다. 성장호르몬만 맞거나 성장호르몬과 과배란 주사를 같이 맞은 날만 머리가 아팠던 걸 보니, 머리를 쪼아대는 통증을 유발한 건 성장호르몬이었나 보다라고 나름 추측했다. 난자질 좋아지게 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해서 맞을 수 있는 날까지 최대한 맞았다. 한데 앞으로도 이렇게 딱따구리를 옆통수 옆에 놓고 공생하는 관계가 생긴다면 성장호르몬을 맞아야 할지 고민해 볼 일이라고 기억 회로에 저장시켜 놓았다. 다음 차수에 시험관 할 때는 주치의에게 이 이야기를 꼭 상의해 봐야 하기 때문에 기억하고 있어야 한다.


얼마나 두통으로 고생을 했는지 혀가 아려서 거울을 보고 혓바닥을 내밀어보니 오돌토돌한 혓바늘이 세를 과시하고 있었다. 갑옷 입고 창을 들고 전쟁터에 출격할 한 무리 군사들처럼 꼿꼿한 자세로 힘 있게 말이다. 맨질맨질한 부분은 혀에서 많이 찾아볼 수 없었고 혓바늘이 차지한 영역이 대부분일 정도로 무더기로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사라져야 하지만 일단은 내 몸의 일부니 미워할 수는 없고 살살 달래며 가라앉기를 기다렸다.


다행히도 과배란 주사 단독 투여 하는 시점부터 두통도 사라졌고 덩달아 혓바늘도 사라졌다. 토마토 먹을 때마다 즙이 닿으면 꺼끌 거려 쓰라린 고통을 참아가며 삼키곤 했는데 알아서 없어져 주었으니 고마운 마음도 든다.


성장호르몬은 지난번과 지지난번에도 썼었는데 두통은 이번에만 생겼다. 이번 차수가 유달리 부작용을 심하게 겪었던 터라 떨어진 기력을 보충하기 위해 또 난포가 급격히 자라는 걸 방지하기 위해 잠을 많이 잤다. 돌아다닐 기운이 없기도 하고 너무 많이 걸으면 난포가 운동에 힘입어 쑥 자라 버릴까 봐 가만히 있는 정적인 상태를 유지하려 했다. 이런 과정을 거쳐 다시 한번 난자 채취를 앞두고 있다. 간절한 마음으로 건강한 난자가 나오길 바라며 이 모든 어려움을 감수하고 호르몬 약을 매일 주사한다. 경구 투여로만 과배란 하는 약제는 없어서 시험관 시술에 필요한 거의 모든 약은 주사기로 피하 지방층에 찔러 넣어줘야 한다.


아무런 병변이 없는 건강한 사람에게 아무 이유 없이 주사 바늘을 자기 손으로 꽂으라고 하면 당연히 할리가 없다. 웰빙 목적으로 맞는 주사도 어쩌다 한 번이지 누가 열흘 넘게 하고 싶겠는가. 어떤 날은 하루에 여섯 대를 스스로 주사 놓기도 한다. 물론 이런 날은 아침저녁으로 나누어 놓는다. 이게 다 아이를 간절히 바라는 이 시대 난임 여성들이 끓는 모성으로 해내는 일이다. 과거에 소수가 이렇게 했다면 출산율이 0.6으로 낭떠러진 현재는 25만 명의 난임인이 이걸 한다. 결코 작은 숫자가 아니다. 고생하는 걸 누가 알아줄 필요까진 없는데 이거 하나만은 알아줬으면 한다. 연령대 별로 출산율이 증가한 유일한 나이대가 40대며, 40대 출산 이면에는 주사와 부작용과 씨름하는 고난한 난임인들의 삶이 있기에 가능하다는 것. 삶이 지나가고 난 후 마지막에 웃을 수 있는 진정한 승자는 어려움을 헤쳐나가 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다. 환한 미소로 나 정말 잘 살았다 스스로 대견해할 날까지 난임인들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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