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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서 Aug 10. 2017

사실을 말하자면



조카를 볼 겸 카메라도 가지러 갈 겸, 겸사겸사 대전에 들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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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부터 나는 점점 짜증이 늘어나고 있었고 더 현실을 마주하기가 힘들어졌다. 게다가 내 주변에 일어나는 -가족과 관련된- 모든 일들을 다 부정하고 싶어하는 내 자신을 발견하고 있는 요즘이었다. 대전에 도착해서 언니의 자동차를 타고 마트에 들러 이것 저것 구매한 이후, 언니의 집으로 향하는 길에 지금껏 괜찮은 척 해 왔던 내가, 사실은 괜찮지 않았던 내 모습을 언니에게 다 털어 놓아보고 싶었다. 그것은

 "이제 며칠 안 남았네. 기분이 어때?"

라는 언니의 물음에 사실대로 말해도 되냐는 말을 시작으로 아주 잠시 머뭇거리다 다 쏟아내 버린 것이다.

 

 나는 중학생 때부터 고향을 떠나버리고 싶었고 가족들이 다 미웠다고. 엄마도 미웠고 언니들은 특히나 더 싫었고, 동생도 미웠고 집안 사람들도 다 싫었고 이런 가정 환경도 다 싫고, 다 짜증나고 증오했다고. 그 어린 것이 과거도 지우고 싶었고, 당시의 나 자신이 처한 환경도 싫었다고. 내 인생의 큰 주류를 내가 선택하지 못했던 것도 싫었고 우울하고 짜증스럽고 부정적인 그런 집 안 분위기도 싫었고 아빠랑 추억이 없었던 것도 싫었다고.

그래서 그 때는 내가 태어나고 자란 그 곳을 떠나버리면, 차라리 다 잊고 새로운 사람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고.

그리고 지금 떠나게 된 이 시점에서 다시 생각해보면 물론 이 일은 내가 진짜로 하고 싶었던 일이니까, 내가 이 일을 하고싶었으니까 선택한것이지만 떠나는 수 많은 이유 중에 하나가 바로 그것이었다고.

다 놓아버리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거기에 더하여 어렸을 때는 절대로 대들지 못하게 하던 강압적인 둘째언니에게 맞고 욕 먹던 그 어린 시절에 대한 이야기까지도 다 말해버렸다.


그 모든 것을 말하고도 아차, 싶지 않았다. 그냥, 내가 가지고 있었던 모든 불안감과 증오와 미움을 다 털어놓았다.

그랬더니 큰언니는 그저 많이 들어주었고 공감해주었다. 자기는 엄마를 속으로 여러 번 죽였다고 하면서. 다만 조금씩 엄마의 엄마인 외할머니와 그녀의 엄마와의 관계를 이해하면서 우리 엄마들이 모두 불행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 불행과 불안이 되물림 되어왔다는 것을 인지하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엄마가 안정적인 사람이었다면 우리 모두는 행복하게 살아왔을까?'

언니의 말에 이런 궁금증이 생겨났었지만 나는 엄마보다도 언니들과 꽉 막힌 조선시대 사람 같은 집안 어른들이 더 밉고 증오스러웠다. 그리고 지금은 내 동생이 밉지 않고 다만 안타깝고 불쌍하기까지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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