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을 껍데기에서 이용하는 것과 속 알맹이에서 내부를 보는 것은 차이가 있었다.
환자가 되어 치료받으러 갔을 때 의료기관으로서의 병원과 그 안에서 일하는 사람이 되어 근로자로서 본 병원은 아주 달랐다.
첫 번째로 밥 먹을 시간도 없이 일하는 간호사들의 강도 높은 업무 환경에 놀랐고, 두 번째로 일을 잘 몰라도 별로 가르쳐 주지 않는 것에 놀랐다.
첫 번째와 두 번째가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는데, 간호 업무가 워낙 바쁘다 보니까, 신입이어도 차분히 붙잡고 가르칠 여유가 없는 듯했다. 좀 알려주려고 하면 저 쪽에서 환자가 콜벨을 누르고, 루틴 하게 처리해야 하는 투약과 처치에 수시로 들어오고 나가는 환자들을 상대하느라 세 마디 이상 지속하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난 처음에 한 번 딱 시켜보고 나서 할 줄 아는 일만 하게 됐는데 주로 환자의 바이탈 사인을 체크하거나 검체를 갖다주고 약을 타오는 등 학원에서 배우지 않았어도 할 수 있는 일들이 대부분이다.
한 번은 혈당 체크 하는 것도 시켜서 하려고 시도했었는데, 불과 일주일 전에 배우고 나왔는데도 사수가 옆에서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으니 알던 것도 까먹었다.
진단 키트를 거꾸로 꽂고 채혈기를 뒤로 당기는 게 아니라 앞으로 벗기려고 했을 때 결국 사수 손으로 강제 이관 되었다. 백분의 일이라도 못할 것 같아 보이면 알려주는 게 아니라 가져가서 해버리는 것이 이 업계의 분위기인가 보다 생각했다.
여기서 일하는 사람은 청소, 세탁, 급식 등 일반 기업체 어느 곳에라도 있는 용역 외에, 환자를 상대하는 일을 하는 사람은 모두 선생님이라고 불렀다.
의사도 선생님, 방사선사도 선생님, 임상병리사도 선생님, 간호사도 선생님, 간호조무사도 선생님, 그리고 간호사와 비슷한 복장을 하고 있는 실습생인 나도 선생님 호칭파에 속했다.
하물며 나 같은 이곳의 미물도 선생님이다. 그렇지만 의료 행위를 하는 진짜 선생님들이 1단계 수준의 고차원 선생님이라면, 나는 10단계 아니 100단계에도 미치지 못하는 호칭만 선생님일 뿐이다.
게다가 훈련을 받고 있는 실습생 신분이니 이곳에서 유일하게 나 혼자만 입고 있는 컬러가 다른 유니폼에 부서를 찾거나 층수를 물어보는 등 떨리는 눈빛과 주눅 든 목소리만 봐도 여기 내부 사람들은 내가 직원이 아님을 안다.
선생님이라는 단독 명사로는 당연히 쓸 수 없고 교육기관에서 파견을 보냈으니 학생이다.
그래서 나를 부를 때는 학생+선생님이 붙여진 '학생선생님'이 되었다. 듣기만 해도 어색하다. 학생과 선생님을 같이 부르다니. 내심 이름 뒤에 선생님을 줄인 '쌤'을 붙여 주었으면 하는 바람도 있었지만 그렇게는 안해주었다. 그래도 이만하면 다행이다. 사십이 넘은 나이에 '저기 학생~'이라고 불리진 않지 않은가.
병동에 있는 간호사 선생님들은 내가 본 사람만 일곱 명이고 교대 근무를 다 합치면 인원이 더 많다고 한다.
내가 일하는 시간 대에 있는 다섯 명의 간호사는 수시로 업무 지시를 한다. 환자 바이탈 체크를 하고 있을 때 베드 메이킹을 시키고, 주사기를 가지고 오라고 해서 처치실에 가고 있는 중에 수액을 빌려 오라고 시킨다. 장비 종류도 비품 위치도 몰라 어리버리한 상태에 정신이 쏙 빠진다.
이런저런 심부름을 하다 보니 '학생선생님'은 마주치는 사람들이 많다. 꼬박꼬박 인사를 하다 보니 급식실 여사님이나 폐기물을 치우거나 바닥 청소를 하는 분들에게는 내가 몇 층에 있는 사람인지 정도는 인지가 된 것 같다.
수많은 종류의 심부름 속에 그나마 뿌듯한 일은 환자를 모시고 수술실에 데려다 드릴 때다. 나는 한 번도 걸려본 적이 없고 주변에 앓아 본 사람도 없어 급성 무슨 무슨 질환으로 오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은 줄 처음 알았다.
그분들이 자발로 걸어 들어와 환의로 갈아입고 수술방으로 내려갈 때는 입장할 때 경쾌하던 모습은 사라지고 안내차 동행하는 나에게 이것저것 물어보신다. 꽤 큰 비율로 수술과 관련된 문의를 해오지만 대개는 수술 전 경직된 마음을 들어달라고 호소하는 것 같아 열심히 들어 드린다.
긴장되고 걱정되는 마음을 수다로 푸시는 분도 있고, 건장한 체격의 청년이 떨린다고 땀을 뚝뚝 흘리기도 한다. 어떤 분은 자영업자라 가게를 오픈한 날인데 졸지에 병원에 와있게 되었다고 한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나에게 속내를 이야기한다.
병동에서 수술실로 내려가는 짧은 시간 동안 이동만 돕는 게 아니라 그분들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 드리는 것도 내 업무인가 싶다. 제 아무리 운동을 좋아하고 건강하게 살았다 자부하는 사람도, 마취 상태로 몸을 맡겨야 하는 일을 앞둔 이 때야 말로 인간의 진솔한 내면이 드러나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