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레바퀴 아래서, 헤르만 헤세
한스는 꼭 그렇게 되고 싶었다.
하지만 왜 그래야 하는 걸까?
그것은 한스 자신도 알 수 없었다.
어릴 적의 나는 내가 스스로 결정했던 것이 없었다. 학교를 가는 것도 학교에서 장래희망을 적어낼 때에도 심지어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묻는 친구들의 질문에도 온전히 나의 진짜 생각을 말하지 못했다.
초등학교 때 우리 반에서는 가수 보아를 좋아하는 학생들이 많았다. 나는 지금도 아이돌 가수의 노래는 많이 듣지만 특별히 좋아하는 사람이 따로 없는데 그건 그때도 마찬가지였다. 그 당시 반에서 친구들과 잘 어울리고 선생님한테도 예쁨 받는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가 보아를 정말 좋아한다고 했다. 그래서 나도 그냥 보아가 제일 좋다고 말했다. 대세를 따라간다는 느낌으로 말이다. 그런데 어딘가 이질감이 들었다.
<수레바퀴 아래서>의 주인공 한스 기벤라트는 마을에서 천재로 불린다. 선생님들의 총애를 받고 있고 아버지 또한 신학교를 갔으면 하기 때문에 주말이고 평일이고 할 것 없이 공부에 매진한다. 한스는 낚시를 하고 싶어 하지만 공부를 해야 하기에 낚시를 하지 못했다. 그래도 다행인 건 한스는 신학교 입학시험에 합격하였고 잠시 쉬면서 자신이 하고 싶던 낚시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합격 전에도 합격 후에도 여전히 한스에겐 두통이 계속된다.
219p. 한스는 자신의 기억력이 전혀 말을 듣지 않을 뿐 아니라, 하루가 다르게 점점 느슨해지고, 희미해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난 뒤에는 절망감에 빠지고 말았다. 하지만 이따금 낡은 기억들이 무서우리만치 생생하게 그를 엄습하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한스는 놀라움과 두려움에 떨었다.
신학교에서 한스는 좋은 성적을 유지하며 선생님들에게 관심을 받았지만 여전히 두통은 계속되었고 공허한 마음이 그를 사로잡는다. 게다가 예전처럼 공부를 해도 기억력이 말을 듣지 않았고 한스의 우울감은 점점 커져만 간다.
나의 어릴 때 이야기로 돌아가보면 그렇게 스스로 결정해 본 적 없던 한 아이는 어른이 되어서도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알지 못했다. 심지어 대학을 다닐 때도 그저 가장 성적이 좋았던 교과목과 관련된 학과에 진학해 그곳에서도 적당한 성적을 유지하였다. 그리고 당연히 전공을 살려서 나의 고등학교 때 장래희망이었던 생명공학 연구원이 되려고 했고 실제로 연구원이 되었다.
연구원이 나에게 맞지 않는다는 걸 알아차린 건 졸업한 지 2년이 되던 차였다. 오랜 시간을 전공과 관련된 공부를 했지만 열정 따윈 없었던 것, 회사에서도 뭔가 새로운 것을 탐구하거나 궁금한 점이 없고 시료의 컨디션에 따라 내 일정을 맞추어야 하는 것. 그래서 나는 전공과 다른 일을 하고 있고 아직도 방황 중이다.
255p. 줄기를 잘라 낸 나무는 뿌리 근처에서 다시 새로운 싹이 움터 나온다. 이처럼 왕성한 시기에 병들어 상처 입은 영혼 또한 꿈으로 가득 찬 봄날 같은 어린 시절로 되돌아가기도 한다. 마치 거기서 새로운 희망을 찾아내어 끊어진 생명의 끈을 다시금 이을 수 있기라도 한 듯이. 뿌리에서 움튼 새싹은 하루가 다르게 무럭무럭 자라나지만, 그것은 단지 겉으로 보이는 생명에 불과할 뿐, 결코 다시 나무가 되지는 않는다.
결국 신학교에서 나와 다시 고향으로 돌아온 한스. 한스와 어울렸던 친구들은 지금 그의 곁에 없었다. 어릴 적 행복했던 기억들은 그저 기억일 뿐이었다. 한스는 깊은 우울에 빠졌고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어 하는지 여전히 알지 못한 채 그렇게 강물에 휩쓸려 안타까운 죽음을 맞이하고 만다. 한스가 스스로 물에 뛰어들었는지는 정확히 나와있지 않다.
한스에게 손을 내밀어 줄 어른이 있었다면 그의 삶은 어땠을까? 그에게 좋은 영향을 끼쳤던 친구들이 그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아마도 다른 결말을 맞이했을 수도 있다. 물론 그가 진정으로 원하는 삶일지는 모르겠지만.
이 책은 우리나라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공감할만하다. 자신의 흥미나 적성보단 주변 어른들의 진로 설정에 따라온 삶과 이로 인해 겪는 방황은 아직도 한국 사회에서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나 또한 서른을 넘은 나이에도 방황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이 글을 읽으며 한스의 이야기가 자신의 이야기와 닮았다고 느껴진다면, 아이를 양육할 부모라면 이 책을 읽어보길 추천한다. 물론 한스의 결말은 좋지 않았지만 지금은 한스가 살던 시대와는 정말 다르다. 유튜브, 인스타, 책을 통해 양질의 가르침을 얻을 수 있는 데다가 정말 다양한 직업이 지금도 생겨나고 있다. 결말이 좋지 않더라도 한스의 이야기를 통해 그의 슬픔을 느낄 수 있다면, 이런 슬픔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나에게 그리고 내 아이에게 새로운 이정표를 던질 수 있다.
또한, 이 책은 헤르만 헤세 자신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이토록 감정 묘사가 섬세한 걸까 싶었다. 고전은 역시 많은 생각을 불러일으키는 힘이 있다. 헤르만 헤세의 작품 중 <싯다르타>에 이어 두 번째로 좋은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