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서 Jul 03. 2017

비밀의 벽

20170626



1. 지난 월요일, 외할아버지의 부고를 들었다.

나는 한참 과제중이었고,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함께 피피티를 만들어가는 중이었다. PC 카톡을 확인하던 중 엄마가 가족 단체톡에 할아버지가 위독하다는 메세지를 보낸 것을 확인했고 나는 놀라 어쩔줄 몰라했다. 할머니가 돌아가셨던 날처럼 두 손이 떨렸다. 교육원에 들어오기 전 주 토요일에 외할아버지를 뵙지 못했던 것이 생각나 다시 죄인이 된 것같은 기분이 들었다.

같이 있던 교육생들도 내가 갑자기 불안해 하자 무슨 일이냐며 걱정하기 시작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엄마와는 통화가 되지 않아 큰언니와 연락을 취했다. 언니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눈물이 울컥 나왔고 다리에 힘이 풀렸다. 벤치에 앉아서 눈물을 억지로 참으며 언니의 차분한 목소리를 들었다. 할아버지가 벌써 그렇게 아프신지 며칠 째였다는 말을 들었다, 외숙모는 할아버지와 할머니에게 너무나도 무심했었기 때문에 할아버지가 아프던 말던 신경 쓰지도 않았다는 말과 함께. 그 말을 듣는데 욕이 나오려다 참았다.


2. 그리고 몇 분 뒤에 바로 할아버지의 부고 소식을 들은 것이다. 5시간이 넘는 시간을 길 위에서 보냈다. 강원도에서 경상도는 자차로 온다면 가까운 거리지만 대중교통은 직행이 없었기 때문에 정말이지 너무 많은 시간이 걸렸다. 고향에 도착해서 옷을 갈아입고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도착하자마자 상복을 입은 엄마와 할머니와 이모들, 그리고 이모부들과 삼촌이 보였다. 엄마는 마시지도 못하는 술을 마신 모양이었다. 얼굴이 빨갛게 올라있었다. 나를 보며 넌 안와도 되는데 왜 왔냐는 말을 먼저 꺼냈다.   

  할아버지 서운해하게 왜 그런 말을 해, 당연히 와야지.

입관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절은 한번 반만 해야한다기에 그리하였다. 반절을 하는데 눈물이 왈칵 쏟아나올 뻔했지만 나는 참았다. 그래야만 했다. 엄마와 할머니와 이모들과 삼촌이 더 힘들어할테니까. 나는 그들을 오히려 위로해야하니까.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와는 분위기가 많이 달랐다. ..당연히 그랬다.


3. 이모부는 호상은 아니지만 중상 정도는 하는 것 같다고 말씀하셨다. 벌써 술을 많이 드신 모양이었다. 원래 말씀이 많으신 이모부는 술을 드시면 연설을 시작하신다. 연설의 대상은 언니였다. 그 틈에 나는 오랜만에 만난 사촌들과 대화를 나눴다. 그러다가 할아버지를 멍하니 보고계시는 외할머니를 발견했다. 어쩐지 오늘따라 할머니는 더 작아 보였고 힘은 당연히 없어보였다. 할머니는 할아버지를 불쌍한 사람이라며 돌아가실 때까지도 본인이 아니라 그를 보듬으셨다고 한다. 할머니처럼 강한 사람이 이 세상에 또 있을까 싶을정도로 그녀는 강한 사람이었다.


4. 장례식장에서는 잊고있던 비밀이 밝혀진다. 그것은 어느 장례식에서나 똑같을 것이다. 사람들은 평소에 사실들 그러니깐, 기억하고싶지 않은, 인정하기 싫은 사실들, 평소에는 말하고 싶지 않는 사실들을 가슴 깊숙이 묻어두고 그 위에 아주 단단한 콘크리트를 발라둔다. 하지만 이런 순간을 마주하면 어떤 외부의 충격에 의해서 그 콘크리트가 부서져 잊고있었던 비밀들이 타의적으로 꺼내지곤한다. 언제나처럼 이번에도 그런 일이 있었다. 참 불쌍한 사람들이다, 엄마와 우리 모두는.

 

5. 삼촌은 상조 보험 가입이 장례 절차를 수월하게 해주었다고 했다. 하긴, 할머니의 장례보다 수월한 것 같아보였다. 그런데 참 웃겼다. 그 모든것은 살아있는 사람들을 위한 것들이 아니던가. 심지어 장례를 도와주는 상조회사 팀장이라는 사람도 그냥 직업의식이 투철한 사람이었다. 그냥 그 순간에만, 의식을 행하는 그 순간에만 진지했을 뿐이었다. 살아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죽은 자는 죽은 자일 뿐이었다.


6. 외숙모는 정말이지, 하, 답이 없는 사람인가 싶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으니 몇 십년 동안 종교적인 이유 때문에 지내지 않던 제사를 지내야하니 그랬는진 몰라도 이런 말을 했다고 들었다.

 "아유 이제 맛있는 제삿밥 많이 먹겠네~."

제정신이 아니고서야 저런 말을 늘어놓을까. 그 말을 들은 삼촌은 살아계실때 같이 먹는 밥이 맛있지 그게 할말이냐고 했댔다. 진짜 그 이야기를 듣고 그 여자에게 가서 목구멍까지 올라오는 욕을 쏟아붓고 싶었지만 참을수밖에 없는 내가 또 병신같았다.


7. 마지막 곡소리를 하라는 팀장의 말에 우리 모두는 곡소리를 내며 울음을 터뜨렸다. 장례기간 내내 엄마는 울지 않다가도 곡소리를 내는 순간에는 아빠를 잃은 어린 딸처럼 엉엉 울었었다. 장례식장에서 엄마는 할아버지가 이제 아프지 않으시고 평안해지셨으니 슬프지 않다고 하셨었다. 하지만 슬프지 않을리가 없다.

8. 장례는 잘 끝났고 할아버지는 선산 납골당에 모셔졌다. 그리고 모두가 할머니에게 위로의 말을 전하며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는 차에 올랐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에 엄마는 붉은 꽃신을 신고 예쁜 한옥으로 들어가는 꿈을 꿨다고 했다, 아무래도 할아버지가 좋은 곳으로 잘 가셨나보다라고 말하면서.


작가의 이전글 그래, 그럴 수 있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