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리치들의 호화로운 삶을 보며 언젠간 나도 저렇게 살아볼 것이라며 꿈꾸고 산다면 누군가는 그게 뭐가 좋냐고 부정하기도 한다.
오늘 할 일,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하나씩 도장 깨기 해가며 작은 목표를 달성하며 사는 게 행복하지 않냐고 내게 말한다.
내가 목표로 하는 그것은 무척 원대하다며 꿈도 꾸지 않는다는 사람도 있다.
2023년 3월을 기점으로 사기업 회사원 명찰을 뗐다. 그로부터 2년이 지났으니 이제 장기 실업자가 되었다.
회사에 재직하지 않으면 딱히 쓸모없는 업무 스킬, 40대 중반, 여자, 보유한 자격증 없음, 할 줄 아는 외국어 없음.
자본주의지 않은가.
이런 스펙으로는 회사로 돌아가기 만무하다. 20대, 30대가 차고 넘치는데 20년은 젊은 사람을 뽑아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을 나에게 시킬 리 없다.
받는 월급은 평범한 회사원인데도 오래전부터 철저한 보안이 갖춰진 고급 빌라, 슈퍼카, 호화로운 아이템으로 장식한 인테리어 속에 사는 삶은 언젠가 살아볼 것이다 늘 생각했다.
그러나 현실은?
쥐뿔도 이룬 게 없다.
슈퍼리치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 만큼 치열하게 노력하지도 않았다. 취침 기상 시간을 철저하게 지키며 살지도 않았다. 수면 아래 백조의 다리처럼 보이지 않는 곳에서 괴로움을 견디며 처절한 고생을 하지도 않았다.
그러니 저런 호화로운 삶을 머릿속에 빙빙 굴리고 싶으면 장기 경단녀 처지는 어떻게든 깨야 한다.
뭘 하며 살까 고민하다 동네에 있는 간호학원 문을 두드렸다. 10개월 훈련받고 시험에 합격하면 간호조무사 자격증을 발급해 준다.
앞뒤 가릴 수 없는 처지에 고민하지 않고 시작했고, 2025년 3월 오늘 절반이 지나왔다.
이론수업을 마무리하고 이제 병원에 직접 나가 현장 OJT 하는 과정만 남았다.
이론 과정 종강 기념으로 어제 학원에서 파티를 열었는데 참가비 2만 원을 내고 음식을 해 먹는 자리였다.
고작 5개월을 함께 했는데 누군가는 통곡을 하며 울었고, 어떤 이는 서로를 끌어안고 흐느꼈다.
통곡 하며 운 아이가 만들어온 동영상을 보며 나도 눈시울이 뜨거워졌지만 크게 울지는 않았다.
울려면 얼마든지 울 수 있었는데, 대개 보통 사람들은 나를 냉혈 인간으로 본다.
감정이라고는 1%도 없는 T라며 나는 울 리가 없다고 학우들이 말했다.
그래서 나는 슬퍼도 울 수가 없다. 주변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볼까 의식이 많이 된다. 감정을 억누르며 주변 기대에 맞춰줘야 하는 소심하고 착해빠진 인간이다.
냉혈인간인 나는 종강 파티 자리에 왜 참석했는가?
종결짓지 않고 끝난 관계는 시간 차이는 있어도 아쉬움의 생채기를 여지없이 남기기 때문이다.
숱한 만남과 헤어짐을 겪으며 나란 인간 어떤 사람인지 깨달았다. 그래서 5개월이라는 공간과 인연 또한 마음의 정리가 필요했다.
이별하는 자리에 앉아 있으려면 감정 표현은 최소화해야 한다. 사람들이 내게 기대하는 바가 그것이다. 울컥하는 심정을 컨트롤했다. 흐르지 않고 눈가에 맺힐 정도만 눈물을 배출하며 휴지로 찍어냈다. 누가 보지 않게 살짝살짝.
천상 F들 사이에서 눈물도 참고 헤어짐을 앞둔 슬픔도 이겨내며 간호조무사 이론 과정을 마쳤다.
이제 남은 현장 실습을 하다 보면 우당탕탕거리는 일들이 더 많이 생길 것 같다.
앞으로 간호조무사 과정을 이수해보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해, 또 글 쓰는 것 밖에 할 줄 모르는 나를 위해
하루하루 일어나는 일 중 공유해도 괜찮다 싶을 만한 생활을 남기려고 한다.
고드름에서 똑똑 떨어지는 물방울을 바가지에 담으면 텃밭에 줄 수 있는 물이 모아지는 것처럼,
글을 한 편씩 모아 경력단절을 깨고 싶은 여자들과 우리 독자님들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